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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Jun 25. 2020

원격의료, ‘의료 공공성 강화’에 딱 맞는 도구일까

르디플로 6월호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 를 읽고

미흡한 일차의료 시스템 등 기존에 나온 방안을 그대로 두고 원격의료만 시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각국 정부의 방역, 예방 대책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구체적인 방식은 다르지만 타인 간 접촉, 집단의 밀도 등이 코로나19 확진자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언택트’ 방식을 정책으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6월호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 기사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과 국민 인식 사이에 거리가 있는 디지털 보급 정책을 갑작스럽게 추진하는 정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국가적인 재난을 앞두고, 누가 이익을 보는지 모호한 정책을 급작스럽게 추진하는 모습은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있었던 불가피한 비대면 진료를 ‘원격의료’ 논의로 전환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가 떠오르기도 했다.


비대면 진료·원격의료는 의료인과 환자가 원격으로 의료서비스를 주고받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둘 사이의 개념이 다르지 않다는 게 보건의료 전문가의 공통된 주장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소득이나 지역, 연령에 따른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해 의료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점을 감안해 편의상 용어를 ‘비대면 진료’로 통일하려고 한다.


출처=직접 촬영

실제로 코로나19로 병동이 폐쇄됐던 은평성모병원의 설문조사를 보면, 환자 87% 가량이 전화상담 등 비대면 진료를 할 때 상태 설명에 문제가 없었으며 진료도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몸이 아파도 집 밖에 나가지 못하거나, 병원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의료사각지대에서는 이런 방식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성질환도 비대면 진료가 적합한 측면이 있다. 일상 속에서 자신의 상태를 의사와 공유하고, 특이사항이 있을 때만 의료기관에 방문하는 게 환자나 의사 입장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의료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제쳐둔 채 비대면 진료만 먼저 추진하려고 하는 데 있다. 의료 공공성 붕괴는 의료인간 원격의료가 가능해진 2002년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던 논란 중의 하나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위한 설비 투자가 이뤄지면서 환자에게 과잉진료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대형 병원으로 쏠리면서 간단한 증상에도 대형병원을 찾는 현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나온 해법이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와 일차의료 강화다. ‘우리 동네 주치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일차의료는 평소에 자신이 어디가 아프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자신의 집과 가까운 동네 의원을 통해 관리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차의료의 석학인 바바라 스타필드는 인구집단의 건강을 향상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의료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일차의료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주치의 제도를 잘 정착시킨 나라가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병상과 장비를 덜 보유하고, 검사도 덜 하면서 재원일수도 짧은데 의료지출이 적다는 연구 결과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일차의료가 지역사회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여기서 해결하기 어려운 질환은 대형병원이나 국립거점병원 등 2,3차 의료기관에서 다뤄 의료시스템이 각각의 역할을 하도록 하면 불필요한 의료비도 줄어들고, 대형 병원이 별로 없는 도서산간지역 주민의 의료접근성도 높아질 수 있다. 이렇듯 보건의료시스템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두고 전화상담 등 비대면 진료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굳이 이어갈 이유가 있을까.


정부는 언택트 등 비대면 사업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 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발표한 ‘한국판 뉴딜’에 교육, 의료, ICT 등 다양한 영역이 포함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육, 의료 등 산업적 측면으로 접근하기에 제약이 있는 공공부문을 건드리려면, 공공성을 잃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는 점이 먼저 입증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이 마비된 틈을 타 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하는 ‘쇼크 독트린’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9·11 사태를 빌미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해 국방 업무를 민영화한 부시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이 칼럼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 기사를 참고해 쓴 글입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16






[참고문헌]

1)쥘리앙 브리고,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20년 6월호

2)임혜영, ‘한국판 뉴딜 추진TF’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2020.05.12

3)김창엽, ‘원격의료 정책을 둘러싼 주요 논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원격의료 도입인가? 국회토론회’, 정의당 배진교 의원, 2020.06.17.

4)김동인, ‘비대면 진료, 의료인이 반대하는 까닭은?’, <시사인>,664호.

5)이미지·이소정, ‘코로나로 재점화한 원격 진료 논쟁…진료 경험 환자 87% “만족”’, 동아일보, 2020.05.01.

6)강희정, 의료 격차와 정책 과제(Healthcare Disparities and Their PolicyImplications), 보건복지포럼, 2019.04.

7)이재호, ‘OECD통계로 본 한국 일차의료 현황과 주요 논점’,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책현안 12권 4호, pp.17-32.

8)나오미 클레인, ‘쇼크 독트린:자본주의 재앙의 도래(shock doctrine)’, 살림Biz,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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