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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Oct 28. 2020

내 안의 '편견'들아, 나대지 좀 마

스스로를 검열했던 시선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Q.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출산하게 된 저는, 구제불능일까요?


A. 일반적이진 않지만 틀리다고도 할 수 없는데, 한국에선 유독 이런 순서의 결혼, 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비난에 상처를 받지 않긴 어렵지만, 최소한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이 제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들 싸운다고 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소한 일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내 미래에 대한 결정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을 이렇게 대책 없이 준비하게 된 게 모두 내 탓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면 몸도 함께 아프곤 했다. 뱃속 아기에게 불편한 환경을 만들어줄 순 없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아기와 함께하고 있으니 좋은 일만 생각하자. 그렇게 스스로 주문을 외워도, 찌든 때처럼 지워지지 않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은 결혼, 출산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의 위상, 그리고 결혼제도와 관련이 있었다.     


1) 출산은 결혼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출산 결정 과정에서 가장 괴로웠던 건 ‘인지 부조화’였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내 선택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혼란이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나처럼 결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미혼 부모나 대리모 등 혼외출산은 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쩐지 ‘정상’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언론에서 미혼 부모, 한부모 가정 등에 대한 얘기가 나와도 와 닿지 않았고, 현실과 괴리된 문제 같았다.      


프랑스의 '팍스' 제도를 설명해놓은 책. (출처=북저널리즘 홈페이지)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임신은 결혼 외의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프랑스는 ‘팍스’ 등 정식 결혼 이외의 제도를 통해 결혼하지 않은 부모에게도 결혼한 부모와 같은 수준의 혜택을 준다. 결혼이 독립적 개인이 만나 결합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형태의 결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상이라고 여겨온 울타리는, 미혼 부모에게 결혼한 부모만큼의 혜택을 주지 않는 한국의 결혼 제도와 관련 정책의 산물인 셈이다.  

   

남자친구의 반응을 살피기 전에, 선택지를 늘리는 과정에서 아빠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조부모와 배우자가 아기에게 들이는 시간을 모두 내 시간으로 메워야 하는 정도는 막연하게나마 예측해볼 수 있었다. 아빠는 있지만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키우는 일은? 혼인신고를 한 부부에게만 청약 가점을 주는 등, 한부모 가정에 가혹한 한국의 양육 지원 지도가 이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한부모 가정이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관련 기사가 나오면 유심히 보게 됐다. 사회에는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를 갖고, 키우겠다고 결심한 부모들이 많았다. 출산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난다고 해도, 자녀의 전 생애에 걸친 지원이 있지 않으면 사실상 양육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미혼부모나 한부모 가정의 출산, 양육이 흔한 프랑스는 아예 제도로써 이들의 자녀 양육을 지원한다. 자녀를 맡기는 시스템도 잘 마련돼 있어서 자녀를 키울 때의 부담이 우리나라만큼 크지 않다고 들었다. 한부모 가정, 혹은 미혼부모의 부담이 줄어들 정도면 그렇지 않은 가정의 부담은 더욱더 크게 줄어들 것이다. 


 2) 혼전임신은 정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나는 성에 대해 솔직하거나 대담하게 표현하는 또래의 친구들을 동경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그렇지 못한, 이른바 ‘유교걸’이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친했던 다른 유교걸이, 혼전임신과 결혼 소식을 동시에 알릴 때 내심 놀랐다. 대학원에서도 동기 한 명이 비슷한 계기로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들은 모두 내가 동경했던, 성에 개방적인 유형의 친구들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혼전임신은 성에 대한 개방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자와 난자가 잘 만나게 하는 과정상의 개방성에 영향을 받는다. 결혼 전에 누구나 성은 즐기지만, 정자와 난자가 만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불가피한 상황을 예방하는 게 현실적인 대처다. 그래서인지 성을 잘 알고 즐기는 이들은 피임 등 사전 작업을 잘 다져놓는 느낌이다. 혼전 임신 소식을 전해준 주변 지인이, 나처럼 내 욕구에 덜 솔직하고 피임 등 중요한 문제에 땜질식 처방을 하는 일부 유교걸들인 것 같아 든 생각이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조금 다른 성교육을 하고 싶다. 아이와 함께 최대한 많은 성적 지식을 열어놓고 공유하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을 철저히 하라고 얘기할 것이다. 딸이 살아갈 세상은, 여성도 자신의 욕구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이길 바란다. 그런 상황에서 내 딸이 자신을 찾는 데 무리가 없었으면 좋겠다.     


3) 사람들은 나에 대해 수군거릴 것이다     


임신과 결혼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나를 비난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아직까지 한국에선 혼전임신 등의 이슈에 대해 ‘여자가 더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회사에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험담 하기 좋아하는 일부 직원들은 나의 임신 시기를 점치며 안주거리로 삼았을 것이다.     


나에 대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이런 사건을 겪은 당사자는 ‘정신 승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속내에 무관심하며, 내 문제에 대해 그렇게 떠들만한 사람은 애초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디나 있는 ‘또라이’를 대처하는 처세술이 생기듯,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무례한 타인에게 굳이 에너지 들일 필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런 접근은 개인적이고 단기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여자가 더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관계가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듯, 혼전 임신 의 원인도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쪽에만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임신이 여성의 몸에 큰 무리를 준다는 이유로, 여자가 더 피임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인식은 마치 장애인이나 아동이 자신의 낮은 사회적 위치를 감안해 생활의 전반적인 면에서 피해를 입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여성과 장애인, 아동 등의 행복지수가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주기적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로 먹는 용도로 나오는 여성용 피임약은 생리 지연이나 불순, 배란 장애 등의 부작용을 불러온다. 효과도 남성용에 비해 떨어진다. 반면 남성은 정자를 막는 용도의 기구를 쓴다고 해서 신체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장애를 겪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커서 또래 이성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낄 만큼 먼 미래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좀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약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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