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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Jun 10. 2020

'언택트'는 고립의 다른 이름일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를 읽고

"준영이 잘 못되면, 그 땐 네가 내 손에 죽어!"


난달 28.4%의 시청률을 찍고 종영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주인공인 지선우(김희애 분)이 전남편인 이태오(박해준 분)에게 한 말이다. 이혼 후 자신과 함께 변화한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아들인 이준영(전진서 분)이 전남편에 집에서 살겠다고 한 이후였다.


드라마 말미가 돼서야 나온 그들 부부의 본심은, (우리는 대체로 짐작하고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번번이 연락해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확인하면서도, 아들을 핑계로 연락하고 만나온 그들은 사실상 서로에 대한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가족심리 분야의 전문가들도 아이를 핑계로 부모 자신의 본심을 감추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외도로 갈라선 이들 부부는 이혼 후에도 아들을 이유로 자주 만난다. 자료=JTBC 공식 홈페이지






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 건, 신기하게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의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 기사 때문이다. 쥘리앙 브리고 기자는 이 기사의 말미에서 에릭 슈미트 구글 전 CEO 회장의 말을 인용해, 슈미트 전 CEO 회장이 사회에 대한 의견을 묻는 미국 CBS 방송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가격리 기간 동안 우리는 10년을 앞서 성장했다. 이제 인터넷을 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인터넷 없이는 일도,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것이다”


오늘 아침의 날씨와 입을 옷, 점심에 먹을 메뉴, 집에 가서 할 일을 등을 모두 '네모난 창'에 검색하는 현상이 이제는 더욱 더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그럴수록 '네모난 창'을 관리, 운영하는 기업은 더욱 특수를 누릴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16


르몽드 디플로 6월호의 1면을 차지한 이 기사는 코로나19가 의료, 교육, 금융 부문에 스며든 언택트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저 의료분야에선 비효율적인 병원을 떠나 의원을 차린 티보 자냉노토의 얘기가 나온다. 개원하자마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그는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에도 원격으로 진료를 이어간다. 2주 동안 온라인 진료사이트에서 진료를 이어가면서, 자신 환자의 평균 연령이 25~30세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플리케이션과 화상시스템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연령대만 그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프랑스의 원격진료 건수가 2019년 6만 건에서 2020년 3월 마지막 주에 50만 건으로 치솟고, 이 사이트의 창립자가 프랑스 부자 269위에 드는 순간에도 50대 이상의 환자는 이 사이트의 존재조차 모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교육 영역에서의 언택트도 미흡하긴 마찬가지다. 당장 수업이 들어가야 하는 교사들은 정부가 던져준 온라인수업 도구 설명서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낮은 사양의 온라인 수업 기기는 온라인수업의 질을 저해하고 있다. 원격수업 때문에 사직까지 고려하고 있다던 한 교사는 첨단기술 때문에 학생이 수업내용의 핵심을 놓칠 것이며, 교사 역시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는 건 재앙이라고 토로한다. 교육격차 문제도 무시하기 어렵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2020년 4월 21일 현재 전 세계 학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8억 2600만 명이 컴퓨터가 집에 없고, 7억 600만에 해당하는 43%는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기사에 인용된 프랑스 통계층의 자료도 암담하다. 프랑스의 15세~29세 인구 중 29%가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자유화정책’이 상당 부분 진행된 금융 분야는 어떨까. 은행 거래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디지털 기기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금융 서비스와 더욱 멀어질 위기에 놓인다. 기사에 인용된 위고 브리쿠 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은 23% 인구 중 1명이다. 그는 본인인증을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지 못해 은행에 갔지만, 은행은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은행에 방문한지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우편으로 은행계좌 내역서를 받아본다는 그는 여전히 계좌이체도, 온라인 거래도 할 수 없다. 낙후 지역에 살고 있는 브리쿠의 아버지 역시 세금 전자신고, QR코드 등을 이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지침을 ‘상명하달’ 식으로 내려받는다. 프랑스 국토 63%와 2만2500여개 농촌지역 코뮌에는 아직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상태다.




국의 디지털 보급률이 유럽보다 나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각 영역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비대면 혹은 원격진료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은 18~29세에서 52.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70대 이상은 33.3%로 가장 낮았는데, 기기 구입이나 사용 등 별도의 절차가 필요한 비대면·원격 진료가 그만큼 중장년층에게 까다로운 일일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서울신문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의 초등학생은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수업을 진행할 수 있고, 이중 3~4명 정도는 옆에 어른이 있을 때에만 집중이 된다고 했다. 연령대에 따라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적잖게 차이가 난다는 정부 발표는 금융 분야를 포함한 전 분야에서 디지털 격차가 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렇듯 사회 전반에서 언택트 사회에 대한 암운이 드리우고 있는데, 언론에 등장한 IT대기업수장의 얼굴은 밝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10년을 앞서 성장했고 인터넷 없이 일상생활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슈미트 전 CEO 회장 말의 주어는, 과연 그의 말대로 ‘우리’가 맞을까. 부부의 세계에서 이혼한 부부는 자신의 안위를 자식의 안녕으로 ‘퉁’치고, 자식을 핑계삼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했다. 어쩌면 IT기업의 수장이 말한 ‘우리의 성장’도 ‘나’의 성장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건 너무 예민한 생각일까.


코로나19가 언택트 문화를 주도했지만, 결국은 기존에 우리 사회에 있었던 현상이 하나씩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유발 노아 하라리 예수살렘히브리대 교수는 그의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편리함을 광신하는 데이터의 사회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의지를 잃은 인간은 데이터에 예속되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대규모 자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일상에서 독서 등 자기계발로 돌파구를 찾으며 시간을 쪼개 살면서,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한 눈에 보기 ‘쉽게’ 항상 모바일에 저장하곤 한다. 이런 내가 과연 불편을 감수하고 대자본에 내 데이터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이 부분에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6월호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을 읽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참고문헌

-노아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김명주 옮김, 김영사, 2017년, 630페이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011269

-서울신문 조사: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3085663


-리얼미터 http://www.realmeter.net/%eb%b9%84%eb%8c%80%eb%a9%b4%c2%b7%ec%9b%90%ea%b2%a9-%ec%a7%84%eb%a3%8c-%eb%8f%84%ec%9e%85-%ea%b4%80%eb%a0%a8-%ec%97%ac%eb%a1%a0%ec%a1%b0%ec%82%ac-%eb%8f%84%ec%9e%85%ed%95%b4%ec%95%bc/


-과학기술정통부 <디지털정보격차실태조사 2019>

https://www.msit.go.kr/web/msipContents/contentsView.do?cateId=_tsta6111&artId=287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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