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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Aug 15. 2017

프롤로그

그대가 들여다보시면

나의 시에 나타낼 수 있는 것보다

더욱더 많은 것들을

거울은 보여 주리라,

그대가 들여다보시면


- 셰익스피어 소네트 103中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의 10대와 20대를 지나 어느덧 서른세 살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거르고, 버리고, 골라왔습니다.

그렇게 남은 것이 바로 요리와 술, 여행과 음악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많았던 나는 사실 30살이 훌쩍 넘은 지금도 꿈을 꾸는 중입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이 늘 샘솟아요. 그치만 그 꿈을 다 이룰 수 없는 (상황의) 나는 무언가에 의지하고 집중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내가 직접 만든 요리를 나의 남편(주로 '넘편'이라 씁니다)이 맛있게 먹어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퇴근 후 빈속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느껴지는 쌔에-함은 평생 포기하지 못할 낙입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은 어딘가를 가야 직성이 풀립니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된다면야 가급적 일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장거리 여행을 선호하지만, 어디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그렇게까지 시간과 돈이 허락하나요. 하지만 되는대로 가려고 합니다. 물론 국내 여행도 좋아합니다.

10년 전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최고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올드한 음악을 좋아합니다. 고집쟁이죠.


가끔은 이런 나를 반려자로 두고 있는 나의 넘편은 얼마나 피곤할까 싶습니다. 그저 그런 맛에도 기쁨의 총평을 해주어야 하는 고충, 잦은 외출과 올곧은 마이웨이. 그뿐인가요,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가 가고 싶다는 나 때문에 타들어가는 속은 누가 알아줄까요.


그렇지만 별 수 없습니다. 결혼하고 나도 좀 참아보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스멀스멀 내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나'라는 사람.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그도 조금씩 접점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을 나누고 싶고, 공감을 얻고 싶고, 그게 아니면 그때그때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아쉬움을 나는 이곳에 기록하고자 합니다. 사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기나 시를 쓰는 것이 잦았는데, 사회생활과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것 같아요.


이곳은 그대로인가요 @Szentendre, Hungary  ⓒ2009 organicsea / Nikon FM2


소위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법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거나 글재주가 뛰어난 건 아니지만, 꼭 그래야지만 글을 쓰나요. 사실 브런치도 그렇고 여기저기 웹서핑을 하다 보면, 빼어난 솜씨의 블로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혹은 어마한 전문지식과 빼곡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을요.

그때마다 밀려오는 이질감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은데.


그치만 생각해보면 왜 우리는 '삶'이라는 것에 '트렌드'를 더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의문입니다. 요새 유행한다는 미니멀리즘과 욜로 라이프, 우리는 삐뚤빼둘하지만 저마다 맞아 들어가는 틈바구니가 있을 텐데 왜 그런 것에 우리를 가두고, 맞지 않으면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지. 음악이나 패션 등의 트렌드가 흐름은 어쩔 수 없다 쳐도(물론 따르지 않아도 되는), 굳이 삶의 방식까지 대세를 타야 한다니. 가끔은 혼란스럽습니다.


여튼 이래저래 나는 평범하다는 이야기를 길게 했네요.

앞으로 이 브런치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과 술, 여행과 음악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자연스러운 사진과 함께요.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죠. 이러다 다시 역사 속으로, 휑한 공간이 되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기록해보렵니다. 기록의 힘을 믿거든요.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이 구절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나를 알릴 수 있는 모든 공간에 항상 일 순위로 적어놓았어요. 셰익스피어 소네트 백세 번째 시구인데, 세상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모아 시를 써봐도, 내면의 날것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이 구절로 공간 소개를 마무리합니다.



나의 시에 나타낼 수 있는 것보다 더욱더 많은 것들을 거울은 보여 주리라, 그대가 들여다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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