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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뱀마법사 Jan 13. 2023

아플 것 같아요?

  미루고 미루다 치과를 갔다. 치과를 가는 것은 왠지 모르게 벌 받으러 가는 느낌, 그것과 비슷하여 제법 오랫동안 시큰거리는 이를 애써 모른체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니 미루면 안될 것 같아서 결국 병원을 찾았다. 내 것이지만 나는 잘 볼 수 없는 내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오래전에 했던 신경치료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생긴 것 부터 무섭게 생기고, 각종 기기가 달린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점점 뒤로 젖혀진다. 너무 많이 내려가는 거 아니야? 라고 느낄 때쯤 비로소 의자는 멈춘다. 얼굴에는 구멍 뚫린 천이 올려졌다. 눈을 가만히 감는다. 어차피 가려진 천 때문에 눈을 뜨고 있다고 한들 밖의 상황을 볼 수 없고, 밖에 있는 사람들도 내 얼굴이 안보이겠지만 어쩐지 두려운 이곳에선 얌전히 눈을 꼭 감게 된다. 양 손은 가지런히 모아 배 위로 올리고, 고분고분 입을 쩍 하고 벌린다.

 “조금 더 크게 벌려보세요.”

 “아…….”

  드륵 드륵

  지난번 치료로 떼웠던 부분을 갈아낸다고 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내 이의 크기에 비해 소리가 지나치게 큰 것 같다. 드르륵 거리는 시간도 너무 긴 것 같다. 저렇게 오래 갈다가는 내 이가 몽창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뭔진 모르지만 내 입 속에 들어있는 저것이 드릴같이 생긴 것이라면, 아래로 아래로 계속 파 들어가다가 조만간 이를 모두 뚫고 잇몸을 찔러버리진 않을까? 내 입을 통해 각종 기기며 의사 선생님의 손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 입을 크게 벌린들 그래봤자 입이니까 의사 선생님도 안을 잘 못 봐서 잇몸까지 뚫어버리면 어떡하지? 간호사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내 이, 아니 정확히는 내 입 속에 있는 뭔지 모를 기기의 위치를 잘 보고 계신게 맞는 거겠지?

  온몸이 찌릿찌릿, 움찔움찔한다. 배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둔, 마주 잡은 두 손을 더 꽉 쥔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세어 나왔다.

‘으…’

  그 소리를 들으신 의사선생님이 물었다.

“아파요?”

  ‘응? 나는 아픈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아플 것 같아요?”

‘정답입니다 선생님. 아프진 않았지만, 이를 몽땅 갈아버리는 것 같은 소리와, 그로 인해 느껴지는 온몸의 진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아플 것 같이 느끼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한껏 입을 벌리고 있던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 두려움, 불안함, 걱정 따위는 실제 내 감정이 아니라 ‘그럴 것 같다’였다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 그것은 대부분 상황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불확실성, 이것이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두려워하지만 그 이유는 귀신이라면 반드시 사람들을 해코지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들이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도 그것이 대단히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그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지를 진정으로 경험해본 사람이 현 생을 살아가는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어떤가?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떤 이는 대학교, 또 어떤이는 대학원, 사교육, 공교육 그리고도 아주 오랫동안 여러가지를 배우지만 실패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부단히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만 배웠지,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실제로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나같은 범인들이 훨씬 더 많을텐데 말이다.

세상이라는 곳은 하고 싶은 모든 걸 허락할 만큼 녹록치 않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때문에 살다보면 당연히 좌절도 경험하고 실패도 겪게 된다.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에서나 나오는 판타지일 뿐이다. 그러나 실패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어떻게 다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지를 배우지 못한 우리는 늘 실패가 두렵다.

이 두려움 앞에 박찬욱 감독의 지혜를 방패삼아보자. 그는 초등학교 딸아이의 숙제 ‘가훈 적어오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아니면 말고’. 우리는 실패 이후에 삶에 대해 잘 모르거나, 내 삶이 망할 것 같은 느낌만으로 두려워한다. 우리는 실패가 ‘아파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플 것 같아서’ 걱정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두려운 것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실패를 얼마나 크게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를 만회할 수 있는 남은 삶이 있다. 그러니 실패한다고 해도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 더이상 실패 이후의 삶이 불확실하지 않다.

치과 치료는 결국 끝난다. 치료 과정에서 아프기도하고 소리를 지르기도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치료는 끝나고 그 치료 이후에는 더 건강한 치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플 것 같아서’ 두려워하는 마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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