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말고, 객관적인 사람에게 가는 길

강의가 끝난 뒤, 한 청년의 질문

by 강동민

강의가 끝났다.

마이크 전원을 끄고 케이블을 감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고,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를 남기고 나갔다.

그때 한 청년이 끝까지 남아 있다가 내 앞으로 왔다.


“강사님… 정서관리도 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저는요,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갈등이 계속 반복돼요. 대인관계가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돼요?”


반복되는 갈등이 말해주는 것

질문은 짧았는데 얼굴은 오래 버틴 사람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을 멀리하라’ 같은 말을 떠올렸다가 삼켰다.

반복되는 갈등 앞에서 그런 말은 금방 마른다.


상대가 바뀌는데도 장면이 비슷하게 돌아온다면,

그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일 때가 많다.

어떤 말에 유독 무너지고, 어떤 순간에 꼭 참았다가 한꺼번에 터지고, 끝나고 나면 늘 같은 후회가 남는 것.


그 반복은 의지로만 끊기 어렵다.

관계 속에서는 감정이 너무 빨리 올라오고,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나중에야 “또 그랬네”가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꺼낸 한 문장

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개인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제일 빨라요.”


청년의 눈이 잠깐 커졌다.

‘상담’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어떤 사람에게는 무겁다. 비용, 시간, 그리고 “내가 거기까지 가야 하나” 같은 마음까지 따라오니까.

그래도 나는 말을 이어갔다.


상담이 빠른 이유

상담이 마법처럼 사람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담은 ‘헤매는 시간’을 줄여준다.


내 이야기를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자리.

누가 내 편을 들어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는 자리가 아니라, 치우치지 않고 구조를 보는 자리.

내가 놓친 지점을 다시 잡아주고, 내가 반복하는 반응을 이름 붙여주는 자리.

그 일을 가장 안정적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다.


주변 조언이 위험해지는 순간

사람은 힘들면 주변에 말하게 된다. 그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갈등 이야기를 주변에 풀어놓는 순간, 조언은 자주 두 갈래로 갈린다.


“네가 맞아. 그 사람 이상해.”

혹은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둘 다 도움 같지만, 둘 다 오래 남지 않는다.

한쪽은 나를 더 굳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나를 더 작게 만든다.

무엇보다 둘 다 ‘관계의 전체’를 보기 어렵다.

가족과 친구는 결국 내 편이거나, 자기 경험의 렌즈로 판단하는 사람이다.

객관적이기 어렵다.


객관적인 사람이 필요한 이유

갈등은 언제나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그 갈등이 내 삶에서 계속 반복된다면,

그때는 ‘상대’를 고치는 싸움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길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함께 찾아주는 시간.

그게 있어야 같은 문제가 다른 사람을 만나도 다시 재현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나는 그래서 그 청년에게 전문가를 권했다.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삶을 더 정확히 보게 해주는 사람에게 가라고.


문턱을 낮춰주는 소식

그리고 현실적인 이야기도 덧붙였다.

내년(2026년)부터 ‘(구)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으로 새롭게 출발한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현재 안내된 마음투자 지원은 우울·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에게 전문 심리상담을 총 8회(회당 최소 50분, 1:1 대면) 바우처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단순하다.

“상담을 받아보세요”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멀게 들리기 때문이다.

돈과 시간과 용기가 한꺼번에 필요해 보이는 말.

하지만 제도가 문턱을 조금 낮춰주면, 어떤 사람은 ‘처음 한 번’ 문을 열 수 있다.

첫 문이 열리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

적어도 혼자 미로를 돌지는 않게 되니까.


다시, 그 청년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

강의장을 나서기 전 청년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확신이라기보다 “가능성”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믿는다.

사람은 한 번에 바뀌지 않지만, 방향은 한 문장으로도 바뀐다.


오늘 내 결론은 여전히 같다.

반복되는 갈등으로 마음이 소진될 때,

주변 조언이 나를 더 헷갈리게 만들 때,

무엇보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순간이 올 때—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보다,

객관적인 전문가에게 가는 게 더 빠르고 더 좋다.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빠르다는 건 감정을 눌러버리는 속도가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속도다.

혹시 당신도 같은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설명’이 아니라 ‘이해’를 먼저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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