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톡식 컬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여름 저는 조직문화라는 주제에 갑자기 흥미가 생겨 공부를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사 실무로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인사조직 컨설팅으로 경력을 이어왔고 약 10년 전부터는 리더십이나 조직개발 분야에서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의 다양한 경력도 그렇고 큰 그림을 보려는 성향도 그렇고 한우물만 파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전문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저는 남들과 다르게 인사제도와 같은 조직의 하드한 부분과 리더십과 같은 조직의 소프트한 부분을 모두 폭넓게 경험해 본 셈입니다.
저는 그때까지 조직문화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다지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주제 자체가 손에 잘 잡히지도 않았을뿐더러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보면 답을 찾기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조직문화 문제는 탑에서 시작하지만 지배구조상 탑이 바뀔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금까지의 제 다양한 경력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바로 조직문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겁도 없이 너무나도 호기롭게 조직문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여러 책과 논문을 읽으면서 조직문화의 정의는 무엇이고 조직문화는 어떻게 진단할 수 있으며 어떻게 건강한 조직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직문화에 대한 진단 모델과 도구들을 공부하던 중에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들게 되었습니다. 왜 모든 조직문화 진단모델들은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는 문화적 특성만을 담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로버트 퀸(Robert E. Quinn)의 경쟁가치 모델도 변화, 창의성, 목표달성, 경쟁, 규칙과 통제, 효율성, 그리고 팀워크 등 주로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문화 특성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리더십 개발을 해오면서 리더의 탈선 요인(derailer)이라고 부르는 성격의 어두운 측면, 즉 리더의 완벽주의적 성향이나 나르시시즘 등을 진단하는 도구를 많이 활용해 왔고 이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왜 어두운 측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모델이나 진단도구가 없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톡식 리더(toxic leader)를 파악할 수 있는 성격진단 도구는 있지만 조직문화 영역에서는 톡식 컬처(toxic culture)를 파악하고 진단할 수 있는 모델이나 관점은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한 조직의 문화를 진단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의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입니다. 주로 직원들이 조직의 환경이나 일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지거나 몰입에 방해를 받게 되는 경우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내고 그 근본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지향하는 조직문화와 현재의 조직문화가 차이가 있는 경우입니다. 새로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에 걸맞은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경우 모두에서 톡식 컬처라고 부를 수 있는 조직문화의 어두운 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경우는 조직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 모델이나 관점이 있어야 조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 경우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기존에 존재하는 구습이나 악습을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내에서 조직개발의 영역을 발전시키는데 작게나마 일조하고 싶다는 나름대로의 개인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조직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면서 조직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와 그 근본원인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조직개발의 첫걸음이라는 신념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로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조직문화 진단 모델들만을 가지고는 문제에 대한 간접적인 추론만이 가능할 뿐 현재 조직이 안고 있는 조직문화의 근본적 이슈와 원인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공부는 일단 제쳐두고 톡식 컬처를 연구하는데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교수님께서 특정 연구 분야나 논문이 없는 경우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이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일단 한번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무모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톡식 컬처에 대한 정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문헌들을 찾아보았지만 제 마음에 쏙 들정도로 잘 정리된 자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관련 자료들을 읽으면서 저 나름대로 톡식 컬처의 유형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톡식 컬처의 현상과 관련된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성과 압박의 문화, 지나친 경쟁 문화, 권위주의 문화, 사내 정치 문화 등의 유형으로 분류해 보고 각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도 정리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톡식 컬처라는 주제에 빠져있을 무렵 저는 톡식 컬처라는 것이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인 안세영 선수가 기자회견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해서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공공연하면서도 쉬쉬해왔던 대회 운영이나 선수 선발 과정, 그리고 예산운영에서의 불투명한 문제들이 민낯으로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날과 같은 다양성의 시대에 구시대적 산물로만 생각했던 권위주의적 문화나 파벌문화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경쟁사인 하이닉스에 밀려 고전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자사의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일도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는 문제나 리스크를 경영진에게 그대로 보고하지 않고 숨기거나 희망적인 내용만 일단 보고하고 이후에야 뒷수습을 하는 조직문화가 만연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톡식 컬처, 즉 성과를 압박하는 문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대기업조차 이런 상황인데, 미디어의 관심조차 거의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어떨까요? 아마도 대기업에 비해 톡식 리더나 톡식 컬처에 구성원들이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클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들이 톡식 컬처의 문제가 더 심각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뉴스에서는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회사의 자원을 마치 개인의 것처럼 유용하거나 직원들에게 성과를 낼 것을 압박하고 욕설이나 폭언을 하는 여러 톡식 리더들에 대한 기사들이 계속적으로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드라마틱하게도 평온한 주말을 맞이하던 지난겨울 온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12. 3. 비상계엄선포입니다. 후보 시절 목적이 순수하면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좋다고 공언하기도 했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자신에게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들로 정부 조직의 요직을 채우면서 정부 조직에 강한 독성을 뿌리내리게 했던 대통령이 한 나라를 일순간에 대혼란으로 빠트려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왜 그가 보였던 이러한 마키아벨리적 성향이나 나르시시스트적인 성향에 대해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요?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톡식 컬처에 관심을 가지고 제 나름대로의 관점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보니 많은 기업이나 기관들에서 나타나는 톡식 컬처 문제가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이 톡식 컬처가 구성원의 몰입과 조직의 생산성에 미치는 해악의 중대성이나 심각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한번 독성이 뿌리내린 조직을 건강한 조직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톡식 컬처의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리더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조직의 경영자들이나 기관장들은 당장의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구성원들의 에너지와 힘을 빠지게 하고 감정적으로 지치게 만드는 톡식 컬처를 제거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의 문제 제기를 통해 독성 있는 조직 문화의 문제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나 조직에서 더욱 공론화되기를 기대합니다.
톡식 컬처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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