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Ready, Player One>은 가상현실 게임화 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게임 머니로 물건을 사면 집으로 배달이 오고, 고통까지 느낄 수 있는 감각 슈트나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자신의 캐릭터까지 무엇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아무리 현실 같은 게임이더라도 게임은 게임일 뿐. 이 작품은 현실을 다시 마주할 때의 공허함이나 혼란스러움 같은, 게임의 여러 영향력을 묘사함과 더불어, 여러 영화의 세계관을 게임의 무대에 녹여 영화계에 대한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찬사를 받을만한 영화가 되었다.
요즘,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차용해 또 다른 미디어로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잦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웹툰, 웹소설을 들 수 있다.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전지적 독자 시점>을 시작으로 <내가 키운 S급들>, <나 혼자 만렙 뉴비> 등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상태창', '퀘스트와 보상', 'NPC' 같은 게임 인터페이스를 세계관에 녹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주로 주인공은 게임 세계관이 시작되기 전, 평범 혹은 사회적 약자, 부적응자로 묘사되어, 무시받는 존재에서 게임 세계관의 비밀을 유일하게 미리 알고 있거나, 세상의 위기를 유일하게 극복할 수 있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주인공은 빈민촌에서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하고 그 어머니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다. 게임 세상은 그에게 현실 도피처와 같은 곳으로 주인공 특유의 너드(Nerd) 같은 성격을 발휘해 게임의 이스터에그나 비밀을 밝혀 내면서 악당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영웅이 된다.
우리는 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는가? 인간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한계에 부딪히고, 무시받고, 억울함을 느끼고, 또 그것을 극복하면서 스스로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만약 이곳에서 무시받던 내가 누군가에겐 영웅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러한 상상은 자기만족, 충족의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이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제하고도, 게임 형태를 취하는 작품이 어떻게 엄청난 몰입감을 주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웹툰과 영화는 독자, 관객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는데,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는커녕, 어찌 생각해 보면 몰입을 방해할만한 게임요소의 차용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원격 현전'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원격 현전이란 실제로 그곳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렇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가상현실(VR)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고글 장치를 끼고 양손에 조이콘 같은 장치를 든 채 가상현실 속 낭떠러지를 걷는 플레이어를 상상해 보자. 실제로 그는 VR 체험을 위한 방 안, 평평한 바닥에 서 있지만, 누군가 그를 살짝 밀어 가상현실 속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면, 실제 세상 속 그는 바닥에 주저앉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정말 저 밑으로 떨어져, 실제로 다친 것처럼 느끼고,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이것이 원격에서도 현전감(Presense)을 느낀다는 원격 현전의 개념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게임 속 세상을 진짜처럼 여기는 것도, 그 게임 속 세상을 표현하는 영화를 보며 몰입하게 되는 관객인 우리도 모두 원격 현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이러한 플롯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게임의 윤리'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현실 세계만큼이나 게임은 제 나름의 '윤리성'을 요구한다. 여러 기사는 게임이 빈번히 도덕성을 결여시키고 인간을 공격적이게 만드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이 '게임이 윤리적이지 않다'라는 명제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엄격한 규칙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욕이나 차별적이고 혐오를 표현하는 단어를 채팅창에 쓸 수도 없다. 현실에서 아무리 '그런 말은 쓰지도 마!'라고 경고하더라도 지켜질 리 없는 것과 다르게, 게임은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또, 미션을 수행했다면 약속한 보상을 받게 된다. 상과 벌이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게임 속 사람 대 사람의 소통이 아니라면) 대개 프로그래밍된 게임 전개가 사기를 칠 일도 없다. 이런 면을 고려할 때, 게임의 윤리라는 것은 아주 독특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약속을 지키는 세상, 사기를 당할리 없는 세상이라면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 특징은 주인공의 성장을 게임 인터페이스가 방해할리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마음 놓고 이야기에 몰입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필수요소인 갈등이나 위기는 어려운 퀘스트로 대체하고, 혹은 갈등 상황을 위해 예외가 적용되는 인간 플레이어 간의 상황을 제시할 수도 있다. 가상현실은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 간의 흥미로운 관계성이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에 작가, 감독, 대중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흔히 '이스터 에그'라고 불리는 작품 속 자잘한 재미요소를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수백 개는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시리즈 속 등장인물부터 특정 작품의 세계관, 게임, 만화와 같은 다양한 대중문화 텍스트를 반영해 엄청난 양의 이스터 에그를 포함하고 있다. 만약 시네필, 혹은 대중문화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숨어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한 문화의 역사를 읽어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이해, 더 재미있는 영화 관람을 위해 꼭 알아두면 좋을 작품 속 이스터 에그(?)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미래를 예언한 영화'와 같은 거창한 별명과 함께 그 이름에 걸맞은 엄청난 상상력을 반영한 작품이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많은 모티프를 차용했다. 예를 들면 영화 속 주요 오브제들: 자동차, 게임 아이템 등을 <백 투 더 퓨처>와 연관 짓고, 해당 영화의 배경음악을 차용하고 있다. 브라운 박사가 장면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등 해당 작품에 대한 노골적인 존경을 드러내고 있다.
2. 샤이닝(Shining)
나는 이 작품의 백미 중 하나를 샤이닝의 장면을 오마주한 두 번째 열쇠 퀘스트로 들고 싶은데, 아주 오랜만에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샤이닝을 무조건 보고 이 영화를 봐야 한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중요한 장면이다. 샤이닝의 많은 시퀀스가 그대로 재현되어 <샤이닝>을 본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3. 킹콩(King Kong)
<사탄의 인형(Child's Play)>의 '처키'처럼 짧게 지나간 오마주도 있는 반면 '초반 레이스의 보스'라는 큰 역할을 맡은 텍스트도 있다. 킹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첫 번째 열쇠 퀘스트의 최종 보스 격이자 주인공을 빈번히 미션 실패로 이끄는 인물로서, 초반 스토리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스포일러 방지차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는 유명한 장면이 그대로 등장하기도 하고, 색다른 각도에서 <킹콩>을 바라볼 수도 있다.
4. 기동전사 건담(Gundam Series)
극 중 일본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다이토가 '고질라'와 맞서 싸우기 위해 건담으로 변신하는 장면에서 건담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파워레인저의 변신에 열광하던 어린 자신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을 잊고 살던 성인 관객을 아이의 마음으로 되돌릴만한 향수를 부르는 영화, 게임, 시리즈 등의 텍스트를 적절히 활용하여 굉장한 몰입감과 만족감을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