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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Feb 02. 2021

어느 작은 동네 빵집의 브금(BGM)

ep.48 DJ Soulscape_Love is a song

  


딸랑.

   종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렸다. 아, 드디어 첫 손님이 왔다.

   2020년 11월 19일. 나는 또 운명 같은 순간을 맞았다. 십 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드디어 새로운 삶이, 일상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종소리가 울린 것이다. 때마침 흐르던 익숙한 그 음악이 밀가루도 가라앉은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띤띤띤- 띤띤띤띠디디띠디디-     


  분명 몇 천 번이고 꿈꿔온 곳이 틀림없는데, 낯설기만 한 이 작은 빵집에 경쾌한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다. 반죽기 후크에 걸려 철퍽거리던 밀가루 소리와 비트가 틈 없이 어우러졌다. 반죽기를 노려보던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힘이 잔뜩 들어가 솟은 어깨가 슬쩍 누그러졌다. 익숙지 않던 오븐과 집기가 갑자기 눈에 익기 시작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과 내내 엇갈리다가 마주하는 좌절감은 정말 혹독했다. 입사하고 사무실에서 처음 전화를 받다가 말이 꼬여버린 그 순간도, 첫 결재를 받으러 가면서 오타를 발견한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가던 그 순간도, 지금과 같은 마음이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지금보단 덜 하겠지 싶었다. 별안간 든든한 방패가 되어준 책상 앞 모니터가 그리워졌다.

  철퍽철퍽. 그러는 사이 반죽기의 후크는 더 거칠게 돌아갔다. 밀가루와 물이 잘 당최 잘 섞이고 있긴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뒤죽박죽 엉키는 중인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이상했다. 분명 모든 게 처음은 아니었는데, 모든 것이 처음보다 더 낯설고 두려웠다.


물과 밀가루가 만나 나의 손이 닿으면 빵이 된다는 사실이 아직 낯설다.

  

  손가락 끝에 정교한 날을 달면 어떨까 싶었다. 이 주방에 필요한 건 빠르고 정확한 손길뿐일 테니 말이다. 만지면 만질수록 흉해지는 반죽 덩어리에는 어느새 화와 분노가 뒤섞여버렸다. 오븐 맨 위칸까지 닿지 않는 작은 키가 눈물겹도록 서러웠다. 하루는 목적지까지 정확히 닿지 않는 팔이, 종종거리다 헛디딘 발목이 미치도록 싫었다. 날카로운 모서리에 폭 찔려 터져 버린 밀가루 자루가 야속했다. 대체 어쩌자고 이 나이에 이런 일을 저질렀나 하는 후회가 오븐 앞에 선 작은 나를 더 조여왔다. 가뜩이나 커다란 오븐이 더 거대해졌다.


  물론 빵은 이런 내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정확히 11월 첫날에 굽기 시작한 빵은 보름이 지나서도 그 맛이 차오르지 않았다. 빵은 굽는 사람을 닮는다는데 그 말이 분명 틀린 말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부풀지 않아도 괜찮다며 오븐 속 스콘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나는, 이제 빵의 실패가 무엇보다 두려워졌다. 빵을 굽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 시절 뜨거웠던 나의 영화 <태풍태양(2005)>

  

  2005년 어느 뜨거운 여름밤, 나는 시원한 극장 안에 있었다. 나와 취향이 찰떡인 고등학교 단짝 친구가 영화 <태풍태양>을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친구와 내가 죽도록 사랑한 영화인 <고양이를 부탁해>의 감독의 작품이기도 했다. 에어컨이 빵빵하다 못해 손끝이 시릴 지경이던 극장 안엔 친구와 나를 제외하고 기껏해야 너 다섯 명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개봉하던 그 전 해, 그러니까 2004년에 대학 신입생이던 나와 친구는 태풍과 태양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을 휘날리던 이 영화에 폭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스팔트 위를 가르던 롤러스케이트의 날이, 환호로 가득 메운 새파란 하늘은, 그야말로 청춘과 우리의 상징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고 한동안 더 몰두해있던 것이 있었다. 그때는 유튜브고 뭐고 없었을 때라 우리가 영화를 두고두고 곱씹는 방법은 배경음악, 즉 OST를 찾아 듣는 것뿐이었다. 영화 <태풍태양>은 유독 낮과 밤에 따라 쨍하고 어스름한 영상 톤을 잘 나타내었는데, 이를 한층 더 돋보여준 것이 바로 배경음악이었다.      


  스물한 살 내 마음에 쏙 든 노래는 DJ Soulscape의 <Love is a song>이라는 음악이었다. 가사가 없는 곡이다. 대신 러닝타임이 무려 5분에 달하는 이 비트에는 이 음악을 듣게 된 첫날부터 16년이 흐른 지금까지 들을 때마다 매번 다른 나의 가사를 담고 있다. 그 이후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순간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난생처음으로 청심환을 삼켰을 만큼 긴장 상태였던 대학원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중에도 황급히 이 노래를 꺼내 들었다.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듣던 이 노래는 그야말로 내 청춘의 OST였다. 무거운 멜로디에 한없이 가벼운 가사를 얹어 보다가, 또 어느 날 밤엔 가벼운 멜로디에 무거운 가사를 얹어보면서 말이다.


부디 오늘도 내일도 잘 부풀어 오르길 바라, 사랑스러운 나의 빵

  

   그러다 언젠가 한 번은 문득 마흔(그때는 머나먼 미래였다)이 되었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도전과 기쁨, 좌절과 아픔이라는 내겐 그야말로 청춘을 상징하는 노래인데 과연 마흔이 되어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뛸까 기쁠까 슬플까 서글플까 아니, 듣기는 할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상하게 그 생각 이후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가쁘게 느껴졌다. ‘청춘’이라는 단어 말고는 딱히 형용할 것 없던 그 시절 듣던 노래는 더 이상 귓전을 울리지 않았다. 나이는, 아니 이 음악은 내게 더 이상 꿈을 꿀 힘도, 의지도 없지 않느냐면서 이제 굴곡 없이 편평한 삶을 사는 편이 낫다고 가르치려고만 들었다.


  눈가에 하나둘 늘어가는 주름도 더 놀지 못하는 몸도 전부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친구 중에는 벌써 초등학생 자녀를 둔 경우도 있고 만년 대리(대리에서 끝냈으니)인 나와는 달리 과장, 벌써 부장이 된 친구도 있다. 분명 나이가, 세월이 이뤄낸 산물이 틀림없다. 반면 스무 살의 나와 서른일곱 살이 된 지금의 내가, 딱히 달라진 것 없이 제자리 임을 확인하게 해 준 이 노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새로움에 대한 반감은 딱히 없어도,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익숙한 음악과 문장만 찾는 나였다. 꼰대와 클래식 사이를 어슬렁 거리며 먹어가는 나이를 애써 달래는 스스로를 버거워하면서 말이다. 나는 결국 플레이리스트에서 Love is a song를 삭제하고 말았다.


내 취향이 뚝뚝 묻어난 나의 공간, 빵집

  

  그런데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는 순간에 흐른 배경음악은 다름 아닌 Love is a song이었다. 아니, 솔직히 이미 굳은 마음을 더 굳히기 위해 오랜만에 이 노래를 꺼내 들었다 하는 편이 맞겠다. 대체 얼마 만에 듣는 것인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스스로 택한 가시밭길 앞에 나를 세워두고, 보란 듯 더 크게 이 노래를 재생했다.

  결국 고심 끝에(사실 그렇게 고심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 음악을 배경 삼아 다시 청춘의 길을 택했다. 아스팔트 위를 가볍게 누비던 태풍과 태양의 그림자와, 철렁거리던 나의 파도를 함께 해준 이 음악이 흐르는 순간,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작은 빵집에 Love is a song이 울려 퍼졌다. 무려 4분 54초 동안 가사 없는 음악은 여전히 내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빵을 더 진지하게 배워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 여기, 오로지 나의 빵만을 위한 이 아담한 공간이 들어서기까지 떠올린 수많은 문장이 비트에 올라 울려 퍼졌다. 그제야 코 끝에 고수운 빵 냄새가 스쳤다.


  음악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딸랑하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반죽기 앞에 있던 나는 밀가루가 묻은 손을 탈탈 털었다. 이 작은 빵집을 찾은 두 번째 손님을 맞기 위해서다.

  다시 또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 이곡 역시 이 순간에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음악이다.

  이 음악은….


  





  무려 세 달 만에 쓰는 글입니다. 그 사이에 저는 빵집도 열었고 가게에만 몰두하기를 반복하다 한 달 전부터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빵을 구우면서 얼마나 많은 문장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차일피일하다가 수플레( 매거진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brunch.co.kr/magazine/wed-playlist)합류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요리와 여행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해서 몸과 마음이 바쁘지만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앞으로 종종 수플레 매거진을 통해서도 인사드릴게요.


  그리고 혹시 궁금해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빵의환향한 저와 , 그리고 아주 작은 빵집의 이야기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여전히 고되지만 이제야 글을  여유가 생겼거든요.  잠깐 사이에, 좋은 먹을거리란 무엇인가이 대한 답을 찾는 고민이전보다  깊어졌습니다. 여전히 끝맺지 못한  이야기도 마저 들려드릴게요.







  DJ Soulscape 2집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정말 명반 중 명반으로 꼽힙니다. 그의 음반 중 1집과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기도 한대요. 2000년 대 초반 음악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여러 서사가 뚝뚝 묻어나는 앨범입니다. 위 링크는 2년 전 Lovers 앨범 발매 15주년을 기념한 음원인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xxx가 참여했습니다. 문득 그의 공연을 찾아다니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특히 공연 자체가 없는 요새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러고 보니 원곡보다 윤석철트리오의 연주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원곡과는 분위기가 완전 다른 라이브 버전도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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