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동공원에서 할머니와 말싸움에 완벽히 졌다.

by 이문희

나는 올해 만 41세, 돼지띠 주부이다.


2020년 8월 23일 생애 첫 교통사고를 겪었다. 홀로 오토바이를 타고 양평 방향으로 주행 중이었는데 후방 차량이 운전 중 전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후미추돌 사고를 당했다. 당시 내가 타고 다니던 야마하 브랜드 2016년식 MT09 모델은 폐차하게 되었다.


이때가 8월이었는데, 10월 첫 임신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 시기 심각한 산전 우울증이 생겨 이는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얼굴로 출산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출산 후 상태가 좋지 못하였다. 나는 가급적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는 피하고 있는데 당시의 정신적 아픔들이 잘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이야기는 출산 후 겪었던 일화다.






우울증이 심하다 보니 알람을 맞춰놓고 기계와 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했었다. 알람이 울리면 밥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먹기, 또 알람이 울리면 약과 영양제 먹기, 또또 알람이 울리면 산책 가기 등


아들이 100일쯤 되어서는 가까운 율동공원에서 매일 산책을 했다.






정문 큰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날이 추워 아들을 꼭 끌어안고 걷는데 뒤에서 웬 차량이 빠아아---아아앙 경적을 울린다. 아들이 품 속에서 깜짝 놀라 팔짝 뛴다. 격렬한 전운이 내 몸을 순식간에 뒤덮는다.





1. 싸우기 전 흥분 하지 마라


하지만 흥분했다. 분홍색 임산부 주차구역으로 걷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임산부 주차라인에 주차를 한다고 경적을 길게 누르며 비키라는 신호를 준 것이다. 순식간에 화르륵 타올라 차에서 내리는 할마니 차주에게 여러 마디 했다.


"할머니! 진짜 너무 하세요!!"

"공원에서 이렇게 크게 경적 울리면 돼요? 아이가 크게 놀랐잖아요!"


할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힐끗 쳐다보며 사과를 한다.


"아이고, 미안! 놀랬어?"



"당연히 놀라죠! 진짜 너무하시네요 할머니!!!"


단전 깊은 곳에서 뻐렁쳐 올라오는 내면의 분노를 토해냈다. 싸움은 초반러쉬가 중요하다. 눈빛, 선빵필승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다. 그래서 눈을 세모로 치켜떴다. 그런데 나는 떨고 있었다. 그 상황에 쫄아서가 아니라 흥분했기 때문이다.





2. 흥분하면 반드시 진다.


할머니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사과를 한다.


"아이고, 미안!"


페이크다.


"나는 개인줄 알았어"


이건 진짜다.


1. 개(갯과의 포유류)

2. 겸칭(謙稱), 자신(自身)이나 자식(子息)을 낮춤

3. 하찮은 것의 비유(比喩ㆍ譬喩)



"뭐라고요? 개요?"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도 하고 헛스윙을 유도하는 변화구.

그렇다, 나는 변화구를 세게 맞았다.


"그래~ 애가 작아서 나는 개인줄 알았지 뭐야!"



"아니 누가 개를 아기띠에 매고 다녀요...?"


황당한 얼굴로 질문하는데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며 강아지 아기띠에 강아지를 안아 내린다. 그리고 강아지 유모차에 다른 강아지 한 마리를 더 태웠다. 입문자용 스트릿파이터 교본에 이것을 <카운터 세게 맞았다>고 해석한 사례가 있다. 할머니가 한마디 더 하고 갔다.


"아무튼 미안해! 진짜 갠 줄 알았다고~"


천운이다. 다행히 혈압이 없었기에 뒷목 잡고 쓰러지진 않게 되었다.






3. 찌질함의 극치


집에 와서 아기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육아퇴근을 한 뒤 초보파이터가 반드시 거쳐가는 과정이 있다. 바로 "그땐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 라면서 상상 속 간지 나는 원투 백스텝 앞차기 콤보를 날린다. 할머니는 진즉에 내 인생을 떠났는데 말이다.







4. 전략분석 : 왜 패배하였나?


아무리 집에서 멋진 대사를 연습해도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반드시 카운터를 맞게 되어있다. 싸움은 실전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얼었다. 쫄은게 아니다. 얼었다.


무례한 놈을 만나면 싸가지 없는 행동에 얼게 되어있다. 왜?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모르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수많은 시간 동안 내 진영에서 적군이 성벽을 허물고 내 땅을 침범하도록 내버려 두었나?


오랜만에 만난 자리인데 모임 분위기가 깨질까 봐, 내가 정색하면 상대방이 민망할까 봐, 그냥 한번 참지 뭐...


다양한 이유로 성벽을 허물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기에 앞에서 눈뜨고 코를 베어가도 그게 화나는 상황인지 모르고 집에 와서 다른 친구한테 전화로 묻는다.


"이거 내가 예민한 건가?"


내가 기분이 상하면 상한 것이 맞는데 말이다.









5. 장그래가 그랬다 "꼼수는 정수로 받는다"


알아차려야 한다. 그때 그 친구가 나한테 왜 그랬지? 항상 상대의 행동만 곱씹었다. 상대만 알면 진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나는 요즘 내 감정을 곱씹는다. 아들 데리고 산책하면서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행복아, 아까 완전 어이없었잖아?"

"태도가 진짜 기분 나빴어, 사과처럼 안 느껴지던데?"


아들은 14개월이라 알아듣지 못해 빽빽 소리만 지른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들어주는 가족이 있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 마음에 또 다른 내가 듣고 있는 것인지, 아들이 듣고 있는 것인지는 모호하게 느껴진다.


묘하게 무례한 태도, 은근히 비꼬는 말투를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 공격으로 최적화되어 있는 상대에게 똑같은 전략으로 싸워 이기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6. 어떻게 이길 것 인가?


나이가 들었다. 젊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못 싸운다. 그 과정에서 나도 상처를 입기 때문이고 상처 회복은 생체리듬에 맞게 더뎠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사회생활 하면서 이유 없이 텃세 부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싫었는가? 내로남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싫었는가? 나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때로는 그렇게 살기도 했다. 그래도 매번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며 살고 싶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까지 최선이 되진 않았다.

많이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고, 다시는 열심히 노력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가 되기 전 깨닫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내 노력의 대가가 이거냐며 엄청나게 분노했고, 억울해하다, 슬퍼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과정을 겪으며 분노는 때때로 나와 주변으로 향했고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가 깨달으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지금은 노력도 나의 몫,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도 나의 몫, 노력했지만 결과는 나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 그것도 삶의 일부임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 중이다.


다행인 것은 내 자녀가 훗날 마음이 아플 때, 나는 이미 겪어보았으니 그 아픔에 진심으로 같이 손잡고 아파해주며 곁에서 위로해 줄 수 있겠구나


내가 더 먼저 겪은 아픔이라 참 다행이야

치유가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keep going!






겁 많은 쫄보 주부가 도로에서 만나는 일상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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