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2 ; 뱀 머리가 용 꼬리보다 좋은 이유
동년배나 후배들 중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론을 꼭 ‘인생 뭐 있냐?’로 끝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뒤로 하고 세상 편하게 살자는 거다. 돈 벌고 성공해 봤자 다들 밥 먹고, 결혼하고, 나이 들어 죽는 게 비슷한데 왜 그렇게 아웅다웅 사느냐는 거다. 뭐, 인생을 거시적으로 크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비슷한 것 같은 인생을 내게 맞게 살아가려는 방법을 찾는 노력 자체가 ‘인생에 뭐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 아닐까? 다들 똑같이 살아가는 것 같은 인생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노력 여하에 따라 만족도의 차이가 꽤나 큰 경우도 많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인생’에서도 궁리만 잘하면 얼마든지 별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내게 ‘인생 뭐 있냐’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는 달리 ‘별거 아닌 인생’ 때문에 피곤해지는 상황이 많았다.
인생의 상당 시간을 보낼 직장을 구하는 과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 인생에 대한 분석과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고민이 생략된 채 남들을 따라가면 ‘별거 없는 인생’을 살 확률이 거의 100%다. 저마다 잘하는 게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른데 편하고 평생 다닐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건 이상해도 심각하게 이상한 거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다양한 의뢰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갑, 나는 을이다. 갑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근무 환경과 미래에 대해 매우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장 내년도 어떻게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의 지위와 본인의 사회적 위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이들은 본인들의 역량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돈, 회사의 브랜드에 힘입어서 일을 쉽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정작 중요한 건 본인의 능력인데 말이다.
이들은 회사에서 영원히 머물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인지 일에 대해 크게 고민하는 기색이 없다. 이따금 무례하고, 무리한 일을 시키는 사람들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 다시 만나봐도 변한 게 거의 없다. 같은 자리에 있는 직장인이 시간이 지났는데도 개선이 없었다면 퇴보한 것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뒤로 가고 있다? 이들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뻔하다.
회사는 잠깐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자세가 다르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상사의 눈치를 보기보다 생각한 대로 일을 끝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긴다. 커리어의 종착역이 그곳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머지않아 회사를 떠난다. 상사나 동료들, 회사가 본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기에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 간혹 이런 의뢰인을 만나 일하면 기분도 좋고 자극도 된다.
최악의 경우는 일에 의욕이 없는 사람들이다. “시간은 가라, 나는 월급만 타면 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는 이들이다. 무능력과 나태함으로 회사는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민폐를 끼치는 존재들이다. 개인적으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중소기업의 홈페이지 제작에 참여하게 되어 만난 과장이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담당자였음에도 회사 홈페이지 제작에 관심도 없고, 의욕도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기색을 내비쳐서 내가 더 민망할 정도였다.
그보다 더 놀란 건 그 과장을 채근해서 일을 진행시켜야 할 이사가 “우리 과장이 다른 일이 바빠서 할 여유가 없다”며 제 식구 편들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일을 진행하라고 해놓고 일을 안 하려는 사람을 담당이라고 앉혀 놓으면 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결국 그 일은 1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홈페이지 제작사도 지쳤는지 그때까지 일한 것만 정산하고 마무리하자는 식으로 끝났다. 그 회사의 홈페이지는 무능과 나태의 영향으로 미처 열지도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고 말았다.
스티브 잡스나 제프 베조스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평범한 직장인의 인생을 그린다. 그 상황에서 대다수 취준생들의 지향점은 많은 연봉과 편안한 직장이다. 두 가지를 해주려면 상위 20% 내에 드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정도 되어야 가능하다. 이들은 ‘용’이라 할 수 있다.
용의 일원이 되었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용의 등에 타는 순간 치열한 경쟁은 시작된다. 좋은 직장일수록 남아있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성과를 내야 한다. 살벌한 경쟁 끝에 운과 능력을 다 갖춘 극소수(1%가 채 안되는)만이 용의 머리까지 올라가서 여의주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내가 만난 용의 일원들은 많은 연봉을 받아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많은 연봉을 주는 회사는 그 연봉의 몇 배 이상 성과를 기대한다. 성과 경쟁은 회사 내부는 물론 외부의 다른 회사들과도 치열하다. 내가 그런 회사들에 다니고 있었다면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잘 살았을까 자문해 볼 때가 있다.
이따금 저녁에 여의도를 지난다. 밤 늦은 시각인데도 여의도를 상징하는 건물인 LG 트윈빌딩과 전경련 빌딩은 항상 늦은 시각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매번 그랬다. 휴일에도 밤 9시를 넘어서 건물을 나서는 직장인들이 있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힘없이 택시를 잡는 사람들을 보며 과연 지금 생활에 행복해하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좋은 직장에서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사무실을 밝히고 있는 불빛들은 소리 없이 말하는 것 같았다.
중소기업과 소기업은 대기업과 상대적으로 연봉이나 복지 차이가 있다. 이 부분만 감수한다면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더 나은 삶의 방향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과 소기업은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 등 한 분야에 집중하기에 노력 여하에 따라 10년 내외 경력이면 독립 가능하다.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자면 일도 훨씬 즐겁다. 본인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고른 회사라면 소득이 적어도 즐겁게 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들을 통해 돈이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최근에는 SNS와 유튜브가 많은 뱀 머리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한 분야에서 일을 오래 한 전문가들에게 유튜브는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화려하게 펼칠 수 있는 무대나 다름없다.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까다로운 문제를 쉽게 해결해주는 정보들은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영국의 배관공인 콜린 퍼즈는 배관공 시절 익힌 기술로 독특한 제작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린 결과 1,40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인기 유튜버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국내에서도 배관공, 전기공 출신인 유튜버들이 일상의 소소한 생활 정보들을 올린 것만으로도 몇십 만 구독자를 확보한 경우가 적지 않다. 대기업에서 여러 부서를 순환하며 일한 경험과 지식으로 이렇게 구독자를 모을 수 있을까?
AI 시대를 맞이하는 올바른 선택?
AI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엄청난 변화를 인류에게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까지 개발된 AI의 성능만 봐도 일과 직업을 고르는 선택 기준을 재정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의사보다 AI 의사 윌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글을 쓰고, 곡을 쓰며, 간단한 신문기사도 알아서 작성하는 AI가 등장했다.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분야까지 AI의 침범은 거침없다.
AI 시대에는 가장 갑이라고 생각하는 대기업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가장 빨리 경쟁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이들 시스템은 쉽게 AI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손을 쓰고, 기술을 사용하고, 적은 인원이 다양한 일을 해야 하는 소기업, 1인 기업, 중소기업은 오히려 AI의 권역에서 벗어나 있다.
과거에 가장 괄시받던 일이 환경이 변하면서 시대의 총아가 된 경우는 적지 않다. 한 세대 전 의사 지망생들에게 가장 외면당하던 정신과의 경우를 보라.
많은 현대인들이 공황장애,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병에 시달리면서 유명한 공황장애 전문의는 청담동에 호텔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사무실을 꾸며놓고 엄청나게 비싼 상담료를 받으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그 의사는 동기생들 중에 성적이 최하위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대기업(갑)은 좋고 소기업(을)은 나쁘다는 선입견은 언젠가 사라질 시한부 개념일 수 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눈치를 보지 말고 ‘나’를 기준으로 일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나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에는 투자를 생략한 채 몇 년 후 ‘이건 내가 생각한 미래가 아니었네’라고 불만을 토로해봤자 결과는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인생은 다채로운 만화경과 같다. 아직 비어 있는 면들을 채울 방법을 찾는 책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일을 제대로 선택하기만 해도 당신의 인생 중 1/3은 이미 충실해진 셈이다. 직업과 일을 선택하는 데 더 고민하고, 생각하는 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최대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다. 최소한 연봉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내일을 고민하는 일상은 맞이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