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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Oct 31. 2017

가을을 거두면

결실에 감사하는 우리의 오랜 축제, 가을걷이

“가을걷이? 가을을 걷어?”

“응, 그런가 봐. 가을걷이”



'가을걷이'라는 단어를 듣고 네 음절로 친 말장난을 떠올려본다. 이게 벌써 오 년 전의 일이다. 가을을 걷는다니! 문자 그대로 가을을 걷는(walking) 건지, 아니면 거두어들인다는 건지, 무엇이 됐든 가을의 끝자락을 기념하고 마무리한다는 의미이지 싶다.


모내기를 마치고 한 해의 풍년의 기원하는 '단오'와 가을께 수확을 기념하는 '가을걷이'는 농사짓는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다. 사실 삼십 대인 나에게는 그 옛날 사회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모습이기도 하다.


아! 가을을 거둔다니 단어를 찬찬히 곱씹어볼수록 너무 낭만스러운 조합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밀려온다.

여차저차 나는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가을을 거두어들인다. 쾌청한 대낮에 걸쭉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니 별안간 여러 생각이 스친다.


'가을걷이' 잔치로 신명나는 어느 도심 속 한복판, 여기저기서 보았던 생산자의 얼굴을 마주한다. 취재 차 혹은 예전 업무 때 뵀던 생산자, 이름만 스쳐들은 생산자 등 저마다 다양한 인연으로 악수를 나누고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그제사 쑥스러워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이 입 주변을 맴돈다.

올 해도 너무 감사했어요.


추수감사제

가을걷이는 추수감사제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늘과 땅에게 올해도 귀한 결실을 보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 수확물을 한데 모아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감사도 감사지만 다가오는 내년에도 풍년이길 간절히 기원한다.


부디 이 마음이 하늘에 닿길 바라며 고마움과 간절한 부탁이 담긴 종잇장을 태워 하늘로 날린다. 이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옛날이었으면 마을 사람이겠다) 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얼핏 종교 의식처럼 보이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절절한 바람에 마음이 울린다. 조상과 같이 특정 대상이 아닌 하늘과 땅에 고마움을 전한다니, 그것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모여서. 다섯 번째로 마주하는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진기한 풍광이 아닐 수 없다.



어머, 여기네요!
올해도 달달한 참외 잘 먹었어요

한편 드넓은 광장에서는 반가운 만남이 이어진다. 어느 지역과 특정 농산물을 되뇌며 생산자와 내가 구입한 생산물을 연결시켜보는 재미도 한몫한다. 제 아무리 좁은 땅덩이라지만 씨앗을 틔우고 싹을 내어 맺힌 결실을 농촌의 누군가 거두고, 도시의 누군가는 정성스레 밥상에 올리는 인연이란 보통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이런 자리에서 당사자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은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하다.

꽤 오래전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전통을 서울 한복판에서 이어간다는 것도 놀랍다(그 가운데에 내가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음악이라고는 그저 멀리서 물 건너온 웨스트, 이스트 힙합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어렸을 때는 '전통'이라는 것은 마냥 촌스럽고, 고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무언가 '갖춤을 위한' 의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융통성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지금은 사라져 가는 게 아쉬울 정도다.



초딩때 잡던 얇은 줄과는 차원이 다르다, 역시 프로의 세계는 남다르다

각자의 위치에서 놀다가 어둑해지기 직전에는 모두가 한가운데로 모인다. 어느새 어마한 에너지를 쏟고 있는 너무 못생겨진 자신에게 놀란다는(?) '줄다리기' 순서가 이어진다.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서 ‘줄다리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초등학생 시절, 운동장 모래 바람 마셔가며 우리 반을 위해 온전히 치러낸(?) 그 순간을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거칠하고 굵은 줄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다른 줄을 잡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우리가 있을 뿐.


그러다 오 년 전부터 나는 매해 굵고 튼실한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반대편에 마주한 사람들도 한결같다. 그들은 우리 집 밥상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분들. 줄다리기는 우연인지 뭔지 승리를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은 무승부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손에 묻은 지푸라기를 탈탈 털어내고 힘 좀 쓰느라(사실은 막걸리 기운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들을 보면서 한바탕 웃어댄다. 이때부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역시 모든 쾌락(?)의 대미는 흥의 폭발이다. 신명 나는 사물놀이 한 판이 이어진다. 가락은 점점 더 세지다 빨라지고, 커지며 잔치의 순간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한다. 신나는 가요 몇 곡을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흥을 돋운다.


무아지경이다(나만 그런가)

파아란 하늘 아래 형형색색 만장이 나부끼고, 만인의 춤인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스치는 손끝을 보고 있노라면 가만히 있기 힘들어진다. 발끝이라도 까딱대야 직성이 풀린다. 막걸리도 한 잔 했겠다, 어느덧 나도 그 무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해서 가락 위에 몸을 얹어본다. 여차하면 테크노부터 브레이크 댄스도 가능할 듯싶다. 그렇게 흥겨운 가락 위에서, 둥그렇게 손을 잡고 모인 사람들 모두 한 마음으로 ‘하늘에 감사를 전하는’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하늘과 땅과 바람에 감사를,
낭만적인 가을 끝자락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 아닌가. 어쩌면 땅에서 농산물이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공을 사실상 고생한 농부에게 전부 돌릴 법도 한데, 어느 한 사람의 공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농사는 하늘과 함께 짓는 거라는 옛말을 증명이나 하듯, 그렇게 우리는 자연에 모든 공을 돌리고 고마움을 전해왔다.

하늘과 땅과 바람에 감사를 전한다니, 그것도 낭만적인 가을 끝자락에서.



추위에 코끝 찡해지는 겨울이 다가온다. 바쁘다는 농사는 이제 비교적 한가한 기간에 접어든다. 하지만 어김없이 다가올 봄을 맞이하기 위해 씨앗을 받고, 헐거워진 쟁기와 낫을 정비하느라 쉴 틈이 없다. 가을 내내 수확한 몇 가지 작물을 겨우내 쟁여두려고 짭조름하게 절여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쳐다보기 어려웠던 소의 큰 눈망울을 한 번 더 보리라. 여물을 주고, 투박하지만 사랑을 담뿍 담은 손길을 보내리라.

더 이상 시간과 더위에 쫓겨 먹는 밥이 아닌 여유롭고 둥그런 밥상 위에서 내가 수확한 것을 꼭꼭 씹어 넘기리라. 재잘거리는 손주 손녀가 먼 도시에서 찾아와 모처럼 왁자지껄한 주말.


이 모든 게 가을을 거두어들이면 볼 수 있는 농촌의 고즈넉함이다.






어느 생협에서 진행한 가을걷이잔치 행사에 참여하고 쓴 글입니다. 얼마 전 할로윈도 있었지요. 네, 저도 할로윈데이 참 좋아했었는데요!(물론 지금도 재밌다고 생각합니다만)

10월 마지막 주엔 우리에게도 오랜 전통인 '가을걷이'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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