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갤럭시가 편한 걸 알면서도 아이폰을 살까

허영이 나를 망치기도, 살리기도 할 때가 있다

by 강동민

첫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였다.
처음엔 잘 썼다. 사진도 파일도 내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옮기고 정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폰이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앱이 멈추고, 화면이 끊기고,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상하게도 그 느려짐은 기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내 하루도 같이 느려졌다.
내가 뭘 하려는 사람인지보다, 기계가 뭘 허락하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느낌.

그때 아이폰이 눈에 들어왔다.
깔끔했고, 매끄러웠고, “요즘” 같았다.
그래서 두 번째 폰은 아이폰이었다.

그 이후도 계속 아이폰이었다.


인정한다. 나는 허영이 있다

아이폰을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졌다.
빠르고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조금 더 세련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말은 민망하다.
하지만 숨기지 않겠다. 나는 허영이 있다.

다만 그 허영은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보다 조금 더 안쪽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가까웠다.


불편했지만, 이상하게 계속 애플로 갔다

문제는 아이폰이 불편했다는 거다.
음악 파일을 넣는 것도,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맥북도 비슷했다.
마우스 감각도, 송금도, 한글 입력도…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진짜로 애플 이제 안 써.”
“스트레스보다 편안함이 중요해.”
“감성 말고 현실 적응을 하자.”

다짐은 늘 멋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애플워치, 에어팟, 아이패드.
불편한데도, 이상하게 계속 모였다.
애플은 ‘편리함’보다 ‘일관된 분위기’를 먼저 주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 안에 있으면 나는 조금 더 정돈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 속에서, 나는 어떤 어른이고 싶은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청년들이 많다.
그리고 청년들 사이에서 “분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결정된다.

말이 아무리 진심이어도,
태도가 아무리 따뜻해도,
첫 리듬이 어긋나면 대화가 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감각 없는 어른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여기서 또 민망한 고백이 나온다.
나는 청년들 앞에서 세련된 어른이고 싶다.

허영이다. 맞다.
그런데 그 허영이 내겐 ‘멋’이 아니라, 종종 관계의 문을 여는 첫 단추처럼 느껴진다.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먼저 낯설어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


결국 나는 ‘도구’를 산 게 아니라 ‘나’를 산다

갤럭시가 더 편하다는 걸 안다.
사진 정리도, 파일 관리도, 현실적으로 스트레스가 덜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결제 순간에 아이폰으로 손이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폰을 들면 나는 조금 더 “나답다”고 느낀다.
조금 더 요즘에 붙어 있는 사람 같고,
조금 더 괜찮은 어른 같아진다.

이건 기능이 아니라 감정이다.
안심. 자부심. 그리고 아주 솔직히 말하면—허영.


허영을 없애려 하지 않기로 했다

예전엔 허영을 없애야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허영을 지우는 대신, 허영이 내 삶을 망치지 않게 다루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해보려 한다.

아이폰은 내게 ‘업무 도구’이기보다 ‘스타일 아이템’이다.

대신 그 아이템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내 생활의 시스템을 바꾸자.

그리고 세련됨을 폰 하나에만 걸지 말고, 말투와 태도와 관계 속으로 옮기자.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아이폰을 사는 걸까,
아니면 아이폰으로 나를 다시 만드는 걸까.

허영이 맞다.
그런데 그 허영이 누군가 앞에서 더 좋은 어른으로 서기 위한 마음이라면,
나는 그 마음을 함부로 미워하고 싶지 않다.


육상부 | 감각을 지키는 어른의 기록
세련됨은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에 들어가기 위한 첫 호흡일 때가 있다.
허영은 없앨 대상이 아니라, 내가 불안할 때 꺼내는 오래된 방식이다.
그러니 허영을 눌러버리기보다, 허영이 지키려는 나를 먼저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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