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 #4

욕심쟁이가 된 엄마

by 오리별

나는 욕심이 별로 없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하고 집안에 우환이 있어 많은 것을 바라지 못하는 처지였다.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던 가장 쉬운 선택은 애초에 뭔가를 바라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그리고 처음부터 가질 수 없는 것으로부터 진즉에 주제 파악을 하고 고개를 미리 돌려버렸다. '나는 원래 그걸 바란 적이 없었어'. 이렇게 내 상황을 합리화하고 이따금 올라오는 욕망을 잠재웠다. 원래 바라지 않았던 것이니 가질 수 없어도 난 괜찮다고 조용히 자위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운 좋게도 나와는 다른,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에서 큰 굴곡 없이 자라온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평안한 남편과 가정을 꾸린 덕분에 나는 평생토록 꿈꾸던 '평범함'의 범위에 처음으로 들어섰다. 평생 꿈꾸던 것이 고작 '평범함'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평범이란 그 정도로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로망이었다. 결혼 후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빚이 없는 삶이었다. 늘 이자 낼 걱정에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카드 대금을 걱정하던 부모님을 보고 자란 터라 부자가 아닌 이상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평범하게만 살아도 식당에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메뉴를 고를 수 있었고,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주문해도 디저트 값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이 정도 변화로도 하루하루가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먹고사는 가장 기본적인 걱정이 해결되자,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를 둘러싼 세상을 찬찬히 살펴보고 내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혼자 헤쳐온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불러왔고 옹졸했던 나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나에게 베풀었던 사람을 메모하고 기억해 두었다가 선물하기(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받은 것이 있으면 기억해 둔다), 후배나 어린 동생들에게 부담 느끼지 않고 선뜻 밥 사주기 같은 것이다.


3년의 신혼생활은 질릴 때까지 고기를 매일 먹어보고, 카드 값이나 저축액 같은 금전적인 걱정도 없던 인생에서 가장 평안한 시절이었다. 나는 30년 내내 욕망을 눌러온 탓인지, 그 부작용처럼 늘 마음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 있었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같았던 이 물음표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걸,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으로도 살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결혼하고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이 '안정'이다. 마음이 안정되니 가정에서 크고 작은 싸움이 있더라도 힘들지 않았다. 싸우더라도 화해하는 과정에서 나는 여전히 튼튼한 울타리 안에 있음을 자각했으므로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나는 주변에서 '결혼장려커플'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인데, 여기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의 한 가지 팁을 공유하고 싶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도 30년 넘게 모르고 살다가 깨달은 사실이다. 행복은 꼭 아름답게 웃어야만 행복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의미가 있고, 싸우고 울었던 시간들까지도 결국 행복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다.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의 표출은 결국 마음을 꺼낼 수 있는 신뢰하는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행복을 정의하면 인생을 훨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현재가 행복하다고 여겨지니 나는 꽤 오래 안일한 상태로 지냈다. 그러던 내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이유는 '아기'라는 소중한 존재가 생기고 나서부터이다. 아기는 엄마를 욕심쟁이로 만든다. 나는 지금도 만족하며 늙어갈 수 있지만, 평범하게 태어난 내 아이는 다르다. 원하는 것들이 생기면 나처럼 위축되지 말고 자연스레 꿈꾸며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라면 모두 비슷하겠지만 자식이 나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나보다 더 적은 상처로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내가 겪어온 세상은 힘겹고, 무섭고, 외로운 순간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내 아이에게는 더 튼튼한 울타리를 쳐주고 지켜주고 싶다. 완전무결하게 다치지 않고 자랄 수는 없겠지만 내 아이의 세상은 조금 더 수월하기를..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에 비치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오늘도 육퇴 후 짬을 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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