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센터에 새로운 사람이 와 있었다. 덩치가 크고 밤톨같이 짧게 깎은 머리에 야구 모자를 쓴 남자.
‘군인인가.’
밤톨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센터장님께 짧은 눈인사를 건네고 손을 씻는 중에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사진 촬영 동의는 학부모님들께 다 받아놨고요. 다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좋아하셨어요. 저희가 선생님께 바라는 건 하나예요. 오랜 기간 아이들과 함께해 주시는 것.”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센터의 아이들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새로운 봉사자 선생님과 만나고 또 헤어져요. 아이들이다 보니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해도 금세 정이 들어서 헤어질 때가 되면 우울해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럼 쉽게 마음을 열지 않기도 하겠네요.”
“네, 맞아요. 그래도 아이들만큼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답니다. 선생님께선 금방 친해지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제안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에 나는 손을 말리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란 세면대 끝에서 손을 씻으며 그가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강휘오라고 합니다.”
“윤새록이에요.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라고 할 때 새록….”
지완이 나를 기억해 주었던 방식으로 소개를 하고 나니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가 내 표정을 보고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내 표정이 이상했나. 오랜만에 웃어서 이상했을지도. 이름 하나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다니. 역시 이상했을 거야.
이런 내 걱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그가 바로 말을 덧붙였다.
“와- 사람들이 새록씨 이름은 절대 안 까먹겠어요. 너무 좋은데요? 나도 하나 만들어 볼까….”
또다, 또. 안 그러겠다 다짐해도 자꾸만 부정적으로. 이 사람은 전혀 비웃을 의도가 없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내가 또 안 좋은 표정을 지어서 상황을 무마하려 저렇게 말한 건 아닐까.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러나 실존하지 않는 소리를 떨쳐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사진… 찍으러 오셨나 봐요.”
“네, 사진전을 준비 중인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제일 도움을 줄 것 같아서요.”
“아, 사진작가시구나. 멋지네요.”
“에이, 아니에요. 전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새록씨가 더 대단한데요. 봉사하신 지 오래되셨다면서요.”
“오래는 아니에요. 2년 정도….”
아무리 생각해도 밤톨 남자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이으려다 겸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관두기로 했다.
“2년 정도니까, 생각해 보니 꽤 오래 했네요, 저.”
“그러니까요. 대단하세요. 아, 저는 사진 찍으러 오긴 했지만, 다른 봉사자 선생님들 하시는 일 똑같이 맡겨주세요. 어차피 한 몇 달은 아이들이랑 친해지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그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런 미소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청소를 시작했다. 그는 익숙하게 먼지를 쓰는 나를 뒤따르다, 뻘쭘한 듯 책장의 책과 보드게임을 정리했다. 힐끔 날 보며 무언가 도울 게 없는지 고민하는 표정이 조금은 웃겼다. 그가 정리된 책장을 약간 멀리 떨어져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우신가 봐요.”
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괜히 창밖을 쳐다봤다.
“애들은 보통 언제 오나요?”
“학교 끝나고 바로 오니까, 이르면 1시쯤에 와요.”
“음, 그렇군요.”
그가 헛기침을 한두 번 하고 마저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얼굴에 비쳐서 옅게 미소 띤 그의 얼굴의 보조개가 더 깊어 보였다. 눈도 맑다. 밝은 갈색.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게 이런 건가. 붙임성도 좋고, 밝고, 무엇보다… 웃는 게 예쁘다.
“학창 시절에 인기 많았죠?”
그가 내 말에 흠칫 놀라며 날 바라보더니 다시금 눈을 돌리고 대답했다.
“음… 절 모르는 사람이 없긴 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건 아닐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한 번 얘기해 봤어요.”
나는 변명했다. 아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진실을 말했다고 해야 하나.
“그쪽도 웃는 모습 보기 좋아요.”
갑자기 얼굴이 화악 뜨거워져서 더 볕이 드는 쪽으로 얼굴을 살짝 틀었다. 안 들키도록.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이 오네요. 간식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가 네엡- 하고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뒤따랐다. 이 사람, 날 놀리고 있다. 밤톨 같은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