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나만 혼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멈췄다

by 강동민

공정함이 깨진 자리에서,

아이는 화가 아니라 억울함을 꺼낸다

그날은 정말 별일 아니었다.


걷다가 누가 앞서가느냐, 누가 길을 안내하느냐, 누가 먼저 뛰었느냐.

아이 둘이 동시에 “내가 먼저!”를 외치고, 나는 반사적으로 “천천히”를 뱉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아이의 표정이, 아주 작은 틈 없이 굳었다.

눈이 흔들리고, 말끝이 뾰족해졌다.

그리고 그 말이 튀어나왔다.


“왜 맨날 나만 혼나.”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어쩐지 걸음을 멈추게 됐다.

‘지금 이 싸움은 길에서 시작된 게 아니구나’

몸이 먼저 알아채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종종 규칙 때문에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정작 마음속에서 더 크게 타오르는 건 공정함이다.

어른이 생각하는 공정함이 아니라,

“누가 더 사랑받는가”에 가까운 공정함.


그래서 아이는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나만 나쁜 애야?”

“우리 집에서 나만 불리해?”

“왜 내 편은 없는 것 같지?”



그날 내 앞의 아이는, 너무 오래 참고 있던 사람처럼 말했다.

참았다는 말은 단순히 착하게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속으로 셈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오늘도 내가 혼났고, 어제도 내가 혼났고, 그제도 내가 혼났고…


아이의 마음속에서 ‘혼났다’는 경험은,

단지 훈육을 받은 기록이 아니라

“나는 덜 이해받는다”는 기록으로 쌓인다.


사실 부모는 다 안다.

내가 진짜로 한쪽 편만 들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두 아이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도.


근데 아이가 느끼는 건 ‘사실’이 아니라 ‘체감’이다.

그리고 체감은 논리로 잘 안 바뀐다.



그날 갈등을 키운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다른 아이는 하기 싫은 요구가 오면,

종종 ‘안 들리는척’을 했다.

눈은 보고 있는데 귀는 닫힌 것 같은 태도.

나는 속으로 ‘아, 또 저 방식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아이 입장에선 회피일 수 있다.

지금 당장 하기 싫으니까, 잠깐 숨고 싶은 거다.

그런데 형제에게 그 태도는 ‘회피’가 아니라 ‘무시’로들린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분노는 사소한 사건에 붙어서 커진다.


“내가 말하는데 왜 무시해?”

“왜 나만 참아?”

“왜 맨날 나만!”


그러다 보면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다루기보다

그 행동이 만든 소음과 열기를 급하게 진압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급함은 대개—

부모끼리의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부모는 같은 집을 지키면서도,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관계를 걱정한다.

“안 들리는 척은 고쳐야 해. 결국 관계가 망가져.”


다른 사람은 마음을 걱정한다.

“지적이 많아지면 위축돼. 자존감부터 무너져.”


둘 다 맞다.

둘 다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근데 아이들 앞에서 그 논쟁이 시작되는 순간,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본질만 골라 듣는다.


“아… 지금도 나는 문제구나.”

“아… 결국 우리 집엔 내 편이 없구나.”


그건 부모가 원한 메시지가 아닌데도,

아이의 귀에는 그렇게 들어간다.



그날 밤, 나는 긴 설명을 포기했다.

훈육은 늘 설명으로 이기려 들 때 망한다는 걸,

나는 몇 번이나 봤으니까.


대신 문장을 바꿨다.

정답을 말하기보다, 먼저 감정을 붙잡는 문장으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억울했지. 나만 혼나는 것 같았지.”


아이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불이 완전히 꺼진 건 아니지만,

불길이 바람을 덜 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 한 문장을 더 얹었다.


“엄마 아빠가 너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행동을 잡는 거야.”


이 말이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가 ‘나를 버리려는 게 아니다’라는 신호는 받는다.


그 신호 하나로

아이의 분노는 “싸움”에서 “대화”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 뒤로 우리 집에 작은 약속이 하나 생겼다.


하기 싫을 때, ‘안 들리는 척’ 대신

말로 미루기.


“지금은 싫어.”

“조금 있다가 할게.”


대단한 변화 같지 않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한 문장만 있어도

형제 싸움의 폭발은 확 줄어든다.


무시는 분노를 즉시 끓게 만들고,

거절은 분노를 다루게 만든다.


아이들은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지,

사실 관계를 망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나는 요즘 자주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바로잡으려는 건

아이의 행동일까,

아니면 내가 견디기 힘든 내 불안일까.”


아이의 다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자꾸 빨리 결론을 내고 싶어진다.

빨리 정리하고 싶고, 빨리 끝내고 싶다.


그런데 아이에게 필요한 건

빠른 결론보다 안전한 과정일 때가 많다.


‘왜 나만 혼나’라는 말은,

훈육을 회피하려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확인하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그 확인을 조금 늦게나마 해줬다.

그리고 그 작은 확인이,

우리 집의 다음 대화를 겨우 열어줬다.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조급함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앞서가서 생긴다.

그러니 조급함을 눌러버리기보다, 조급함이 숨기고 있는 두려움을 먼저 만나야 한다.

용기는 결심이 아니라, 함께 확인해주는 관계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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