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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Oct 04. 2019

또다시 단식을 결심하다

하루이틀 정도는 굶어도 되잖아요



 올해도 어김없이 10월이 찾아왔다. 뜨거운 8월을 지나 9월이 다가올 즈음부터 나는 올해도 ‘먹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약 삼 년 전부터 이즈음에 자발적 단식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이유는 단 하나다. 여름 내내 맥주를 들이붓느라 지친 내 몸에게 미안한 마음을 만회하려는 마음이다.

올해는 그냥 건너뛸까 아니면 그냥 금주하면서 밥양을 줄이고 채소 비율을 높여볼까 등 평소엔 돌지 않던 머리가 여러 대체안을 마련하느라 정신없다. 여하간 나는 거듭 고민 끝에 단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번복할 새 없이 빠르게 접수(?)된 그 순간부터 나는 ‘D-Day 모드’로 돌입한다. 여기서 D-Day 모드란, 당분간 먹지 못할 것에 대비한 신나는 잔치 한마당이었다. 절대 따라 하지 마시오


  ‘어차피 당분간 못 먹는다’는 전제는 식사량과 주량이 평소의 1.5배까지 뛰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D-3. 그래도 이때부터는 정신을 좀 차려보려고 노력한다. '절대 안정'보다 중하다는 '절대 감식'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말하는 감식이란 하루를 두고 단계적으로 평소 먹던 양의 한 숟갈씩을 덜 먹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나의 위대한 위는 이마저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분명 한 숟갈씩 덜 먹으라고 했는데, 따악 한 숟갈만 더 먹고 싶은 삐딱한 마음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여하간 지난 9월 20일부터 약 나흘의 감식기를 가지고(물론 잘 지키지 못했다), 드디어 9월 24일. 단식 당일이 찾아왔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전날 잠까지 설쳤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5일의 단식과 5일의 보식까지 총 열흘의 인내 대환장 파티로 가는 길목에서 발발 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번 단식 기간에는 업무상 마감 주간과 겹치고, 일요일마다 있는 제빵 아카데미(심지어 이 주엔 시험), 약속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육아 중인 친구들과의 약속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지금 하지 않으면 더워서 혹은 추워서 하지 못할 나날만 있는 것을. 여하튼 다시 시작이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단식을 하다 보면 종종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할 때가 있다. 회의 후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간다거나 무언가를 건네는 동료에게,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말이다. 그때 단식 중이라고 하면 대개 두 부류로 반응한다.

1. 미쳤어?

2. 그걸 미쳤다고 해?     

지금이야 내가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으니 되묻지는 않으나 첫해엔 대개 이런 반응이었다. 심지어 한 친구는 너 그러면서 몰래 짜장면이랑 치킨을 먹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긴 회사도 광화문이니 뭐 정말 아닌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엔 FMD 식단, 간헐절 단식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전보다 단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져 긍정적인 반응도 꽤 있다.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부터는 몸의 상태를 상세하데 기록해보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은 단식을 해오면서 하루를, 크게는 그 열흘을 버틴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무언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기록하기 싫을 만큼 날려버리고 싶은 기억이기도 했고(그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럴 정신도 정성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마다 약간씩 몸의 상태, 고통의 정도와 종류에 미세한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서너 번의 데이터를 기억에만 의존하기엔 아까운 몸의 여정이다.


  이 기록을 공개하기에 앞서 단식 중 해야 할 것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단식이라고 해서 정말 하는 것 없이 먹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경기도 오산이다. 사실 단식하는 방법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가 하는 단식은 정말 챙길 것도 할 것도 많은 방식이다. 그만큼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생수 단식이라고 해서 물만 먹는 단식도 있긴 하지만, 내가 가는 단식센터나 관련 서적에서도 되도록 몸에서 필요한 성분의 최소량은 섭취할 것을 권장한다.

* 단식 중 섭취해야 할 것
  - 소금(정제소금 제외, 주로 (구)죽염) 약 2.5~3g
  - 감잎차 500ml
  - 산야초 효소 30cc
  - 된장차 세 잔(종이컵 기준)
  - 물 약 4L(생수, 산야초 희석액, 감잎차 포함)     
* 단식 중 해야 할 것(대환장 포인트 주의)
  - 풍욕
  - 냉온욕 및 각탕
  - 찜질(겨자, 된장)
  - 관(환)장 *눈을 의심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관장이 맞습니다.     


  단식하는 5일 동안 섭취할 것을 제때 챙기고 해야 할 것을 하다 보면 정말 단 10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말이 3g이지 생 소금을 저 정도 먹는다 치면 놀라울 정도로 정말 어마한 양이라(그리고 한 번에 먹으면 몸에 무리가 간다) 이를 8회에 걸쳐 나눠서 먹는데, 이 또한 앞뒤로 15분 동안은 액체류를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약 4L에 해당하는 물을 먹어줘야 하는데, 단식 센터장님이 대체 왜 일과의 시작이 ‘눈을 뜨고 난 후부터’라고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니까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를 열심히 마셔재껴야 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먹는 것뿐이랴, 단식의 첫 번째 목적인 노폐물을 원활하게 배출하기 위해서는 풍욕, 냉온욕, 관장 이 세 가지도 빠지지 말고 해야 한다. 무릎 아래까지 뜨신물에 발을 담가 몸을 따뜻하게 해 준 다음(각탕), 마치 철 만난 메뚜기 마냥 냉탕과 온탕을 약 1분간 번갈아 왔다 갔다 해야 한다(냉온욕). 집에서 하는 것은 무리이고 목욕탕에 가야 하는데 급기야 나흘 째에는 목욕탕 아주머니가 나에게 ‘뭔 때를 그렇게 매일 밀어유’라고 했다. 이게 또 끝이 아니고 집에 와서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또다시 노폐물을 배출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평소 옷에 가려진 세포를 깨워야 한다며 옷을 홀딱 벗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거둬냈다 하는 풍욕을 말이다. 그래, 뭐 여기까지는 노폐물을 배출한다는 명목 하에 할만한 것들인데 마지막이 문제다. 작년 이 맘때에도 썼지만 해마다 겪는 일인데도 나에게 관장은 여전히 넘기 어려운 환장의 관장일 뿐이다. 관장이란…. (후략) 여기에 일상 업무를 비롯해 목욕탕을 오가는 수고, 그리고 다음 날을 위한 준비까지 하면 하루가 가루가 된다. 그리고 지쳐 쓰러져서 유난히 깊이 꿈나라를 여행한다.  


보식 첫날. 미음과 감잎차, 된장차. 사실상 단식과 다름없다.

  이 기간 동안 해야 할 것도 있지만, 나는 먹는 것 외에 자체적으로 금하는 것이 있다. 바로 유튜브(특정 채널) 시청과 포털의 맛집/일상 콘텐츠를 보지 않는 것이다. 뭐가 이렇게 맨 먹는 이야기인지 평소에는 그렇게 즐겨보면서 괜히 화가 나기 시작하고, 무분별(?)한 먹텐츠가 늘어나는(?) 세태(?)를 비판(?)하기에 이른다. 물론 평소에도 대량 먹방 콘텐츠에는 비판적이다만

퇴근 후 역에서 내려 목욕탕에 가는 길도 고역 그 자체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집을 지나면 평소에 즐겨가던 맥줏집이 있고, 그 옆 치킨집을 지나 목욕탕에 다다르면 호떡을 마치 '튀기듯 구워주는' 호떡집이 있기 때문이다. 삼 일째인가는 목욕탕에 가는 나의 축 처진 뒷모습을 셀프 상상했더니 정말이지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니 평소에 적당히 먹고 마시고 할 것이지. 할부도 아니고 무슨 놈의 벌을 일시불로 받는 거냐고, 요새는 무이자 할부도 잘되어있는데….     


  여하간 ‘글이 작품이 되는 브런치’이니 이만 각설하고(응?), 본격적으로 단식 기간 중 일어난 몸의 변화에 대해 적어보겠다. 만, 낱낱이 쓰기엔 ‘관장’이 있다 보니 읽는 분들로 하여금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자체 심의 후 정돈된 내용을 적어본다.  

   



1. 두통

  사실 두통은 단식 때마다 시달렸다. 평소에 생활 두통이 있는 건 아닌데, 단식 기간에는 머리가 깨어질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첫째 날보다 둘째 날이 심했고, 넷째 날부터는 서서히 통증이 감소했다. 흔히 말하는 명현반응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늘 용납되지 않는다. 명현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나는 다행히도 두통이 다였다.      


2. 입 마름

  이전에도 그랬나 여하간 겪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라면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유독 심했다. 물을 사 리터나 먹는데도 말이다. 보식까지 마친 지금까지 입마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나의 증상을 듣더니 센터의 국장님은 ‘평소에 술 많이 먹었지요?’라면서 별안간 팩트 폭격을 하셨는데, 그냥 웃었다. 거기에 ‘혹시 유독 맥주를 즐긴 거냐’라고 또다시 팩폭을 하시는데 또 웃었다. 몸의 수분을 앗아가는 맥주는 평소 장을 마르게 하고 기간 내 아무리 수분을 채워줘도 이미 말라버린 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들이부어도 부족할 거라고 하셨다.


3. 기력 없음(?)

  단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90%가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물론 먹는 것이 없으니 기력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정말 나도 쓰면서 믿기지 않지만 그 반대다. 내 생각엔 배고픔과 착각, 그리고 두려움, 그러니까 나도 팩폭을 좀 하자면사실 먹을 낙이 없는 것=기력이 없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기력 아무렇지도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수분과 비타민(감잎차), 염분(소금), 당(효소)을 끊임없이 채워주고 있으니 몸도 어찌 됐건 간에 맛있는 쾌락은 못 느끼지만 그냥저냥 살만하긴 한 것이다. 그리고 국장님은 '그동안 먹어온 게 얼만데….'라면서 말끝을 흐리셨다. 게다가 소화할 것이 없는 장기도 잘 자고 쉬는 덕에 오히려 깊은 잠을 자게  되고 아침이 말짱해진다. 물론 개인의 건강 상태, 단식 방법에 따라 다르다.          


4. 술 냄새

  이 부분은 자체 심의를 할까 고민한 부분이다. 이렇게 써버리면 내가 정말 술통에 빠진 심각한 알코홀릭 상태로 비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단식에서 처음 겪은 신기한 반응이므로 적기로 한다.

참고로 나는 일 년 중 6~8월에 맥주를 집중적으로 마신다. 이유는 뭐 여름이니까 그렇고, 빈도는 주 4회, 양은 한 캔에서 세 캔. 약속이 있는 날엔 이보다 더 많이 마신다. 물론 이때만 그렇고 다른 때엔 안 마시느냐, 또 그렇진 않다.

여하간 단식 둘째 날이었는데, 갑자기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헛것이라면 헛것을 봤다고라도 하지, 헛냄새를 어떻게 표현할지 참 애매하다.  술을 마신 이후나 그때나 두 쪽 다 제정신은 아니어서 혹시 어젯밤 내가 나도 몰래 술을 마셨나 하는 착각에 빠졌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단식 강의 중 언급된 내용이기도 하다. 평소에 술을 많이 먹은 사람은 술 냄새가, 고기를 많이 먹은 사람은 고기 냄새가 난다고 말이다. 평소에 특정 에너지원을 정량보다 과다하게 섭취하면 저 스스로 태울 겨를도 없이 몸에 쌓이게 되고, 단식 기간에 그간 쌓인 것을 태우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미 분해된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이 의학적으로 맞을지는 모르나 기분 탓인지 여하튼 나는 '술 마신 다음 날'을 느꼈다. 먹는 게 곧 나라는 말이 진짜 아닌 말은 아닌 거다. 그리고 이것이 가끔씩 단식을 해도 되는, 해야 하는 이유기도 한다. 와, 나 얼마나 마시고 산 거야.


 

틈틈이 공부도 하고, 글도 썼다.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기도 했다. 칭찬해.jpg


 대표 증상으로는 이 정도고, 사실 올해는 놀라울 정도로 덜 힘들었다. 이렇게 구구절절 앓는 소리를 해놓고는...  체중 감량과 피부가 맑아지는 건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다. 사실 가장 좋았던 건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쨍한 ‘성취감’이다. 살면서 당연히 해오던 것들을 열흘 동안 다 끊고 산다는 게 정말 쉽지는 않다. 사실 요새는 이래저래 벌여놓은 일만 한바탕이라 이래저래 심란한 상태였다. 하지만 단식을 하면서는 오로지 ‘뭐가 대수겠어. 건강히 잘 먹고 지내는 게 가장 좋은 거지.’라며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선뜻 단식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이 식욕과 식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차고 넘치게 먹었으니 한 번 정도는 비울만 하지 않은가, 나는 자고 있지만 눈 감기 전까지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느라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는 장기에게 휴가를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며 나만 저녁을 누리면 뭘 하나 정작 내 장기는 누리지 못하는 것을. 게다가 어차피 앞으로 줄기차게 먹고살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물론 이게 얼마나 타당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먹고 싶은 욕구나 충동을 누른다는 게 정말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생각 따로 몸 따로 손 따로 눈 따로인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여하간 그제까지 나는 총 9일 동안의 단식(5일)과 보식(4일)을 무사히 마치고 글을 쓰고 있다. 원래는 하루 더 보식을 해야 했는데(보식 기간은 보통 단식 기간만큼, 혹은 2배를 해주는 것이 가장 좋으며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 보식이 더 중요한 과정이다), 오래전부터 예정된 가족 행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량, 채소 위주의 식사를 했다. 이래도 몸에 상당한 무리라 이튿날인 오늘은 다시 비워주기로 했다.


이 페이스로 나는 찰나의 계절인 가을을 즐기고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며, 따뜻한 봄을 맞으련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지금, 나는 찌지 말자. 장기에 휴식을 주자. 다가오는 주말 하루쯤은.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 책에서 확인하실  있습니다 :)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로 시작하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한 <나의 저세상 답사기.ssul>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이번 글은 단식 중 몸의 반응에 대해 썼다면, 작년에는 비장하게 각오를 다지는 글로 단식 이후의 변화에 대해 쓴 글입니다.

 나의 저세상 답사기. ssul 바로가기


덧붙여,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쓴 글입니다. 저는 생활 단식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하루에 1회 담당자분과 통화해서 상태를 확인하며 진행했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겠지만, 그 이상의 단식은 충분한 보식 기간과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신중히 진행하시기 바라요!

저는 단식 기간 내내 먹고 싶던 뿌리채소를 즐길 생각입니다. 뿌리채소가 맛있는 가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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