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다시 잡은 엄마의 손
엄마, 내가 자꾸 죽고 싶어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나의 가냘픈 소리에 엄마는 한 시간을 운전해서 내 자취방으로 달려왔다. 밤길을 보는 눈이 어두워서 밤에 운전을 절대로 안 하는 엄마였다. 엄마는 벌벌 떨면서 울며 운전을 하고 왔다. 밤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이에 죽을까 봐서였다.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을 먹은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연고도 없는 먼 타지에서 친구 없이 가족 없이 시작한 회사일이 많이 힘들고 외롭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자취방에 혼자 있으면서 방의 불도 안 켜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생활했다. 나는 늘 언제 어디서 죽을지 조금씩 생각해두었다.
그 쯤 나는 연인이었던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도망치듯이 떠났다. 이런 내 모습을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기대고 있던 사람이 사라지자 나는 잠도 못 자고 무서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유료 상담센터에 방문했다. 정신과도 병행해서 다녔다. 죽고 싶다는 말과 상반되는 움직임이었다.
선생님, 저는 죽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나에게 선생님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당신은 쉬고 싶은 거예요.
죽고 싶다는 말이 어떻게 쉬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까?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나는 몇 개월의 상담 끝에 끝내 인정하게 되었다. 너무 지쳐서 너무 외로워서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쉬고 싶은 이 마음을 죽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 모든 것을 멈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다 끝내 버리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외롭고 힘들었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일어나고 밥을 먹고 운동을 했다. 몸이 개운해지면서 죽고 싶은 생각은 점점 옅어지고 인생이 제법 재밌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모든 짐을 혼자 지는 것이 억울하고 힘들어서 엄마에게 늦은 밤 전화하여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한 시간 만에 달려올 것이라는 기대도 안 하고 그저 전화만 한 것이었는데. 엄마는 본인이 제일 무서워하는 밤길 운전을 해서 나를 보러 왔다. 엄마는 내가 왜 죽고 싶어 하는지 이야기를 밤새 들어줬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 사용하려고 했던 도구를 같이 치웠다. 엄마는 그 날 내 손을 꽉 잡아주었고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사실 나는 엄마가 바라는 완벽한 딸이 될 수 없다. 그날 밤 나는 엄마에게 “나는 죽고 싶어 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며 내가 엄마 자식 중에서 아픈 손가락인 것이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왜 아픈 손가락이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딸인데. 힘들면 쉬어 가자.”라고 말해줬다. 그 날부터 나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나를 가뒀던 ‘쉴 수 없다’ 지옥에서 나왔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쉬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채찍질하던 스스로의 압박이기도 했다. 그 압박이 과해지다 보니까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 판단하던 나머지 ‘쓸모없는 패배자’라고 비관하여 자살이라는 벌을 주려고 한 것이었다.
과연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나조차도 나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저 열심히 살다가 죽을 뻔한 내 인생에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준 엄마가 곁에 있었기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엄마처럼 누군가의 위기 순간에 생명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