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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Oct 28. 2020

그는 예비엄마에게 말했다. "헤어지자"

여행지에서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예비부모의 사연


Q.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어떤 증상이 있었나요?


A. 생리 지연, 감기 증상, 소량의 갈색혈 등이 한꺼번에 나타날 때 처음 임신 여부를 의심했어요. 속이 메스껍고 감정 조절이 잘 안되던 '극초기' 시기에는 그저 컨디션 난조로만 생각했었고요. 이 시기에는 임신인 것도모르고 놀이공원에서 바이킹까지 탈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는 단호하고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멈췄다. 여자는 남자를 뒤로 하고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 뒤를 남자가 따라갔다. 2016년 6월 30일, 중국 다롄시로 떠난 여행에서 벌어진 일이다.     


남자와 여자는 방 안에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여자였다.      

“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때?” 


남자의 얼굴에 더 깊은 슬픔이 고였다.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는 안 물어봐?”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울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잘못했어. 내가 다 미안해.”


남자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묘하다. 친구 커플과 함께 갔던 중국 여행은, 나중에 알고 보니 뱃속 아기와 처음 함께 한 해외 일정이었다. 그 시기의 오한과 감정 기복, 무력감 등 컨디션 난조는 아기가 배 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 타지의 놀이공원에 들러 바이킹, 문어발도 타고 고량주도 마셨다. 여기에 지금의 남편 될 사람(이하 구남친)과 이별 얘기까지 했으니, 저조한 컨디션이 부른 갈등이 여행에서 터진 것이다.     


이별 얘기가 나오게 된 과정도 사소했다. 앞서 가는 친구의 남자 친구가 친구의 캐리어를 들어주는 걸 보고 질투가 났던 게 발단이었다. 여행까지 와서 싸우고 싶진 않아 감정을 다스리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화났을 때 흔히 그랬듯 구남친과 눈을 맞추지 않았고, 아침 산책을 갈 때도 깨우지 않고 친구 커플이랑만 숙소를 나섰다. 이유도 모른 채 투명인간 취급당하게 된 구남친도 애써 화를 꾹꾹 누르며 숙소 밖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별 얘기까지 한 뒤 극적으로 화해한 뒤로는 즐거웠다. 다만 몸이 어딘가 편하지 않다는 감각은 여전히 나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양꼬치, 훠궈 등 평소에 잘 먹던 음식도 그날따라 역겹게 느껴졌다. 고량주도 몇 모금 못 먹고 친구 커플에게 내줬다. 월미도 바이킹을 좋아할 만큼 놀이기구에 조예가 깊은 나인데, 월미도 바이킹 절반 각도밖에 올라가지 않는 다롄시의 바이킹을 타면서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일상으로 복귀한 후에도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았다. 으슬으슬 추우면서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예정일이 2주가 지났는데 생리를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속옷에 조금씩 비치는 갈색 혈도 의심스러웠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소량의 갈색혈, 오한과 오심, 생리 지연 등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은 정확하게 임신 초기 증상과 맞물려 있었다. 

서..설마..?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혹시나 하는 마음에 퇴근길에 약국에서 임신진단 테스트기를 샀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밝자마자 화장실에서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결과는 ‘충격과 공포’였다. 테스트기 안에 선명한 ‘두 줄’이 시야에 들어왔다. 


임신이었다.           


왠지 사진을 찍어놓고 싶더라니....허허(feat.빼박 두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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