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1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는 방법
“갑에서 스스로 을이 되었다”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상하다. 갑에서 을이 된 게 그렇게 이상한가? 따지고 보면 공사가 여타의 대단한 회사들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다. 조금만 찾아봐도 더 좋은 직장들이 널렸다.
그런 질문을 받으려면 최고 학부를 거쳐서 힘들게 의사가 된 후 일과 자신의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다시 대학을 가서 30대가 넘어서 남들이 보기엔 좀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실제로 있는 사례다.)
대부분의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쓴다. 상품을 홍보하고, 광고하고, 팔기 위한 글이다. 학창 시절에 백일장 입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글을 쓰는 일로 먹고 살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의뢰인들로부터 글 못 써서 계약 안 한다는 말은 듣지 않았으니 맡은 일을 꽤 잘 해 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직을 하면서 나의 주업무가 글쓰기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초기에 위기를 겪어야 했지만 잘 극복한 후로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엔돌핀이 넘친다. 얼마 전에 올린 프롤로그에 달린 댓글을 읽어보니 다음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독자와의 소통은 귀중하고도 잊을 수 없는 자산이다. 작은 소원이 있다면 인구 50만 정도 되는 도시에서 서점을 열고, 낮이나 밤이나 책만 읽으면서 글을 쓰고 그 도시의 독서가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그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러자면 더 늙기 전에 지금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제발 이 글 대박나게 많이 읽어 보고 댓글 달아 주시라.
글을 쓰는 동안 유일하게 괴로운 순간은 글이 나가지 않을 때다. 경험 상 그때는 쓰는 것을 멈춰야 한다. 전업작가들의 엄청난 괴로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감이 정해 있을 때에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글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화장실에서 혹은 지하철 안에서, 걸어가는 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라 문제를 해결한다. 이맛에 글쓰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글이나 기획을 하는 프리랜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글 쓰는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다. 언젠가 자신의 글을 써서 책으로 내고 싶어 한다. 인터뷰나 취재를 하고, 영화나 만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건 결국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즐겁기는 해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나 역시 그렇다. 몇 년 전에 야심차게 추리소설을 써서 플랫폼에 올려 보았는데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그나마 위안이 된건 내 작품을 읽은 독자가 남겨준 댓글이었다. “수준은 있는데 많이 재미있지는 않다.”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하지만 앞으로도 내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아하지 않은 일을 선택한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물론 인생이란 묘해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늘 행복할 수는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에서 얻는 만족감을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대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 능력 부족에 대한 절망, 더 높은 단계를 위한 도전 등이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을 잘 지나가려면 멘탈을 잘 제어하는 건 필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쉽다. 일을 선택한 후의 기대 이익을 포기하면 된다. 잘하는 일을 하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조차 알기 힘들다. 예체능계의 경우에는 비교적 잘하는 일을 발견하기 쉽다. 가창력이 좋다거나, 악기를 잘 연주한다거나, 안무를 잘 짠다거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식으로 해당 분야에서 강점이 될 수 있는 특징이 명확하다. 그래서 박찬호나 김연아처럼 몸 쓰는 일에 재능 있는 이들을 보면 부럽다. 일을 선택할 때 고민이 없고, 그 재능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흉내낼 수 없는 고수입을 올리기에 그렇다.
일반인들은 기껏해야 글을 좀 잘 쓴다거나, 손재주가 좋다거나, 숫자 감각이 탁월하다거나, 인간 관계가 좋다는 식으로 잘하는 일을 찾는다. 비교 대상이 불분명하고 판단 기준이 주관적인 경우가 많아서 ‘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애매할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잘하는 일’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더 독하게 노력해서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자동차 명장’으로 유명한 박병일 씨는 잘하는 일이란 발견한 게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라는 나의 주장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세상에 ‘자동차 수리를 남보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이란 없다. 박병일 씨는 원래 화가가 꿈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14살부터 버스 정비를 시작했다. 기술 전수를 꺼리는 선배들의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웠고, 잠 깨는 약을 먹으며 정비 공부를 했다. 새로운 자동차 시스템이 나오면 사비로 학원에 등록하고 외국 단기 연수를 다녀오며 업그레이드를 했다. 다른 공업사에서는 고치지 못하는 차도 고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유명세를 탔다. 원래 잘한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도록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결과 남들보다 잘한다는 평가를 얻은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일을 하는데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열심히 책을 읽고 죽어라 쓴 덕분이다. 이따금 만나는 프리랜서 작가들 중에는 소설, 희곡, 시 등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선수들도 있다. 그들을 만나면 내심 기가 죽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처럼 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노력한다 한들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훈과 같은 소설가나 안도현과 같은 시인들처럼 쓸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태어날 때부터 문재(文才)를 가진 자들만 들어설 수 있는 천외지경이다.
다행히 나는 소설이나 시를 쓸 필요가 없다. 논리적인 글, 팔리는 글만 쓰면 된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유시민 작가의 말을 전적으로 신봉한다. 그는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내면서 “소설이나 시는 아무나 쓸 수 없지만 논리적인 글은 누구나 노력만 하면 잘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잘하는 일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말기 바란다. 일단 해 보는 게 중요하다. 젊은 시절에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본인이 좋아하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머지않아 남들보다 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다 싫어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쓰레기 청소, 정화조 청소, 소방관, 응급실 의사 등이 그 범주에 들 것이다.
오래 전 TV에서 직업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던 중에 고물상 사장님 사례를 보았다. 취재기자가 만난 고물상 사장님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역할에 대한 생각이 누구보다도 확고했다. 고물상을 운영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나 자괴감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 돈은 자동으로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물상을 창업했다고 했다. 그의 예상대로 그 당시에는 고물상이 경쟁자가 거의 없는 블루오션이었다. 그 사장님은 돈을 많이 벌어서 건물까지 샀다고 했다. 그때 이후로 고물상이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지 지금은 고물상이 많이 생겨서 예전보다는 타산이 안 맞는다고 들었다.
반드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이타적인 생각으로 해야만 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불과 몇 분 후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이 그렇고, 국내 최고의 외상 전문가인 이국종 교수 같은 의사들이 그렇다.
이기적인 내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생기는 것 없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존경하고 내심으로 성원을 보낼 뿐이다.
남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지만 돈은 벌고 싶다면 사회에서 천대하고 기피하는 일을 찾아보는 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돈보다 사회와 이웃에게 봉사하면서 보람찬 인생을 살고 싶다면 역시 해야만 하는 일을 찾는 게 좋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중에서 가장 ‘갑을 관계’에서 자유로운 일은 어떤 것일까?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적성마저 뒷받침되면 잘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답이 중복될 수도 있지만, 갑을 관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우는 ‘잘하는 일’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에서건 남들보다 특출나게 잘하면 을의 지위에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갑의 위치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프로 스포츠 선수라면 계약이 끝나기 전부터 모든 구단이 당신과 계약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을 것이며, 남들보다 몇십 배의 성과를 올리는 영업사원이라면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가 당신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여러 모로 줄을 대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일을 잘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잘하지 못하면 늘 갑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기회조차 박탈당할 수 있다. 개인이든, 회사이든 규모가 크든 작든 중요하지 않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실력이 늘지 않는다면 진로 변경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했는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대가조차 받기 힘들다면 그 일이 싫어지게 되어 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일하면서 보내는 입장에서 이왕이면 칭찬받고 돈도 버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글 쓰는 일은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권하기 좋은 직업이 아니다. 등단을 하더라도 글 쓰는 일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서 대부분 등단 작가들이 생업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능력 있는 극소수의 인기 작가들만 글 쓰기로 살아갈 수 있다.
좋아하기에 이 일을 선택했으니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내 과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다른 방면으로도 부지런히 촉수를 뻗어서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는 성과가 별로 없어서 속상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퇴장하면 멋있을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 인생이 영화와 다르다는 건 알만한 나이기에 최선을 다해서 인정받고 싶고, 그걸 발판으로 다음 글을 써나가는 에너지를 얻고 싶다. 수많은 갑이 일을 같이 하자고 요청하는 을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서 이 일을 하게 될 후배들에게 이렇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이 일을 하면 잘 살 수 있고, 다른 직업을 가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열심히 해야 할 일만 하도록 해.”
그게 이 일을 하는 한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