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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풀

2019년 12월 처음으로 정규직 사회복지사로 취업했다. 2020년 9월 이직했다. 2021년 7월 다시 이직했다. 이후 입퇴사 반복은 계속되었다. 2024년에만 세 번의 직장을 경험했다. 무언가를 끝맺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건 또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변화 불가하다고 생각되거나, 부당한 일이 있을 때, 퇴사 서류를 작성했다.


상경과 반대되는 말은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은 나의 용기와 결단력에 대해 멋지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바다를 건너는 먼 곳으로의 이주가 나를 그렇게 비춰지게 했을 것이다. 섬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상창리는 마켓 컬리 배송이 불가하다는 점과 배달 어플을 처음 켰을 때 굵고 큰 한 글자가 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기 많은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도무지 마르지 않는 여름 빨래 옆에서. 이안류 경고문이 세워진 모래 사장 앞에서. 방금 몸이 잘린 잡초가 내는 물기에서 나는 풀내를 맡으면서. 너무 많이 부어 흘러 넘친 화분의 물을 황급히 닦으며. 민물과 해수가 만난다는 곳에 땡볕 예초로 달궈진 몸을 엉성하게 담그면서. 그리고 운동을 마치고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물에 적시면서.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또 코를 푸엥 하고 풀면서.


매트 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던 때 요가 강사 자격 과정을 밟았다. 일대일 경기를 하던 종목에서 프로 라이센스를 따지 않기로 결정한 1년 뒤였다. 시합과 경쟁이 없다는 종목이라는 것이 몹시 매력적이고, 나의 숨을 따라 몸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요가원은 작은 계급사회 같았다. 몸매가 드러나는 쫄쫄이를 비롯해 요가 매트 위에 올리는 타올의 브랜드까지. 사회초년생이자 학생인 내가 마련하기에는 꽤 값진 것들이었다. 아무 티셔츠를 주워 입고 온 가난한 집 아이 같았다. (맞긴 하다) 그 공간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장 높은 곳에서 내 몸을 밀어 떨어뜨리지 않고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처음 시작된 건 언제일까? 이 기분을 실현시키기 위해 내 머리가 모든 경로를 탐색하며 논리를 쌓는다. 그 기원을 알고 싶었다. 언제부터일지. 어떤 이유 때문일지. 그걸 알면 스위치를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내 미생물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채소와 과일을 20개 이상 섭취해야 한다는 다큐를 보며 뜨개질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단식을 하기도 한다. 그럼 몸이 독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가렵거나, 피부가 붉어지거나, 잠이 잘 오지 않거나 혹은 너무 졸리거나. 그걸 보면서 엄마에게 부칠 겨울 목도리를 떴다.


먹었던 것을 먹지 않은 척 할 순 없다. 과자를 많이 먹으면 꼭 배가 아프다.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 꼭 방귀가 나온다. 어쩌면 매트 위에서 평등하다는 말은 모두 자기 몸에 새겨진 역사를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모두 비어버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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