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때는 갑이었거든요?>

프롤로그 : 관계보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라.

by 마인드 오프너

나는 갑이었다. 취준생들이 ‘신의 직장’이라고 부러워하는 공사가 첫 직장이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나보다 더 기뻐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들어간 후에도 처음에는 다른 직장보다 ‘좋다, 나쁘다’의 개념조차 없었다. 다른 직장을 다녀 봤어야 비교를 하지.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괜찮은 직장이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갑’과 ‘을’의 구별은 상대를 전제로 한다. 계약이나 공모, 하청 등 이권이 걸린 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갑’이라는 인식은 외부업체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란다. 해야 할 일과 상사의 지시사항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업무 범위가 확장되고 회사 밖의 사람들이 만나는 일이 늘어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회사의 위치가 사람의 위치를 정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위계의 장벽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평소에는 못 느끼지만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것들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경험 많은 선배들과 상사들은 업무 과정에서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지나가는 말 몇 마디나, 안색의 변화로도 상대방에게 원하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다. 사내에서는 그렇게 일하는 직원을 ‘일 잘한다’고 평가했다. 부서 내, 회사 내 동료와 상사들이 일하는 방식은 후임들에게 자연스럽게 계승된다. 늘 보고 하는 일이니 당연하게 생각한다.

갑질의 이유는 많다. 가장 흔한 이유는 예산 절감, 효율성, 상사의 지시사항이다. 마법사의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을에게는 변명의 여지 없다. ‘주님’의 비위를 상하지 않기 위해 ‘을’들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면 대부분 받아들인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갑일 때는 프로페셔널로서의 의식이 없었다. 출근 시간이 되면 회사 가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집에 오는 행동을 반복했다. 사람이 숨을 쉬듯, 배고프면 식사를 하듯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 헤엄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수많은 을들과 달리 시키는 일만 해도 절대 망하지 않는 갑들만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사치였다.

하지만 행복한 가운데에도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이대로 사는 게 맞는 걸까?)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운 나쁘면(?) 100세 이상을 살 수 있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이대로 살다가 정년퇴직을 한 후에는 어떻게 살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회사 밖에서 경쟁력이 탁월한 존재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주변의 누구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가만히 있으면 아무 부담없이 50대 후반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에서 쓸데없는 고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민을 가속화시킨 요인은 또 있었다. 내가 재미있게 하는 일에 대한 회사의 평가가 낮았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돈만 쓰는 일이라는 게 이유였다. 민간 회사와 달리 상품이나 서비스를 알리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찾아오는 사업 구조 때문에 경영진은 마케팅이나 홍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래를 생각하면 핵심 부서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 일은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핵심부서로 옮겨서 경력과 경험을 쌓은 후 독립을 했다면 다른 분야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민은 6년이 되는 해에 끝났다. 스스로 을이 되기로 결심하고 퇴사했다. 취준생에서 직장인이 된 지 2,190일만의 일이었다.




회사를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초기에 위기가 있었지만 독하게 매달린 끝에 고비를 넘겼다. 을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지옥도’라는 세간의 평가보다는 쉬웠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개인이 헤쳐나가기에는 어려웠다(진짜 지옥도는 직장인이 아니라 사업가의 눈앞에만 펼쳐진다는 사실을 훨씬 나중에 혹독하게 경험했다.)

을이 되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일에만 매달릴 수 있어서 전문성을 키워나가기 쉽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일뿐만 아니라 사내 정치와 인맥 쌓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승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을은 규모가 작다. 규모가 작을수록 인맥이니, 줄을 대느니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클라이언트에게도 99%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실력이 있고, 열정이 있는 개인이라면 갑보다는 을이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나쁜 점은 멍청하거나, 고지식하거나, 일에 관심이 없거나, 갑질을 당연하게 여기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악성 갑을 만날 경우는 10% 미만의 확률이다. 무식한데다 열심인 갑은 대안이 없다. 프로젝트를 마칠 때까지 멘탈을 챙기면서 버텨야 한다. 멘탈이 약한 직원의 경우 일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끼고 퇴사를 감행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는.




나이를 먹으니 좋은 점도 있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떨어지지만 습득한 지식과 경험에 대해 다양하게,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는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의견을 바꾸거나, 아예 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갑과 을에 대한 선입견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갑’은 무조건 좋고 ‘을’은 무조건 안 좋다는 생각은 선입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입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개선의 여지는 사라진다. 정작 중요한 건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생각의 중심을 나로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내 능력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갈아서 빛내야 한다. 스스로 빛날 수 있다면 을이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많은 갑이 함께 일해달라고 간청하는 을들도 있다. 국내 홍보계에서 전설이 된 한 경영자는 회사가 안정기에 들어서자 입찰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수많은 갑들이 제발 입찰에 참가해달라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관계에만 집중해서 일과 직장을 선택하면 가장 중요한 본인의 행복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나중에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깨닫고 진로를 변경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슬로건은 언제나 진리임을 잊지 말자.




취준생들이 신의 직장을 선호하고 입사하려는 트렌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이러한 구분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토록 간절하게 되고 싶었던 공무원이 되고 나서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둔 사례들을 이야기하는 전직 공무원들도 있다. “바보 아냐?”, “그렇게 되고 싶은 공무원이 되고 왜 그만두는데?”라는 질문만 던지기보다 그들이 왜 천직이라고 생각한 그 일을 그만두었는지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세상을 갑과 을로서 경험한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칼로 무를 자르듯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다. A라고 생각했던 곳이 B나 Z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세상을 좀더 넓게 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갑과 을은 유동적인 관계다.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영원한 갑은 없다. 여기서 갑은 저기서는 을이 될 수 있고 병이나 정도 될 수 있다. 갑이라고 해서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을이라고 해서 늘 불행하지만은 않다.

관계에 매몰되는 순간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발목에 쇠사슬을 찬 코끼리가 되어 마당만 맴돌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마음먹은 대로 성장할 수 있고,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다.




내 글을 통해서 본인이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크게 울림은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쓴 글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겠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당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판단해야 한다. 당신의 인생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 자신의 것이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행복하게 즐겁게 인생을 만끽하길. 선입견과 관계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