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윤리와 생존을 위한 또 다른 폭력
가치가 작동하지 않고,
행정 언어로 가득 채워진 학교는
관계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야말로 살아 있는 리얼 막장 드라마다.
회의는 끝나지 않고,
학교의 실제 상황을 모르는 공문은 수시로 접수된다.
문제에 대한 지혜를 모으기보다
회의의 방향은 언제나 같다.
학교 책임자들의 주요 관심은 누가 오래 버틸 수 있는 안전지대를 방해하는지 교묘하게 방해 요소를 탐색하는 일.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는 춘희와 체육교사 정식이는
방향도 없이 소환되는 회의에 시달리며
업무는 밀리고, 피로는 쌓여갔다.
⸻
소동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춘희는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전날 학교에서 충격적인 일을 겪었지만,
그 사건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피로가 있었다.
이미 수많은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 내내 긴장한 탓인지,
온몸이 납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일상이 시작되어야 했다.
춘희는 침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 손으로는 하늘빛 면 패드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침대를 두른 철제 프레임을 짚으며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죽을 것 같다.
내가 어제 누구한테 몽둥이로 맞기라도 했나…’
그 생각이 스치기도 전에,
그녀는 서둘러 출근길에 올랐다.
⸻
운전대를 잡은 지 15분쯤 되었을까.
불현듯, 어제의 장면이 떠올랐다.
A반 교실 한쪽에서
뾰족한 흉기를 손에 쥔 학생이 있었다.
평소 충동 조절에 어려움이 있던 아이였다.
“그 학생… 지금은 괜찮은 걸까.”
불안이 밀려들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또 다른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
그날, 학교에는 또 다른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살을 시도했던 학생의 종아리 안쪽에 멍이 들었다며
학부모가 “교사가 아이의 다리를 잡았다”라고
아동학대 신고를 예고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두 명의 교사는 하루아침에 소송에 휘말렸고,
관리자들은 뚜렷한 해결책 없이
회의를 열자며 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교장실의 공기는
한파가 서린 겨울처럼 싸늘했고,
춘희의 숨결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