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 엄마라는 상처

내 불안의 시작과 끝 _ 엄마 때문에 참 많이도 아팠다.

by 숨결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나를 조건 없이 따뜻하게 품어주고 사랑해 줄 지구의 유일한 생명체"

하지만 나의 현실 엄마는 나의 정의와 사뭇 다르다.


엄마는 날마다 생활비 타령을 하며 사이좋지 않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결핍과 공허에 대한 보상과 경제적 보상을 첫째 딸인 나에게 기대한 사람이다.


정서적으로 늘 허덕이며 불안하고 빈곤한 엄마는 자신의 정서적 허기를 표정, 음성, 분위기로 딸에게 전송하며 딸을 옥죄었다. 내가 가장 힘든 건 20대 이후 먼 타지에서 취직하고 월급의 1/3 수준에 해당하는 날마다 강요하는 생활비 입금과 마치 남편이나 친한 친구처럼 정서적 관심을 갖아주기를 갈구하는 정서적 빈곤함이었다.


비록 먼 거리에 살지만 전화를 건 순간 느껴지는 엄마의 숨소리에 모든 흔적이 묻어 나온다.


엄마의 정서적 곤궁함은 돈으로도 어설픈 연락으로도 절대 채워지지 않은 밑 빠진 독이었다.


날마다 악에 바친 목소리로 자신의 괴로움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부르짖고 공허한 눈빛과 과장된 웃음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는 엄마가 너무 버겁다.


내가 본격적으로 마음과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내가 나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었다.

그 안에는 엄마와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울증 진단으로 병가 중에 엄마는 혼자 있는 딸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딸의 집에 오자마자 조카에 대한 서운함을 2시간 동안 토해내고 답답하다며 서울 구경을 가자고 한다.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몸이 붓고 살이 찐 나를 보며 여자로서 매력을 잃어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여행 중간 중간 20년 전부터 즉 내가 사회생활 시작 한 후 본인에게 서운한 일을 잠깐이라도 말을 하게 되면 분노 트리거가 되어 20분 이상 장소 불문하고 자신의 서운함을 쏟아놓는다.


[엄마의 비난의 화살]


직무 스트레스로 너무 괴로워서 병가 사용할 에정이고 신경과에 뇌 종합검사하고 오늘 입원한다고 말하고 방금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받았다고 말하니 "너 쉬면 우울증 걸려"라고 말했다.
"엄마가 중국과 캄보디아 등 여행을 갈 때 왜 용돈을 주지 않았냐"
"내가 지금 사는 게 사는 건 줄 아냐, 죽지 못해서 산다."


나는 우울증 약의 부작용을 첫 복용 후 2달 동안은 특별히 못 느끼다다가 엄마의 두 차례의 방문 기간 동안 소화마비와 대장 기능이 완전히 멈췄다.


올해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내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 당분간 연락하지 않겠다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부모는 14년 동안 나에게 빌린 채무를 갑자기 다음 날 갚는 일이 일어났지만 나는 동요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남동생은 그 돈을 가로채려 했다.


아. 내 가족은 표피적 가난과 정서적 가난이 공존하고 나를 하나의 자원으로 소비하려고만 하구나.

물론 아버지는 위의 과는 아니지만 괴로움을 품을 그릇이 부족하여 회피하며 정서적 책임을 첫째 딸에게 의도하지 않게 떠넘기며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중간중간 손녀에게 연락하지 않은 건 불효라는 문자를 보내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틈만 나면 가족 상담, 치유,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책들을 게걸스럽게 읽었다.

물론 엄마를 비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의 그토록 짓누르는 바위 덩어리가 같은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이다.


그중 '엄마라는 상처'는 그동안의 나의 고민을 적절한 사례와 심리적 해석, 저자의 풍부한 노련함으로 풀이한 결정적인 종합본이었다.


책의 목차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내면을 점검할 수 있다.


누가 나를 착한 딸로 만들었을까

내 불안의 시작과 끝, 엄마 - 유기 불안을 일으키는 엄마, 이기적인 딸이라는 말, 지긋지긋한 감정의 대물림

정서적 허기짐을 주는 엄마,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 상처 입은 딸로 살아가는 삶 놀리는 엄마, 수치스러운 딸.

욕구불만 엄마, 유능한 딸, 화가 난 엄마, 화낼 수 없는 딸. 엄마를 포기하기




심리학자 그린버그와 파비오는 정서중심치료(EFT)에서 내담자들의 심리적 정서 변화의 과정을 제시했다.

내담자는


-상담 초기: 전반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두려움, 수치심과 같은 부적응 정서(예: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를 경험(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이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표현함.
-상담 중기: 보호적 분노(예: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었어)를 경험하거나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서를 느낌.
-상담 후기: 자신이 누릴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상처, 비탄의 감정을 경험함.

이 모든 감정이 지나간 뒤 내담자가 수용감과 주체성을 발휘하게 됨. 내담자가 호소했던 정서의 의미가 "자신을 돌보는 영역"으로 변화됨.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를 둔 자녀의 개인 심리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심리학자 린지 C, 깁슨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치유하기>>에서


부모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 더 건강한 방법이다. 그들의 도움을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자신의 정서적 욕구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당신의 미래 발전, 향후 인간관계에 더 단단한 유대감이 생길 것이다.
저는 내담자들이 부모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며 경험하는 상실감, 비탄의 정서를 표현할 때 상담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도서] 엄마라는 상처_저자: 노은혜, 유노라이프 p.292 중




나는 이따금 엄마가 참 그립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실재하는 엄마가 아닌 내가 꿈꾸고 상상한 이미지의 엄마이다. 내가 상상한 엄마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다 상처 투성인 엄마의 그림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내가 바닥을 치고 사회에서 만난 미성숙한 인간의 교집합의 정서적 특성이 어디선가 많이 경험했던 바로 엄마의 특성이라는 것을 자각을 한 순간까지....


나는 나를 스스로를 돌보기로 결심했다.

따뜻하고 영양 가득한 음식, 아름다운 4계절에 나를 이따금씩 내려놓는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마음의 짐으로 따뜻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늘 마음 깊은 한 구석이 그늘졌던 내가 참 안쓰럽다.


엄마의 절규와 공허가 빠져나간 자리에, 비로소 나의 정서적 여백이 생겨났다. 그곳에는 나의 자율성이, 그리고 내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조용히 들어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안에는, 생체 리듬의 복원과 함께 작지만 건강한 움직임이 다시 살아난다


이제는 내가 나의 보호자이며 정서적 엄마이다.

때로는 이 상황이 너무나 서글프고 씁쓸하지만 지독한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나는 나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낙엽이 세상을 물들인 늦가을 나는 여. 전. 히 나의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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