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싫어하는 이유는 ‘게임’이 아니라 ‘아이의 흔들림’이었다.
2026년 1월 1일.
우리는 서점에 왔다.
책 냄새가 나는 곳에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눈은 책장이 아니라 한쪽 진열대에서 멈췄다.
브롤스타즈.
게임 백서.
표지 디자인은 화려했고,
제목은 단단했고,
설명 문구는 매끈했다.
“전략”, “메타”, “승률”, “성장”.
마치 공부처럼 보이게 만드는 단어들.
“나는 게임이 싫다.”
게임은 아이들을 현혹시킨다.
생각하게 만들고, 하고 싶게 만들고, 계속 끌어당긴다.
그 힘이 너무 강해서 싫다.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도 붙잡히는 걸 알고 있으니까더 싫다.
나는 어린 시절 게임의 도사였다.
오락실 아저씨가 우리 부모님을 만나 오지 않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그 시절의 나는 잘했다.
잘했기 때문에 더 오래 했고, 더 오래 했기 때문에 더잘했다.
그 세계는 공정한 척했다.
노력하면 오르고, 실력이면 인정받고, 순간의 판단이 승패를 갈랐다.
그런데 그 세계는 아주 교묘하게
사람이 가진 결핍과 욕망을 건드렸다.
“한 판만 더.”
“이번 판은 이길 수 있었는데.”
“지금 끊으면 손해인 기분.”
“보너스 쌓어놓고 친구 줘야지”
그게 얼마나 강한지 나는 안다.
“그만해야지”와 “지금은 아니야” 사이에서
사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도 안다.
그래서 게임이 싫은 걸까?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는 게임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싫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들을 현혹시키건 말건,
“세상은 원래 그렇지” 하고 지나쳤을 텐데.
그런데 첫째가 초3이 되면서부터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친구들이 게임하는 걸 본다.
놀이터에서 무슨 게임을 했는지 얘기한다.
누가 더 잘하는지, 무슨 캐릭터가 좋은지, 어떤 조합이 센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대화는, 초등학교의 작은 사회에서
‘같이 속해 있다는 증표’가 된다.
첫째는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하고 싶어.”
“나도 보고 싶어.”
“나도 사주면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가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아이가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싫은 게 아니다.
솔직히 나도 이해한다.
재밌는 건 재밌는 거니까.
친구들이 하는데 나만 못 끼면 속상할 테니까.
내가 정말 싫은 건
아이의 마음이 ‘끌려가는’ 장면이다.
친구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
내가 원치 않아도 ‘원하는 척’을 해야 하는 분위기,
“다들 하는데 너만 왜?”라는 질문,
그 질문 앞에서 아이가 흔들리는 모습.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이
너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알던 그 세계로
내 아이가 한 발 들어서는 장면.
서점에서 게임 책이 눈에 들어온 건
그 책이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민감한 버튼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내가 알던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사람이다.
그래서 게임 앞에서
나는 종종 단호해지고, 예민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아이를 설득한다기보다
게임을 ‘악’으로 만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서점 한가운데서 문득 생각했다.
게임을 악으로 만들면
아이는 몰래 하게 될지도 모른다.
몰래 하면, 기준은 사라지고
대화는 끊기고
나는 결국 더 크게 불안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걸 안다.
게임을 무조건 막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의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것.
아이에게 “안 돼”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하고 싶은지”를 함께 듣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끌림’만 남겨두지 않도록
현실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고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경험을 같이 만들어주는 것.
서점에서 나는 책을 한 권 집었다.
게임 책이 아니라, 전혀 다른 책이었다.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날 내가 서점에서 확인한 마음이다.
나는 게임이 싫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 아이가 흔들리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화로 덮어버리기보다
기준과 대화로 바꿔보고 싶다.
아이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는 대신,
아이의 마음을 먼저 붙잡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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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두려움은 통제하려고 커지는 게 아니라, 함께 말할 때 작아진다.
아이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금지’보다 ‘기준’이고,
기준은 결국 ‘관계’ 위에서만 오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