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주말 새벽 미사.
집에서 성당까지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
작은 산길만 넘으면 금세 닿았다. 춘희는 늘 서늘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신 채 오르간으로 미사 반주를 했다.
그런 춘희를 보며 주임 신부님은 종종 경희에게 말했다. “따님은 작은 천사 같아요.”
미사가 끝나면 경희은 잠깐 숨을 고르고 차 문을 열어 춘희를 태웠다. 성당에서 조금만 더 달리면
새벽 시장의 불빛이 새벽 별처럼 반짝였다.
경희는 그곳에서 가장 신선한 은빛 삼치 한 토막을 골라 가족의 주말 아침상에 올려두곤 했다.
그 맛은 세상에서 가장 신선하고, 가장 고소했다.
아침밥을 차리는 경희는 늘 요리에 정성을 다했다.
그 밥상 안에 경희가 할 수 있는 ‘엄마 역할의 처음과 끝’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이 춘희가 가진 경희에 대한 가장 온전한 따뜻함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그 새벽의 공기와 마찬가지로
해가 뜨는 순간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춘희가 임용고시에 합격해 정식 교사가 되던 날,
경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결핍을 딸의 삶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네가 이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해.”
“네 아빠 몫까지… 네가 해야지.”
경희는 춘희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온몸의 진동으로 에너지를 전했다.
예고도 없었고, 설명도 없었다. 마치 이미 정해져 있던 역할을 춘희가 늦게 받아쓰기라도 한 사람처럼.
처음 부임한 학교 근처에서 얻은 방은 30대 부부와 두 아이가 사는 집의 방 한 칸 월세였다.
보증금 500만 원을 친한 지인에게 빌려 마련해 준 것도 경희였다. 하지만 그것은 도움이라기보다 통제의 첫 실이었다.
“첫 월급 나오면 바로 갚아.
그리고 매달 생활비 50만 원씩 엄마 통장으로 보내.
집에 전화기 설치해서 언제든 연락되게 …“
춘희의 마음은 그때 이미 흔들리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춘희는 사실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학교라는 조직이 자신의 자유롭고 예술적인 결과
잘 맞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교생 실습을 하던 시절, 춘희는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울었다. 첫 버스가 뜨는 5시에 맞춰 일어나 예술대 지하 연습실에서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세 시간씩 피아노를 치고, 대학교 부설중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도 경희는 딸의 고통을 한 번도 정확히 바라본 적이 없었다.
춘희의 위기나 고단함은 경희의 관심 바깥에 있었다.
경희에게 중요한 것은 딸의 삶이 아니라 딸이 가져다줄 안정감, 책임감, 그리고 자기 안의 빈자리를 채울 ‘대체 관계’였다.
그날 이후로 경희는 춘희에게 ‘딸’이라는 이름 외에 ‘친구’, ‘남편’, ‘지지자’, ‘정서적 구조자’라는 끝없는 역할을 강요했다.
그리고 춘희가 그 요구를 거부할 틈은
단 한 번도 허락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