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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별 Jul 22. 2024

독박 육아에서 '행복한' 육아로

행복을 더 알아가기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

10여 년을 해오던 일이니

금방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워킹맘의 일상은 상상보다 고단했다.


혼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과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확실히 난이도가 달랐다.


나의 경우에는 평일에 남편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어서 더욱 힘들었다.


아기가 아프거나 나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가장 가까운 육아동지인 남편에게

S.O.S를 보내고 싶었지만

극심한 업무 강도에 치여 매일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에게 도움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 남편은 다정하고 육아 참여의 의지가 많은 편인데

그럼에도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늘 문제였다.


바빠서 점심식사를 건너뛰기도 하고

빠르면 새벽 2시, 늦으면 새벽 4시에 들어오는

힘든 나날을 반복하고 있었다.


남편의 이직과 나의 복직이 겹치면서 시작된 이 문제는

나의 억울함과 분노를 끝없이 키워냈다.


아기를 키우며 우당탕탕 지지고 볶고..

때로는 오손도손 다정하게 서로 돕고..

나는 육아를 함께하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늘 이렇게 그려왔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래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의 가치는 ‘같이’였다.


그 ‘같이’에는 당연히 육아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런 내게 워킹맘의 육아 독박은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억울함이. 분노가.

매일같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철-썩. 철-썩. 끝도 없이 계속.


육아와 출근은 매일 계속되기에

이 감정도 잦아들 틈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

수많은 싸움을 반복했고,

힘들다고 당장 서로의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기에

체념했다가 다시 억울했다가 또다시 체념하는

폭풍우 같은 날들이 지나갔다.


지친 발걸음으로 퇴근하고

아기와 놀이터 한 번 갔다가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겨우 끝내고 나면 밤 11시.

아기 준비물 챙기고, 간단한 집안 청소하면 밤 12시.


체력이 달려서 화낼 힘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분노할 힘은 생겨날 때가 많았다.


‘왜 나는 돈도 벌고, 육아도 하고, 살림도 다 해야 해?’

‘남편은 바빠도 일 하나만 하는데?’


속 좁고 유치한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이런 생각을 1000번쯤 한 것 같다.


사실은 분노의 화신이지만

죄 없는 아기 앞에서는 나름대로 가면을 쓰고

최대한 나이스하게 보이려 애쓰며 살아가던 그때,

이중적인 감정을 끝나게 해 줄 이야기를

어느 날 우연히 만났다.




살림도, 아이 키우는 것도, 돈 버는 것도 다 내가 해야 돼.
도와주는데 성에 안 차.    


아내와 남편이

둘 다 다 잘되는 부부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누군가가 더 잘 되지?

그러면 그 사람이 이 사람 운까지 갖고 온 거야.


그거에 대해서 네가 조금은

미안해하면서 살아야 해.

그래야 그 집안이 행복한 거야.


출처 : 밉지 않은 관종언니




‘ 이 사람 운을 내가 갖고 온 거라고?’


처음엔 그냥 한 번 읽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정도로 넘긴 말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분노할 것 같은 상황이 생길 때마다

그 말이 나를 찾아왔다.


‘가만, 내가 남편보다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건

내가 남편의 운을 가져와서 그럴지도 몰라.’


아기가 엄마아빠를 찾는 시절은 기껏해야 한 때인데..

지금과 반대로 내가 너무 바빠서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놓친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내가 남편의 운을 가져와서 육아를 할 시간이 생겼다는 건

참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었다.


이경실 님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세상에 둘 다 잘 되는 부부가 없다면

남편은 일을 잘하고, 나는 육아를 잘하면 될 일이다.


나는 남편의 운을 가져와서

그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덕분에 다양한 삶의 단면을 경험하며

더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기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을

남편은 보지 못하고 혼자만 누린다는 게 조금은 미안하다.


퇴근한 엄마를 반기는 웃음,

목욕 후에 보이는 순수한 개운함,

잠이 들 때면 눈을 비비며 크게 하는 하품.


이 사랑스러운 면면이 지나가는 것을

남편은 본의 아니게 다 놓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당신도,

이렇게 행복을 더 많이

알아가면 좋겠다.






#내향적 #에세이 #하루의조각들

#워킹맘 #육아 #행복 #부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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