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새록

1부

by 글쟁이 오리


새록은 소파 위에 박쥐처럼 거꾸로 누워 낡은 스웨이드 소파의 결을 따라 손톱으로 선을 찍찍 긋고 있었다. 살을 뜯는 버릇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낯설던 어린 시절부터 세상 모든 것이 무서운 지금까지, 새록은 검지를 둥글게 말면 만나는 엄지손가락의 보드라운 살을 뜯어내는 버릇이 있었다.

인간 피부가 몇 겹이었더라.

그런 생각이 들 때쯤 검지는 알아서 적당히, 알아서 조금은 아프게 살을 한 꺼풀 벗겨냈다. 불안도 한 꺼풀. 두려움도 한 꺼풀. 어떤 마음도 한 꺼풀. 다른 살보다 붉은빛을 띠는 부분이 아주 오래도록 벗겨지고 재생되었을 것이라는 건 처음 보는 사람도 알 수 있었다.


살짝 벌어진 암막 커튼 사이로 빛줄기가 들어온다. 아침이구나. 아니 낮인가. 머리에 피가 몰려 몸을 일으키자, 머리에서 가슴으로 피가 몰리듯 먹먹하고 갑갑해져 숨을 아주 깊게 들이쉬었다. 뱉는 숨에 몸을 이루는 원자 하나하나가 공기 중으로, 저 먼 우주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등받이를 베개 삼아 엎드려 손톱으로 소파를 슬슬 긁었다. 짙게 긁힌 소파에 가늘게 뻗은 빛줄기 위로 왼손을 가져다 대기로 한다. 약해진 빛이 손을 감싼다. 가장 짧은 손가락을 위로 살짝 들면 빛이 손의 굴곡을 따라 부드럽게 휘었다. 그다음은 약지, 중지…. 빛줄기가 엄지에 닿자 왠지 따끔하다.


대체로 죽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살고 싶지 않다. 특히 이런 아침에는 더욱. 아, 어쩌면 낮일 수도. 스물다섯의 새록은 열일곱의 새록을 떠올렸다. 어린 새록은 우울한 새벽녘의 자신을 안쓰러워했다. 스물다섯의 새록은, 과거가 되어버린 오늘의 일과, 알 수 없는 미래의 일로 눈물을 흘렸던 그런 새록을 사실 좋아한다. 살짝 부은 눈을 보고 걱정스러워하는 엄마의 눈동자와 친구들의 입술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리워한다. 그런 우울이라면 종일이라도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천장이 무너져내려 아프지 않게 소리 없이 사라졌으면 하는 상상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무너져 내린 천장을 고칠 집주인과 나를 잔해에서 건져 올릴 누군가를 떠올리며 긴 숨을 뱉었다. 아주 빠르게 굴러서 벽에 머리를 박는다면? 생각보다 아프려나. 한 번에 죽지 않을지도. 또, 엄마처럼 죽는 방법, 친구처럼 죽는 방법, 색다르게 죽는 방법이 대여섯 개는 더 떠올랐지만, 용기가 없어 더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새록은 자신이 떠올리는 것이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것마저 없으면 이 세상에서 나를 토닥여 줄 이가 없으니까.

새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