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때는 갑이었거든요?>

Part 1-5 신나는 아침 출근길

by 마인드 오프너

싱그러운 아침 출근길


새벽 6시. 저절로 눈이 떠진다. 사회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침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魔)의 몸부림을 잠깐 쳐본다. 오래 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고 컴퓨터 앞으로 간다. 아침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블로그에 올릴 글도 써야 하고, 영화 리뷰도 해야 한다. 시간이 금이다.


기상 후 출근 시간 전까지 블로그에 올릴 한 편의 글은 쓸 수 있다. 가뿐한 마음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출근 시간은 금방 찾아온다. 나의 애마를 꺼내서 계단을 내려간 후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연식이 오래되어서 방지턱을 넘으면 곳곳에서 찌그덕 소리를 내는 고물 자전거이지만 최소한 5-6년은 앞으로 현역 생활을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쇽 옵저버가 좋아서 턱을 넘어도 엉덩이에 충격이 덜하다.


몇 주 전 동생이 남 주겠다는 조카의 자전거를 재빨리 가로채서 가져왔다. 덕분에 주말에 지하철 첫칸에 자전거를 태우고 여행하는 진귀한 경험을 해보았다.


요 녀석은 애마보다 훨씬 신품이다. 당연히 더 승차감이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타보니 그게 아니다. 충격을 전혀 흡수하지 못해서 낮은 방지턱이라도 한 번 넘을라 치면 엉덩이에 불이 난다. 앞뒤 바퀴에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가 없다.


고등학생들이라 이런 걸 타고 다니는 건가. 엉뚱한 곳에서 세대 차이를 느끼고 만다. 회사까지 한 번 타고 갔다가 엉덩이에 불이 나는 경험을 한 후로는 베란다에 고이 모셔놓고 있다. 과연 이 녀석을 다시 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회사까지는 자전거로 15분 남짓 걸린다. 차로 올 때보다도 빠르다. 신호등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도 해서 좋고, 아침의 싱그러움을 음미하는 과정도 신난다. 출근 시간이다 보니 지하철역을 지나치다 보면 늦었는지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직장인들을 많이 본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오래 전 나의 출근 모습을 회상한다.

metropolitan-subway-5969374_1920.jpg 출근 시간의 지옥철...으...1,2호선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출퇴근 시간만 다섯 시간


직장은 강남에 있었다. 강북에서 지하철을 타고 50분 정도 가서 20분 정도 걸어야 했다. 걷는 시간이 꽤나 많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운동도 하고 좋지 뭘 그래.


입사 3년째인가 갑자기 사옥을 이전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떴다. 잉? 그것도 분당 제일 끝이라고?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오 마이 갓! 노선의 제일 마지막이다.(지금은 여기서 1호선이 더 연장한 상황이다). 강남도 출퇴근이 만만치 않은데 이게 웬 날벼락이람.


독립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팔자에도 없는, 산 넘고 물 건너 출근을 감수해야 했다.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20분, 지하철을 타고 수서에서 50분, 수서에서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30분을 가야 하는 머나먼 출근길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과 도보 시간까지 합치면 최소한 두 시간, 평균 두 시간 반이 걸리는 장거리 코스였다.


일주일 정도 출퇴근을 해보니 지루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교보에 가서 영어 원서 페이퍼북을 샀다. 오래도록 읽어야 하고, 시간 가는 줄 몰라야 하기에 최대한 두꺼운 스릴러 소설을 구매했다. 그 소설이 바로 영화 <더블 타겟>의 원작 소설인 스티븐 헌터의 탄착점(Point of Impact)이었다.


분량이 500페이지가 넘는데 더구나 영문이다. 글씨 크기는 6포인트나 될까. 깨알 같다는 말이 맞는 크기다. 한 페이지에 웬 줄은 그리 많던지. 더구나 저격이 소재라 듣도 보도 못한 군사 용어와 전문용어들이 춤을 추며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많을 때는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수십 개가 나올 때도 있었다.


놀랍게도 이 책을 다 읽는 데 한 달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왕복 다섯 시간 동안의 출퇴근길에서 하루에 30페이지 정도를 읽는 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사용어도 처음에만 어려웠을 뿐 어느 정도 지나니 어렵지 않았다.


<탄착점>을 시작으로 매달 영문 페이퍼북을 한 권씩 갈아치웠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좌석을 읽는 요령이 생겼다.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이 서너 군데 있었는데 그때 내리는 사람을 잘 골라서 좌석 앞에 서 있는 게 포인트였다. 대개는 30-40% 정도의 확률로 앉아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닥쳐야 연구를 하는 모양이다.


원서 페이퍼북으로 출퇴근길을 보내는 습관은 아쉽게도 1년만에 접어야 했다. 1년 정도 지나자 출퇴근길에 앉으면 저절로 잠이 왔다. 출근길 내내 잠을 자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잔다고 해서 피곤이 풀리는 것도 아니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기나긴 출퇴근길은 회사에서의 업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출근할 때부터 지쳐 있는 상황이라 출근 직후 바로 업무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이래서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두는구나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서 직원들에게도 가급적 30분 이내 거리에 집을 얻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1.jpg 출퇴근길 동반자였던 책.





고요한 나의 전장


아침 출근길이 신나면 일도 신날 수밖에 없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대개 9시 10분 전이다. 이따금 앞에 있는 카페에서 라떼를 주문해서 가지고 가거나, 사무실 내에 비치되어 있는 원두 커피를 타 먹는다. 아침의 커피는 잠자고 있던 몸안의 세포를 모조리 불러 일으키는 활력요소다.


직원들이 10분 사이에 우르르 도착한다. 아직 젊은 친구들이라 일찍 오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모두 지하철 1, 2호선을 이용하고 있는데 연착이나 사고라도 나면 여지없이 지각을 하고 만다.


직원 1명은 제주도 출신이다. 대학교를 내륙으로 가서 그때부터 집과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기특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에서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젊은 시절 혼자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대학교 재학 시절과 첫 직장에 다닐 때 미혼인 선배나 동료들의 자취방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예외가 없었다. 혼자 산다는 건 자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방종이 될 수도 있다. 자유와 방종 사이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건 어지간한 각오와 규율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남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 굳었던 것 같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메일 확인이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나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에 대해서 의뢰인과 오간 메일을 공유한다. 메일 확인이 끝나면 카톡 확인이다. 지금은 메일보다 카톡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카톡에서 허락하는 용량 이상의 파일이 아니라면 자료도 대부분 카톡으로 주고받는다. 심지어 전화마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은 아날로그 시대의 교류가 그립다.


사무실은 대부분 고요하다. 팀 작업이면서 동시에 개인 작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따금 점검을 하거나,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목적의 미팅이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따로 또 같이 보낸다.


가장 시끄러운 사람은 나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거나 글을 쓰는 도중에는 집중하느라 말을 하지 않지만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일부러 직원들에게 말을 건넨다. 주제는 많다. 트렌드도 좋고, 어제 본 영화의 리뷰나 스포츠 소식도 다 환영이다. 일단 불쏘시개가 되는 말을 꺼내야 비로소 대화에 불이 붙는다.


너무 조용하게 일만 해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이왕이면 주변 공원을 걸으라고 권한다. 하루 종일 앉아서 모니터만 보는 일이라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지 않으면 거북목이나 다른 직업병에 걸릴 확률이 있다.


workspace-1280538_1920.jpg 환경과 일은 노마드하기 딱인데.





3X3의 아레나


집중을 해서 일을 하노라면 시간은 여름 장마철에 불어난 강물처럼 미친 듯이 흘러간다. 직원들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서야 퇴근할 시간임을 깨닫는 일도 적지 않다. 가끔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 이렇게 일을 했어야 하는 건데 각성이 늦었다.


집에 돌아오면 나만의 아레나로 향한다. 3mX3m의 자그마한 투기장이다. 세상과 맞짱 떠서 이겨내려는 나의 각오를 실현하기 위한 대기실이자 투기장이자 작업실이기도 하다. 이상은 여전히 현란한데 실제 모습은 미혼자의 ‘혼돈의 도가니’와 별 차이 없다. 아내는 몇 번 잔소리를 하더니 이제는 확실하게 포기한 모양새다. 결혼을 해도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퇴근 후에도 한가롭지 않다. 오히려 회사보다 더 바쁘다. 블로그도 해야 하고, 카페도 하고, 반응 없는 유튜브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브런치도 써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리뷰도 써야 한다. 이따금 회사 일로 카톡이 오면 그것도 처리해야 한다. SNS가 대중화되면서 퇴근해도 퇴근이 아닌 상황이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가끔은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고민 끝에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과연 그 선택이 맞았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하는 일은 행복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정도 받고 그 인정의 가치만큼 소득을 얻고 싶다. 편안한 길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원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원하는 만큼의 가치와 현재 상황의 괴리를 좁히기란 실제론 쉽지 않아서 힘이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대부분 동안은 행복하다. 채워지지 않은 작은 조각만 맞출 수 있다면 나의 남은 시간은 100% 행복할 것이다. 성원해 주시라!


roman-4436335_1920.jpg 혼자서 작업을 한다는 건 투기장에서 홀로 살아남고자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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