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먼저, 내가 흔들렸다
크리스마스에 초1 딸에게 장난감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진짜 스마트폰은 아니다. 인터넷도 안 된다. SNS도 없다.
대신 카메라가 있고, 음악이 나오고, 버튼을 누르면 간단한 연주도 된다.
딸은 손에 쥐자마자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을 찍고, 화면을 넘기고, 다시 찍고.
소리를 바꾸고, 연주를 누르고, 또 누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 잠깐 멈췄다.
표정이 꼭 그랬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사람”
그때 떠오른 질문이 하나였다.
스마트폰을 쥐어준다는 건, 정확히 무엇을 쥐어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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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세계를 바꾸듯
아이들은 말이 늘기 시작하면 급성장한다.
말이 생기면 마음을 설명할 수 있고,
글이 생기면 세상을 읽을 수 있다.
그때부터 아이의 세계는 넓어진다.
부모의 설명이 필요 없어지고,
아이는 스스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말과 글과 다른 방식으로
아이의 세계를 바꾼다.
스마트폰은 지식을 주기 전에 먼저
주도권을 준다.
내가 누르면 반응한다.
원하면 바뀐다.
기다림 없이 결과가 온다.
장난감 스마트폰인데도
딸 손에 ‘힘’이 생긴 것처럼 보였던 이유가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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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채워주는 욕구
스마트폰은 사람의 욕구 중에서
특히 소속과 존중,인정을 빠르게 채운다.
현실의 소속은 시간이 걸린다.
친구를 사귀고, 어색함을 견디고,
때로는 상처도 받고, 다시 회복해야 한다.
현실의 인정도 시간이 걸린다.
노력하고, 실력이 쌓이고,
누군가가 진짜로 나를 알아봐주는 순간이 와야 한다.
그런데 온라인은 다르게 준다.
소속의 느낌을 빠르게 주고,
인정의 신호를 쉽게 준다.
좋아요, 댓글, 조회수, 랭크, 레벨.
그건 욕구의 ‘완성’이라기보다
욕구가 충족된 것 같은 신호다.
하지만 사람은 신호에 반응한다.
아이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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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려웠던 감정은 ‘불안’이었다
딸이 장난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서 올라온 감정은 정확히 불안이었다.
“진짜 스마트폰을 주면, 이 아이는 얼마나 빨리 빨려 들어갈까.”
“현실이 느려 보이기 시작하면 어떡하지.”
“부모, 친구 관계가 귀찮아지면 어떡하지.”
나는 화면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화면이 아니라 속도다.
아이의 삶은 원래 느려야 한다.
지루함을 견디고,
관계의 불편함을 통과하고,
기다리며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아이를 키운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그 시간을 스킵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감당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감인데도 이 정도라면,
진짜는 너무 강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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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금지가 아니라 ‘현실의 보강’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스마트폰을 없애는 게 답이 아니라,
아이의 현실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게 답이라는 결론.
현실에서 소속을 경험하게 하고,
현실에서 인정받는 경험을 쌓게 하고,
현실에서 지루함도 견디게 하는 것.
언젠가 진짜 스마트폰을 쥐어주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건 힘이야.
그런데 힘은 사용법이 있어.
그 사용법은 혼자 배우는 게 아니라, 같이 배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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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조급함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앞서가서 생긴다.
그러니 조급함을 눌러버리기보다, 조급함이 숨기고 있는 두려움을 먼저 만나야 한다.
용기는 결심이 아니라, 함께 확인해주는 관계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