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가 우리 집을 가장 오래 지배했다

아내의 일본·이스라엘·괌 앞에서 나는 또 미뤘다

by 강동민

아내가 2026년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도 가보고 싶고, 이스라엘도 가보고 싶고, 괌도 가보고 싶다고.


세 나라가 한 문장 안에 같이 들어있는 게 좋았다.

여행지 얘기인데도,

이상하게 그건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올해를 말하는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지.”


그리고 늘 하던 말을 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중에 계획 짜보자.”


그 말을 하자마자,

내 안에서 바로 다른 말이 이어졌다.


‘요즘 너무 바쁘잖아.’

‘일단 이번 주만 넘기고.’

‘내일, 내일…’


입으로는 “좋아”라고 했는데,

몸은 이미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미루는 사람이다.

그런데 더 정확히 말하면, 미루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미루는 순간부터 머리가 쉬질 않는다.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먼저 해버린다.


대화 톤을 미리 리허설하고,

상황을 몇 번이고 가정하고,

순서를 짜고,

혹시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하고.


그렇게 생각이 굴러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해야 한다’가 아니라

‘큰일 난다’가 된다.


그때부터 나는 예민해진다.

말이 날카로워지고, 표정이 굳고, 가슴이 답답하고, 결국 소진된다.

그러고 나면 또 후회한다.


“왜 나는 이렇게 쉬운 걸 못 하지?”


모순은 여기서 완성된다.

미루면 잠깐 편해질 것 같아서 미루는데,

미루는 방식 때문에 내가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지는 만큼…

가족이 조심스러워진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게 내 개인의 문제였다.

내가 지치면 내 문제였고,

내 일정이 밀리면 내 일이었다.


그런데 가족이 생기니까

미루는 습관은 ‘내 성격’이 아니라 가족의 시간을 건드린다.


아내가 일본, 이스라엘, 괌을 말했을 때

아내가 원한 건 사실 “완벽한 일정표”가 아니었을 거다.


그냥…

나랑 같이 앉아서

“어디 한번 가볼까? 가보면 어떨까? 언제쯤 갈까?” 같은 얘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지도 앱 켜놓고 서로 웃으면서,

현실적인 날짜도 얘기하고,

뭐가 가능하고 뭐가 어려운지도 같이 보자고.


그런데 나는 그걸 자꾸 ‘업무’처럼 처리하려 한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여유가 생기면, 준비가 되면…

그러니까 결국, “나중에.”


아내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게 고맙기도 한데, 그래서 더 미안하다.

불평하지 않는 집에는 “나중에”가 더 오래 산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나중에”는 내 편이 아니라,

우리 사이를 조금씩 늦추는 쪽으로만 자란다.


아이들 부탁도 비슷했다.


아이들이 뭘 부탁할 때,

나는 속으로 계산부터 했던 것 같다.


“이건 좀 무리한데.”

“지금 욕구가 떠올라서 말하는 거겠지.”

“좀 지나면 잊겠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아이들은 안다.

눈을 안 마주치고,

“응” 하고,

손은 다른 걸 하고, 마음은 딴 데 가 있으면

그게 “진짜로 듣는 거”가 아니라는 걸.


지금 생각하면 그 부탁이 “그냥 나온 말”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이 튀어나온 순간, 아이 안에는 이미 뭔가가 차 있었을 거다.

그걸 꺼냈다는 건, 적어도 나한테는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일 텐데.


나는 아빠로서 한 번쯤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눈을 마주치고

“왜 그게 하고 싶었어?”

“그 마음이 언제부터 있었어?”

물어볼 수 있었는데.


그걸 자꾸 미뤘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나중에 보자고.


근데… 아이한테 “나중에”는

생각보다 빨리 “안 되는 거구나”로 번역된다.


어느 순간, 이상한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내가 미루는 건 일을 미루는 게 아니라

가족의 바람을 미루는 거였다.


그리고 그 미룸은, 나를 더 나쁘게 만들었다.

불안해지고, 예민해지고, 소진되고,

그 상태로 가족 앞에 서게 만들었다.


나는 가족을 행복하게 하려고 결혼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하려고 결혼했다.

그게 내 역할이고, 내 임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 습관으로 가족을 기다리게 했다.

내가 힘들어지는 방식 그대로,

아내와 아이들도 같이 힘들게 했다.


이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주 사소한 걸 해보려고 한다.


엄청난 변화 같은 건 아니다.

대단한 결심도 아니다.


그냥… 아내가 “일본”이라고 말하면

그날은 핑계 대지 말고

“언제쯤이 좋을까?” 한 번만 더 묻는 것.


아이들이 갑자기 뭘 말하면

“그거 안 돼”부터 하지 말고

“왜 그게 하고 싶어졌어?”부터 묻는 것.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질문을

폰을 보면서가 아니라,

다른 생각하면서가 아니라,

진짜로 눈을 마주치면서 하는 것.


내가 해주고 싶은 사랑이 거창한 게 아니라면,

내가 바꿔야 할 것도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중에”를 줄이는 건,

내 일정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집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었다.



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미룸은 내 습관이었지만, 기다림은 가족의 몫이었다.

사랑은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으로 옮겨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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