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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법대로 한다 Mar 18. 2020

오빠는 신데렐라

‘12시야 가자’


나 괜찮아, 네가 안 괜찮아 빨리 일어나. 그는 12시 신데렐라였다. 12시가 되기 전에 미친 듯이 날 집에 보내려고 애썼다. 그래 처음엔 젠틀한 남자라고 생각해서 호감이었는데 이건 뭐 정도껏 해야지. 달달한 키스에 한참 분위기 좋았는데, 딱 끊더니 집에 가잔다. 아니 난 아쉬운데 부족한데 왜 자꾸 가재? 내 칭얼거림에도 그는 12시만 되면 마법 풀리는 놈처럼 날 미친 듯이 집에 데려다줬다.


내가 스무 살도 아니고, 서른이었다. 하다못해 엄마도 날 찾지 않았다. 자고 온다고 하면 우리 엄만 드디어 시집보낼 수 있단 기대감에 만세를 부를 터였다. 근데 이놈은 도무지 협조를 안 한다. 무엇보다 아슬아슬하게 끊기는 스킨십에 짜증이 났다. 이걸로 밀당하나 싶을 정도.


하루는 더 붙어있고 싶은 마음에 짜증이 폴폴 올라와, 왜 그렇게 날 못 보내서 안달이야? 나만 좋아하나 봐, 오빠는 더 있는 거 싫어? 있는 데로 톡톡 쏘아댔는데 그가 진짜 철없단 얼굴로 날 타이른다.


‘널 지금 어머니께 보내야, 내가 다음에도 널 만날 수 있어’


뭐지 이 최상위급의 젠틀은. 와 진짜 어른이다. 곱게 키운 딸 곱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그놈은 항상, 우리 집 현관 바로 앞에 차를 대고,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까지 차 안에서 지켜봐 주었다. 정확한 매너의 섬세함. 내가 원하는 선이다. 엘리베이터까지 오는 건 왠지 좀 부담스럽다. 근데 차만 내려주고 휙 하고 가버리면 그건 또 서운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서운하지 않게 차 안에서 봐주는 게 베스 트데, 그놈은 항상 그걸 했다. 무척이나 섬세하고 배려가 항상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래서 까탈스럽고 섬세한 날 예쁘게 조율해줬다.


하이클래스 섬세함을 지닌 그는 내 눈도 잔뜩 높여놓았다. 누구를 만나도 기준이 항상 그였다. ‘이 정도 센스는 기본이야’라고 투덜 되는 내게 친구들은 남자란 생물체한테 섬세함이란 기능을 요구하면 안 되는데, 넌 맛을 잘못 봤다고 종종 놀린다.


그렇다, 너무 귀한 사람을 만나서 다른 놈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진짜 보고 싶고 한 번만 안기고 싶다. 이렇게 간절한데, 이렇게 매일 브런치에 사랑타령 해 대는데 연락하지 않는 나도 참 징하. 그에 대한 마음을 낱낱이 털어놓은 내 브런치를 그가 알게 되면 어떨까? 알아줬음 하는 마음에 얼마 전에 프로필 사진까지 걸었다 사실. 근데 진짜로 알면 어떡하지? 그가 내 마음을 읽는다.... 아 상상하니 죽고 싶다. 너무 창피하다. 사랑은 하지만 쪽은 팔린다. 하지만 이 또한 기분 좋은 상상이다.


현실적으로 그가 내 브런치를 볼 일도, 내가 그에게 연락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사실 몇 번 연락을 할까 카톡창까지 들어갔다가 지금의 행복마저 잃을까 결국 포기했다. 짝사랑하는 소녀처럼 매일 그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콩닥이는 마음을 써 내려가는 이 시간이 난 퍽 즐겁다. 근데 그에게 연락하면 이 마음마저 내려놔야 할까 두렵다. 그가 날 불편해한다면 혼자 품고 있는 마음도 지우는 게 맞는 거니깐. 어른답게 정리하다가도 그 남자 결혼하면 후회해라고 조언해주던 동생 말이 귀에 맴돈다. 이대로 사랑은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 움켜쥐어야 하는 걸까 서른셋이 됐는데도 한 개도 모르겠다. 몰라, 오늘도 잘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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