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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별 Dec 05. 2023

복직 후 나를 기다리던 것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복직한 지 일주일,

메신저에 사장님의 알림이 울렸다.

대표실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펜과 노트를 챙겨 얼른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심 보통의 회의를 기대했던 것 같다.


서로의 의견이 오고 가고..

프로젝트에 관한 피드백을 받고..

그런 장면들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기대했던 보통의 회의가 아니었고

내가 받은 것은 날 선 지적과 지켜보겠다는 경고였다.


복직하자마자 내가 맡아서 한 작업이

경력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장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회사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1년 3개월의 휴직기간을 거치고 온 나로서는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복직한 당일, 회사에는 내 자리조차 없었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컴퓨터가 생겼다.


모든 디자이너가 맥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화면이 자꾸 멈추는 윈도우를 써야 했고

저사양 키보드와 마우스, 달라진 단축키 등

달라진 작업 환경으로 버벅거리는 와중에  

다소 무거운 프로젝트를 맡았었다.


그 프로젝트는 야근을 하며

겨우 3일의 짧은 데드라인을

맞추고 보냈던 결과물이었다.


부족했을 수 있지만

피드백의 방식에 있어서

팀장들이 보는 앞에 불려 가

감정이 담긴 지적을 보란 듯이 받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휴직기간 동안

업무 감각이 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역량이 부족했다.


적응할 시간을 배려받는다면 좋은 것이겠지만

우선 나는 9년 차 직장인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고,

빠른 시일 내에 인정받는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


낯선 작업 환경, 업무 가이드의 부재 등

나름대로 핑계를 댈 것이 있긴 했지만

사회에 다시 나왔으니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적응하는 편이 더 나았다.


워킹맘이 되니 아기의 건강, 반찬, 어린이집 등

신경 쓸 것이 많아졌지만

감을 잡을 때까지 먼저 업무에

최대한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팀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가 배울 것이 많다는 뜻이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코로나에 걸려

아픈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업무에 매진했고

예상보다 한 시간 늦게 퇴근했다.


나보다 육아가 서툰 아빠에게 맡긴 터라

불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집에 갔다.


다행히 주말 내내 아팠던 아이는

한결 나아진 편안한 얼굴로

퇴근한 나를 반겨주었다.


웃음기 어린 아기 얼굴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며 직장에서부터 가져온

긴장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이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다시 육아로의 출근.

오늘의 육아를 잘 끝내고

워킹맘의 내일도 잘해보련다.


모든 게 전과 같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육아도 출근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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