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파티와 공허
춘희는 도로 옆에 자리한 10층 오피스텔에 산다.
주변에는 작은 놀이터와 다가구 주택이 촘촘히 늘어서 있어, 밤이 깊어지면 도로 쪽이 아닌 주택가는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육교 하나만 건너면 집이지만, 새벽에는 그 음침함이 더 짙어진다. 춘희는 출근길과 퇴근길, 그 육교에서 이른바 ‘바바리맨’이라 불리는 남자들을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다. 한쪽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육교 너머로는 주택가가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처음 한두 번은 놀람과 혐오감만 남긴 채 몸이 굳어버렸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되자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했고, 그 이야기를 에스더에게 전하자 에스더 역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박에스더와 홍대에서 와인 동호회 모임을 가진 날이었다. 늦은 귀갓길에 에스더는 춘희를 도로가가 아닌 주택가 쪽에 내려주었다. 도로가에 내려주려면 한 블록을 더 돌아야 했기 때문이다. 불혹을 넘긴 에스더는, 20대의 춘희와 열정적인 주말을 보낸 뒤 더 지체 없이 집으로 향하고 싶은 눈치였다.
에스더는 말하듯 던졌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야. 총기도 없고, 치안도 좋잖아.”
그 말을 두세 번이나 강조했다.
새벽 한가운데, 주택가에 혼자 남겨진 춘희는 묘한 서운함을 느꼈다.
내 친엄마라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침대에서 가족처럼 잠들고, 주말을 온전히 함께 보내왔는데—나는 에스더에게 그저 함께 즐기는 파트너일 뿐일까.
서로의 부모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어느 날부터 가족 아닌 가족으로 경조사를 함께하고, 사촌들과도 우연히 인사를 나눈 사이가 아니었던가.
에스더가 놓친 그 작은 배려 하나가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에스더는 해마다 몇 차례 외국에 사는 지인들을 초대해, 서양식 음식과 파티를 혼자 준비한다. 저녁 여섯 시에 시작된 식사는 자정이 되어서야 끝난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딸기, 고급 와인과 치즈 플래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자리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보다, 에스더 자신의 공허와 허기를 채우는 시간처럼 보였다.
춘희의 시간과 자유는, 에스더의 음식과 교환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