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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Aug 13. 2019

멋들어진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살아있는 그 곳으로

day3. 단 한 번의 셔터, 단 한 번의 기회

여행을 마음먹게 하는 요소의 대부분은 사진이다. 그리고 돌아와서 여행을 추억하는 것 역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많은 관광객들이 찍은 사진을 보았고, 그 풍경을 기대했다. 파란 하늘 밑으로 길게 몰아치는 거대한 폭포, 폭포 옆에 뜨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무지개. 정말 사진 그대로 대부분의 여행 동안 날씨의 심술에서 벗어나 거의 1일 1무지개를 보며 여행을 했다.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의 날씨 변덕을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던, 사진과는 달랐던 이 날 또한 기록할만했다.


사진에 대해서 하나 더 말해보자면 또 우리 모임만의 공통점이 있다. 아무도 가져오자고 하지 않았는데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저 필름 카메라 가져왔어요!"라고 말했는데, "저도 있어요", "헐 저도 챙겼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3개의 필름 카메라로 든든하게 아이슬란드 여행에 나섰다.


세 번째 날은 dana님이 써주신 것처럼 급서점에 들르고, 셀야란드포스에서 무지개의 축복을 받으며 시작했다. 그러나 스코가포스로 이동하면서 날씨가 급격히 흐려졌고 급기야는 폭포에서 튀기는 물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물을 맞으며 스코가포스 구경했다. 사진 속의 청량하고 파란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 역시 한 폭의 사진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순간, 이 분들, 역시 심상치 않다. 갑자기 가위 바위 보 해서 바닥에 눕자! 며 sunnyi님이 심상찮은 제안을 했다. 날궂이라고 했던가? (날궂이 -  날씨가 궂은 때에, 쓸데없는 짓이나 괜한 일을 함.) 우리는 정말로 괜한 짓을 했다. 가위바위보는 제안한 사람이 걸린다던데, 정말로 sunnyi님이 걸렸고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바닥에 누워서 사진을 찍었다.

뒤의 폭포와 산 배경은 합성이 아님


내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쓸데없는 짓이 제일 재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관광지에서 쓸데없는 짓을 했고 고등학생처럼 깔깔거렸다.


그다음 코스는 디르홀레이였다. 여기에 대해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코끼리 바위가 유명하다고 했다. 마침 가는 길이기도 하고 명소이니 들러보기로 했다. 일단 구글 지도가 이끄는 대로 도착은 했는데, 그냥 황량한 벌판 같았다. 가이드 투 아이슬란드에 따르면 이렇다는데, 우리가 간 곳에서는 바위도 잘 보이지 않았고 그냥 바다뿐이었다. 게다가 퍼핀 서식지로 유명하다던데, 새 자체도 없었던 것 같다.

가이드 투 아이슬란드의 디르홀레이



내가 마주한 당황스러운 돌 길
애처롭게 녹슨 고철도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여기서 어디로 가야 저 각도가 나올까?

사진과는 다른 목적지를 만났는데도 우리는 저 고철은 난파된 배에서 나온 거다, 아니다 측우기다, 하면서 그저 재미있게 약간은 대충 사진을 찍으며 돌길을 걸어 나왔다. (알고 보니 저 풍경은 디르홀레이 등대에서 볼 수 있는 거였고 거긴 우리 차와 운전실력으로 가기엔 너무 험한 곳이었다.)


다음은 근처에 있는 검은 모래 해변, 레이니스피아라다. 여기는 주상절리로 유명한 해변이라고 한다. 여기도 가보니 크게 신기하진 않았다. 제주에서 많이 본 주상절리가 있었고 제주에도 있는 검은 모래 해변이었다. 날씨는 여전히 우중충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바다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도 신나 버렸다. 파도 끝까지 따라갔다가 파도가 우리를 따라오기 전에 도망치는 놀이, 바보 같은 사진 찍기 대회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는게 얼마만인지!

여행 중에 제일 우중충하고 기대와는 다른 풍경을 보았지만 생각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앨범을 보면 이 날 가장 크게 웃는 사진이 많고 바보 같은 사진도 제일 많다.


날은 흐리고 바다는 눈 앞에 있고, 너무 신난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생겨 챙겨 왔던 일회용 카메라를 써보기로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19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다른 인종의 남자들이 모여서 대화하고 있었다. 딱히 사진을 부탁할 사람이 없어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160도 안 되는 작은 키라서 그들은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 허리를 잔뜩 숙였다. 그리고 나는 일회용 사진기로 우리를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이 실수로 셔터를 누르면 어쩌지? 갑자기 걱정이 된 내가 용기 내어 덧붙인 말은 "저스트 원 췐스"였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던 언니들은 키 작은 내가 그 속에 끼어있다는 것에서 1차 웃음, 한 번에 잘 찍어달라는 말을 저스트 원 챈스라고 한 것에 2차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우린 또 별 것 아닌 것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도 여행도 이 순간도 저스트 원 챈스다. 이 사람들과 이곳에서 함께하는 이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일회용 카메라의 필름만큼 셔터 한 번 초침 한 번에 덧없이 스러지는 우리들의 시간. 웅장한 사진보다 살아있는 우리들의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그 날. 여러 번 찍고 찍어서 인스타에 올릴 작품 같은 사진을 얻지는 못했지만 한 순간 크게 웃음을 터뜨려 예쁘지는 않은 모습들은 글로써 더 소중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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