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다면 인생 차선을 바꾸세요
때로는 책의 한 구절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스치고 지나가듯 읽어도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된 씨앗은 언젠가 싹을 틔우고 깨어나 제 목소리를 낸다.
내가 첫 직장을 퇴사한 것도 책에서 읽은 저자의 주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일이라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일본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도 비슷한 길을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작가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직장 환경은 편안했고, 복지도 좋았지만 그 역시 모든 직장인들처럼 일탈을 꿈꾸게 된다. 일탈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에서 내 눈에 딱 들어온 것은 지방이나 해외 근무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저자는 지방 발령이 나면 이산가족이 되는 게 싫기에 기꺼이 퇴사를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 일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결정이 대단하다 싶었다. 실제로 작가는 지방 근무 시기가 오기 전에 퇴사해서 독립적인 일을 하게 된다.
나도 작가와 같은 길을 걸었다. 퇴사는 복합적인 이유가 겹친 결과였지만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지방으로 발령이 났을 시기였다. 당시 신혼이었기에 다른 이유가 없었더라도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업무 때문에 신입사원 시절에도 출장이 잦았다. 6년 동안 전국을 세 번이나 돌았다. 혼자 갈 때도 있었고 나이 많은 선배나 상사와 함께 가는 경우도 있었다. 혼자 가는 것보다는 상사나 선배와 함께 가는 게 더 좋았다. 멀리 출장 와서 고생한다고 지사 담당자들이 융숭하게 대접을 해주었는데 동기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머쓱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참과 함께 가면 알아서 분위기를 주도했기 때문에 훨씬 편했다.
밤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면 대리나 과장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했다. 그곳이 고향이기에 자원해서 근무하는 경우보다 발령을 받고 근무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미혼인 경우에는 상관없었지만 기혼자는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최소 2년 이상, 이런저런 이유로 본사 복귀가 힘들어지면 7-8년 이상 지방을 돌며 지내야 한다고 했다. 주말엔 집에 가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어쩌다 한 번 간다’고 했다. 이유인즉 휴일에는 타지 생활 중인 상사와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장 이상 상사들도 타향살이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많은 부장 이상은 집에 가도 반겨주는 이가 없어 숙소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눈치 빠른 부하 직원들은 고독한 상사의 허전한 주말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았다. 주말을 희생하여 시간을 함께하며 상사와 부하가 아니라 ‘형님’과 ‘동생’으로 관계를 바꾸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결정적인 시기에 힘을 보태기 위한 가성비 좋은 투자였다.
당시에는 승진 평가 시 직속 상사의 의견이 결정적이었다. 상사와 관계가 돈독하지 않으면 승진은 어려웠다. 평소 상사들을 여러 가지로 챙겨주는 직원들은 승진이 빨랐다. 인사철이면 유력한 후보를 물리치고 의외의 승진을 한 후보자들의 배려 노하우(?)에 대한 루머가 사내를 돌아다녔다. 이런 역학관계에서 주말에 내 시간을 찾는다고 인맥 관리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정작 힘이 필요할 때 부탁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가족과 떨어져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주말마저 상사들 수발을 들어야 하다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승진도 좋지만 아이들이 한참 예쁠 무렵 아빠가 함께 있어 주지 않으면 나중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슬슬 퇴사에 대한 고민이 싹을 틔울 무렵 또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대로 일을 하는 게 좋은 걸까 싶었다.
회사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시간과 여유도 넉넉했다. 상사와 선후배들도 좋았다. 실적에 목을 맬 필요도 없었기에 스트레스도 별로 없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부족했다. 일이 재미있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뭔가 새롭다거나 더 잘해야 한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지금은 그게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였음을 안다)
나와는 반대로 동기들은 그 여유로움을 즐겼다. 계열사에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에 다시 시험을 보고 들어온 동기는 예전의 직장과 비교하면 너무나 좋다고 했다. 표정에서 행복이 묻어날 정도였다. 그 친구에게는 나의 고민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들어오면서 잊고 있던 예전의 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나이가 차서 꿈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지만 더 역동적이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치열한 가운데 일도 재미있고, 열심히 할수록 그에 맞는 대우를 받고 싶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본격적으로 우물 밖을 동경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일을 하면서 외주업체 대표들을 많이 만났다. 나이도 나보다 많고, 대부분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을이었지만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갑이라는 회사를 등에 업었을 뿐인 나보다 훨씬 자신감 넘치고, 경제적으로도 월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들보다 무엇 하나 나은 게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 중에 가업을 이어 받아서 운영 중인 대표 한 명이 있었다. 나이는 10살 정도 많았지만 사업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동년배들보다 훨씬 노회한 느낌을 풍겼다. 일로도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사석에서도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특히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회사에 너무 종속되지 말고 자신의 일을 찾으라고 자주 조언을 해주었다.
당당하게 자기가 원한 인생을 선택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멋있었다. 경제적으로도 그들의 수입은 나와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고급 수입차를 타고 다니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었다.
사내에서 다른 부서와 협업을 하거나 부서 내에서만 일하던 다른 동기들보다 외부 인사들을 만날 일이 많았던 경험이 어쩌면 퇴사를 더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그들 중의 하나가 되기로 한 결심을 실행하게 된다.
혹시라도 지금 하는 일이 재미가 없고, 시간만 죽이는 독자가 있다면 묻고 싶다. 운이 좋아서(?) 100세까지 살 수 있다면 이대로 고민과 두려움 속에 70년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10년 빡세게 구르며 고생하고 60년을 편하게 살고 싶은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언젠가는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더 늦기 전에 이직하는 걸 추천한다. 이직은 빠를수록 좋다. 나를 위해서도 좋고, 함께 일할 동료나 상사를 위해서도 좋다. 섣불리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지금 하는 일과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할 경우의 마지노선은 40살 정도라고 본다.(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이상이면 나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다.
불혹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분야로 이직하면 감내해야 할 고난과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린 상사의 꾸중과 갈굼도 짜증날 것이고 나이 어린 선배들에게 굽신거리며 묻고 배우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일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쉽게 버텨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모든 고생의 대가로 내가 찾던 진짜 인생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면 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인생을 잘 살고, 못 살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경제적인 성공과 실패의 문제로만 판단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을 물었을 때 “햇빛만 가리지 말아달라”고 할 수 있었다.
인생을 잘 살아내려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나간 어제를 후회하느니 새로운 일을 해서 실패하는 게 낫다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 KFC의 설립자인 커넬 할랜드 샌더스는 용기와 도전 정신으로 운명에 맞선 것으로 유명하다. 샌더스는 사업가로서의 능력은 탁월했지만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불행의 여신이 그가 하는 일마다 따라다니며 방해를 하는 것 같았다.
처음 시작해서 번창 일로에 있던 주유소는 1929년 대공황으로 접었다. 쉘오일의 도움으로 다시 주유소 겸 카페를 열어 모텔까지 짓고 성업했으나, 모텔에 화재가 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우리나라였다면 경비원이나 할 나이였지만 샌더스는 승용차에 압력솥을 싣고 치킨 조리법을 팔러 다녔다. 포기할 줄 모르는 그의 노력은 마침내 빛을 보았다. 1964년 75세의 나이에 샌더스는 200만 불을 받고 KFC를 팔았다.(인플레를 감안하면 현재 환율로 수백억 원에 달한다.)
100세 인생 시대다. 시간만 보내며 걱정하느니 늦은 감이 있다 해도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라. 어차피 내 인생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으며, 고민이 저절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70년을 고민과 두려움 속에 보내다가 후회와 함께 떠날 것인가. 10년 동안 빡세게 구른 후에 나머지 60년을 즐겁게 살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