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인 미상

by 오레오


부쩍 코끝이 시려옵니다. 시월이 온 것이지요.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적응할 새도 없이, 차가워진 바람은 이번 가을도 죽지 말고 살아내라며 나를 억척스레 등떠미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이맘때면 늘 이 계절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한 손엔 미처 보내지 못한 여름을 꼭 쥔 채, 다른 한 손은 가을에 붙잡혀 질질 끌려갑니다.


가을은 늘 이런 식입니다. 요란하고, 소란스럽고, 부산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시끄럽긴 또 얼마나 시끄러운지요. 이런저런 대화 사이사이 책갈피처럼 끼어있는 잔기침 소리, 푸르던 이파리가 바싹 말라 곤두박질치는 소리, 겉옷 주머니에 이것저것 넣고 꺼내어 바스락대는 소리... 여름 내 우렁차던 매미 소리만 시끄러운줄 알았더니, 가을의 소리도 그 못지 않게 이 도시를 구석구석 채우덥니다. 머지않아 새하얗게 뒤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질 스스로의 운명을 아는 걸까요.


어느 편지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시끄러운 이 동네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도시전설. 전해지지 못한 어느 편지의 이야기입니다. 단정히 두른 리본, 은은히 풍기는 레몬향, 꾹꾹 눌러 쓴 듯 오돌토돌한 편지지를 안고 오랫동안 수신인을 찾으며 중얼중얼, 찾는 이 없는 거리를 비칠비칠 헤맸다는 그 편지.


수신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는 알 턱이 없었습니다. 편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같은 경로를 반복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수신인의 주소로 배송되었다가, 날이 밝고, 다시 저물면, 풀이 죽은 채 다시 우체국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일. 이번에도 허탕이냐 비아냥거리는 집배원의 말을 되받아치기도 지친 편지는 조용히 다른 우편물들 사이에 몸을 누였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수신인에게 무사히 전해지길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 봉투에 적힌 발신인과 수신인의 주소가 닳아 없어져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편지는 이 지난한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누가 쓴 건지도, 누가 받아야 하는지도 몰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날, 마침내 온 거리를 가득 채운 씁쓸한 레몬향에 취해 정신을 잃은 그날. 스스로를 어느 공원 구석에 묻어버리고 영원한 잠에 들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쓰이지 않았어야 했다.” 편지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진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남긴 유언은 여전히 레몬향과 함께 이 동네를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시끄러운 가을의 소음 틈으로 이따금씩 편지의 희미한 유언이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서늘한 바람 사이 희미한 레몬향이 풍겨오는 것만 같습니다. 내 마음은 어딘가 뻐근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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