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계십니까
“우리 오늘은 뭐해 먹을까?”
금요일 퇴근길, 평소라면 어느 식당에 갈지 정하느라 바빴을 텐데 이번 주도 집밥이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지난 3월부터 우리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안타깝게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독려했고 양육을 위해 돌봄 휴가를 지원하기도 했다. 새 학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학생들에겐 유감이지만,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상황도 일어났다. 사람들이 좀처럼 밖에 나다니질 않으니 자영업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식료품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은 일찍이 ‘품절’ 되는 그야말로 호황을 맞았다. 세계적으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사실상 35억 인구가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다. 멈춘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오염물질을 내뿜던 차량과 항공기, 공장의 굴뚝도 멈추면서 아이러니하게 인도 뉴델리에서는 수십 년 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우리 집은 다름 아닌 주방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두 달 넘게 계속되자 집안일 중엔 유일하게 요리에 재미를 못 느낀다던 남편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나야 아무리 요리를 즐긴다고 해도 이렇게 매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면 말이 달라진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도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어느새 주방에 들어와 있었다. 남편과 나란히 주방에 설 일은 딱히 없겠다 싶었는데 코로나 19 이후로 퇴근 후에 함께 요리하고 밥상을 차려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다른 집도 비슷했다. 행동반경을 최소화하려고 외식이나 외출은 자제하고 주로 집에서 밥을 해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온라인 쇼핑몰은 평소보다 배송도 늦어지고 품절이 잦았다. 마트나 시장에 갈까 하다가 사회적 거리를 두자는 형편과는 맞지 않아 관뒀다.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는 묘책으로 일명 ‘냉파’, 그러니까 냉장고를 파먹기로 했다.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이라 냉장고 속은 훤히 꿰뚫고 있는 줄 알았다가 채소 칸 아래 깊숙이 처박힌 반쯤 상한 사과를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매일같이 여닫는 냉장실도 이 모양인데, 좀처럼 깊은 곳은 들여다보지 않는 냉동실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언제 시켰는지 기억조차 사라진 다양한 브랜드의 치킨 조각이 지퍼 팩에 두서없이 얽혀 있었다. 지난해 여름이 오기 전 더운 불 앞에서 한참을 지키고 서서 정성스레 삶아둔 완두콩도 저 깊숙이에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밥을 지을 때마다 넣겠다고 사들인 콩이 또 저 냉동실 귀퉁이에서 발견됐다. 이왕 양념하는 거 넉넉히 하겠다고 잔뜩 재어놓은 고기, 언젠가 먹겠지 싶어 고이 넣어둔 떡과 빵, 할인을 한다고 해서 대량으로 사다 둔 냉동식품은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얼어있었다. 당장 전쟁이 나도 삼 개월은 거뜬히 먹고도 남을만한 양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살림을 나름 재주껏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무더기로 쌓인 봉지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질서 없이 켜켜이 쌓인 이것들 때문에 정작 찾을 때는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채우고 채워도 부족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쟁여두기만 하면 언젠가 다 먹을 줄 알았다. 사실 ‘에잇,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데 이거 하나 못 먹고살겠어’ 하는 마음으로 더 양껏 채우려는 일종의 보상 심리도 분명히 작용했을 거다.
하지만 당장 허기 앞에서 냉장고 속 이것들을 대체 언제, 어떤 연유로 샀는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냉장고 속 식재료를 어떻게든 소진하려다 보니 ‘하얀 비지 해물찌개’와 같은 신박한 조합에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우리의 미션은 그저 이 많은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먹어 없애버리는 것 그뿐이었다. 그렇게 최상의 조합을 찾지 못하면 가끔 음식점에 가서 포장을 해오기도 했고 배달 음식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를테면 조개찜 같은 것이 먹고 싶을 때는 조개 한 포대를 사서 직접 쪄먹었다. 평소라면 기회비용을 따져 그냥 사 먹고 말았을 샤브샤브나 밀푀유전골 같은 음식도 집에서 더 푸짐하게 즐겼다.
냉장고가 비워지는 만큼 남편과의 이야기 소재는 더 풍족해졌다. 각자 찾아둔 요리법을 공유하며 최고의 맛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분주히 달려갔다. 다된 음식을 들고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회사 이야기, 근래 밀려드는 생각 등 그간 꺼내지 않던 깊숙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이 사십을 앞두고 최근 부쩍 늘어난 흰머리에 시무룩해하는 그의 말에 원래였으면 깔깔거리며 놀리기 바빴을 텐데, 이번엔 왜인지 안쓰러워 보였다. 식탁 위 밥과 국 사이에는 새삼스레 십 년을 지지고 볶은 세월이 놓여있었다. 둘 다 바깥일에 밀려 오히려 우리야 말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거리를 둘수록 남편과의 관계는 더 가까워졌고 우리의 밥상은 더 풍성해졌다.
풍성해진 밥상은 우리 집뿐만이 아니었다. ‘확찐자’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사람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잘 먹고 지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WHO가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하기 전인 2월부터 4월까지의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면 확산 초기에는 일찍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간편식이나 레토르트 제품의 소비량이 월등히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3월부터는 채소, 과일, 육류 등의 식재료 소비가 점차 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태가 장기화될 전망에 기왕 먹는 거 제대로 차려먹자는 소비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평소엔 거의 요리를 하지 않던 친구들도 무언가 만들어먹기 시작한 걸 보면 아예 아닌 말은 아닌 것 같다.
반면, 식품업계에서는 ‘면역력’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건강식품은 물론 채소, 과일 등에도 어김없이 ‘면역력 강화’라는 수식이 붙었다. 이쯤 되면 떡볶이도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할 정도다. 그런데 면역력에 관한 일부 기사에 따르면 애초에 면역력을 높이는 마법의 수프나 생명의 알약 같은 건 없다고 한다. 특정 병원체에 대한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백신 정도가 있을 뿐 면역 체계를 강화한다는 개념 자체엔 어떠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나 의사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들은 입을 모아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정도가 면역 체계를 돕는 유용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결국 잘 자고 잘 먹고 잘 지내면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치면 우리는 충분히 잘 지키고 있지 않은가. 잘 자고 잘 지내는 것까지야 개인 영역이라 가늠할 수 없다 쳐도 잘 먹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적어도 지금은 1950년대처럼 영양실조로 굶주리는 이가 없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니스트이자 <식사에 대한 생각(2020)>의 저자 비 윌슨은 ‘잘 먹는 것’과 ‘많이 먹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날 우리의 삶은 음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흘러넘쳐 괴로운 ‘텅 빈 풍요’라고 표현했다. 2015년을 기준으로 흡연이나 알코올 관련 원인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가공육이나 가당 음료가 과다한 식단인 ‘식이요인’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월등히 높다고 지적했다.
냉장고 속에 쌓인 것들을 끄집어내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에도 식당을 찾는 대신 도시락을 먹고 주말에는 특별한 일없으면 직접 음식을 해 먹고 있지만, 정작 돌이켜보면 냉동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을 사다가 데워먹는 일이 잦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신제품 후기에 혹해서 충동적으로 구매하거나 할인을 한다는 이유로 잔뜩 쟁여둔 경우도 많았다. 마트에 가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소스나 가루 등 신기하고 새로운 제품을 보고 호기심에 하나둘 산 것도 대부분이다. 차라리 맛있게 다 먹기라도 하면 좋을 것을 대개는 한 번 먹고는 냉장고나 수납장에 쌓아두기만 했다.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엔 채소나 과일 등의 신선 식재료가 사라지고 대신 알약의 종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많이 먹기만 했지 ‘잘 먹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도 이 근래 각자의 집에 머물면서, 냉장고를 털면서, 평소보다 주방에 더 자주 서면서, 함께 사는 이들과 부대끼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강도 높은 자가 격리 중이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영상이 화제가 될 때 즈음, 우리는 또 다른 재미에 빠져있었다. 달고나 커피, 수플레 오믈렛, 메이플시럽 버터까지 재료를 무려 천 번은 저어야 맛볼 수 있다는 요리에 빠져 너도나도 챌린지를 시작한 것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집에서도 놀지 않는 부지런한 민족’이라는 자화자찬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집에 머물면서 각자 소소한 재미를 탐구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 50여 일 동안 격리 중인 군인 친구 Y는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꾸리기 시작했다. 친구 J는 길고양이에게 줄 밥을 만드는 것이 우중충한 일상의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보드게임 도구의 매출도 늘었고, 심지어 그 옛날 가지고 놀던 공깃돌도 등장했다. 그야말로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비록 온라인이지만 실시간으로 해외 명소를 맘껏 둘러보거나 자신의 사진을 합성해서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세계 각국의 관광지는 한산 해지는 바람에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았고, 미술관이나 전시관 등에서는 온라인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계정을 열기도 했다. 결국 개학을 하지 못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은 저마다 겪은 '싸강 실수담'을 늘어놓으며 새 학기로 들뜬 마음을 웃음으로 승화하고 있다. 역시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고 자가 격리를 했다는 단군 신화 민족의 후예답다.
사회적 거리는 듬성듬성해졌지만, 가족이나 배우자, 함께 사는 이와는 거리는 더 가까워진 역설 앞에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떠올려본다. 뿌연 미세먼지가 걷히고 선명해진 파란 하늘, 30년 만에 히말라야 산맥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는 네팔, 에메랄드색 물빛을 되찾았다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코로나 19는 우리를 혼란에 빠트렸지만, 헝클러 진 것을 되돌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가 힘을 합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있으며 코로나 19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경제, 사회적으로도 많은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전문가들은 앞으로 우리의 삶이 코로나 19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생활 방역 체계를 잡아야 하고, 지금처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야생동물을 잡는 바람에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 인간의 잘못임을 인정하면서 더 멀리는 환경 윤리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손을 씻거나 마스크를 착용하는 개인위생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질병에 나약해지지 않도록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해졌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잘 먹고살기 위한 몇 가지 약속을 정했다.
첫째, 최소 평일 저녁 두 끼, 주말 점심 한 끼는 냉동식품 없이 직접 차려 먹기
둘째, 주 2회는 채소로만 밥상 차리기
셋째, 알약이나 음료, 가루 등 대체품 대신 채소와 과일 등을 골고루 먹기
넷째, 먹을 만큼만 장보기(냉장고를 여유롭게 유지하기)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바쁘게 살다 보면 참 번거롭고 귀찮은 것 투성이긴 하다. 게다가 익숙한 맛이 더 무섭다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입이 하루아침에 담백함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참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들 슬기로운 생활 중이시죠? 저도 약속도 잡지 않고 거의 회사-집만 다니면서 지낸 지 어언 두 달이 다되어 갑니다. 그사이 봄도 왔고 꽃이 피었어요. 이때쯤이면 농촌은 열매며 잎이며 한창 수확하느라 분주할 때인데 사회가 멈추다시피 하는 바람에 난감한 농가가 많다고 해요. 다행히 여러 경로를 통해 재고를 줄이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기왕 집에서 밥 먹을 거, 한창때인 채소나 과일을 사서 풍족한 한 끼 드셔 보세요!
개인적으로는 출간 준비 때문에 정말 바쁜 봄을 맞았습니다. 거의 막바지 작업 중이라 올여름이 되기 전이면 제 첫 책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한 봄입니다.
여하간 부디 오늘도 맛있는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