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모금: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비행합시다, 낮이든 밤이든.
과학자들이 흔히 던지는 위로는 우주적 관점에 기반한다. 끝없는 우주에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관점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꾸어 우리 삶을 내려다보는 순간, 같은 현실이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우리가 있었던 곳을 내려다볼 때 또한 비슷한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곳이 이토록 작았다니. 저 작은 세계 속에 사는 나는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일종의 허무함이 몰려오기도, 스스로가 너무도 무용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이내 곧, 인간 존재가 그리고 우리의 삶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자. 그럼 우리는 아주 특별한 우주먼지가 된다. 참회하는 우주먼지, 고뇌하는 우주먼지, 사유하는 우주먼지, 모험하는 우주먼지…. 따라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시대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자기 성찰을 택한 시인 윤동주는 별을 헤며 어머니와 이웃을 떠올렸다.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비행기 조종사로서 하늘을 날며 수없이 사유해 왔다. 인간에 대해 생각했고, 지구에 대해 생각했고, 먼 우주를 위해서도 명상했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봤던 인간은 언제나 하늘과 바람과 별을 생각했다. 인간답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태양과 같은 코로나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반짝이는 우주먼지들을 동경해 왔다.
서점은 이토록 탁월한 우주먼지들이 남긴 유산을 모아놓은 곳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것을 교양 있는 우주먼지라면 놓칠 수 없다. 서점 한구석, 얇은 책장에 꽂힌 얇은 책이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추락하는 듯한 비행기. 그 아래 쓰인 이름을 난 알고 있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vol은 비행, nuit는 밤. 그렇게 제목의 의미를 알아갈 때쯤, 한글로 된 제목이 나를 반겼다. 야간 비행. 그 안에 낭만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밤은 침잠하는 때이며, 비행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니까.
야간 비행은 생텍쥐페리가 조종사로 일하던 당시 너무도 모험적이고 위험한 일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우주 비행과 같으려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밤은 부패한 것이었고 지상은 생동하는 것이었다.
밤은 아름답지만 언제든지 망쳐질 수 있었다.
그는 부패의 기운이 감도는 어둠 속으로 들어서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조종사 파비앵은 우편기를 몰고 어두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밤하늘을 오간다. 계기판의 바늘에 희미한 형광빛이 감돌 때, 인간의 삶을 부드럽게 하는 모든 것들은 한 줌의 빛이 되고, 곧이어 하나의 별로, 마침내 먼지로 흩어지며 그를 유혹한다. 그럼에도 그에게 야간 비행이란 포근하고 아름다운 항구로 들어서는 것과도 같다. 항공기의 떨리는 금속이 인간의 살갗같이 느껴지기도, 따라서 살아 있는 육체의 신비를 비행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조종사 펠르랭은 비행기가 착륙한 후에도 한참을 꼼짝하지 않는다. 그의 귀 속엔 여전히 태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것들에서 손에 잡히는 것으로의 변화에 천천히 엄숙하게 익숙해지는 중이다.
그는 사람들의 수를 세고 평가하고 가늠하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이 사람들과 축제의 장소 같은 이 격납고와 이 단단한 시멘트를, 저 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시와 그곳의 여인들과 열기를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흰 눈과 산봉우리, 능선이 날카로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거대한 암석을 만난 선장처럼,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은 맞서 싸울 것이 없는데도 알 수 없는 것과 싸워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고요함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을 밤이라는 파도 위에서 지속해야 했다.
한편, 조종사들의 영원과도 같은 지상엔 그들만의 야간 비행이 있다. 항로의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세 대의 우편기가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는 굉장히 무거운 짐을 든 것만 같다.
시시각각 전보가 도착할 때마다 그는 운명으로부터 무언가를 떼어 내어 미지의 몫을 줄이고, 자신의 승무원들을 어둠으로부터 해변까지 무사히 이끌어 온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 왔으며, 그 안에는 조종사들에게 건네는 위로나 우정도 들어있다. 그는 조종사의 우울을 알고, 그의 가족들이 밤마다 잠 못 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능력에 대해 평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엄격하게 규칙을 지키는 것뿐이다.
저 사람들은 행복해. 자기들이 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들은 내가 엄격하기 때문에 그 일을 좋아하는 거야.
조종사들이 우정 때문에 명령을 따른다면, 그건 우정을 빌미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아닌가? 그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그들을 보내고 맞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던' 1942년, 조선의 한 젊은 청년처럼, 리비에르에게 야간 비행은 '참회록'에 가깝다.
이 글의 후반부는 다시금 인간의 무용함을 떠올리게 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폭풍이 이는 하늘에서 길을 잃은 조종사 파비앵. 그와 무전 기사의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며, 하늘은 무전기사가 묻는 질문에 좀처럼 답하지 않는다. —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렇게 묻는 것뿐이다.
조종사에게는 항구로도 새벽으로도 데려가 주지 않는 이 밤이 피안이 없는 바다 같았다. 한 시간 사십 분 후면 기름도 떨어질 것이다. 조만간 이 두터운 어둠 속을 눈먼 채로 흘러 다녀야 할 것이다.
지상에도 지상의 야간 비행이 있다. 이곳 또한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만을 반복해야 했다.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파비앵의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조종사를 찾으러 비행장에 왔을 때도, 지상의 야간 비행사들은 그녀에게 잔혹하지만 진실인 것을 반복해 말해야만 했다.
리비에르는 남쪽 비행장에서 보내온 전보들을 뒤적거렸다. 모두 하나같이 우편기의 침묵을 알리고 있었다. 지도 위에는 연락이 끊긴 지역을 나타내는 얼룩이 점차 늘어났다.
오직 새벽만이 그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조종사와 그의 무전 기사는 어느 인간보다도 전지적인 물리적 위치에서 위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을 누구보다도 주인공처럼 체감하고 있다. 다가올 결말이 어떠할지는 폭풍과 새벽만이 알고 있었다.
인간이란 밤으로 비유된 자연 앞에서 역시 너무도 무력하다.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글은 작디작은 인간 존재에게 그들의 미약함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고. 리비에르 또한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는 것과 그의 결의 사이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우울한 조종사는 길을 잃었고, 내일엔 내일의 야간 비행이 있는 것이다. 리비에르는 그의 생각을 반박해 올 마음 약한 자들을 앞질러 또 다른 승무원들을 밤 속으로 떠나보내며 글이 마무리된다. 이 글은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니다. 인물 간의 연결이 단단하지도, 그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지도 않는다. 단지 야간 비행을 둘러싼 여러 인물의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 이야기 속 인간은 누구보다도 인간답다. 모두가 모험이라 부르는 승리를 위해 누군가는 길을 잃고 누군가는 계속 모험한다.
떠올려보면, 우리의 탄생 또한 야간 비행과 같다. 둥글고 아늑한 바다에서 번쩍이고 시끄러운 세상으로 머리를 내미는 일. 그뿐 아니라, 첫걸음마, 처음으로 혼자 자던 날,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위해 달렸던 모든 시간. 어떨 땐 추락할 듯이 흔들리는 난기류를 만났고, 어떨 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하늘 위를 날았다. 인간은 실체가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모호함만을 쫓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매일 밤하늘을 날겠다는 조종사들과 그들을 보내는 리비에르처럼 말이다.
<야간비행>은 특히 알 수 없는 미래, 불안함으로 점철된 20대의 젊은 청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모호함을 쫓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밤하늘은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조종사가 야간비행에서 얻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야간 비행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아래 있는 별들에서 기인한다. 그들이 두고 온 것들. 인간을 살고 싶게 하고 상상하게 하는 모든 것들. 저 아래에는 있을 것 같은 영원함으로부터, 그것의 상실을 떠올리게 하는 밤하늘이 두려운 것뿐이다. 커다란 해일처럼 울렁울렁 밀려 들어오는 어둠이 별 같은 그들의 사람과 사랑을 앗아갈까 봐.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인간은 개인의 폭풍 속에 던져진다. 이것은 두려움에 기인한 말들로 이루어진 폭풍으로 — '나 같은 게 뭘 할 수는 있을까, 내 나이에 이런 꿈을 꾸는 건 말도 안 되겠지, 분명히 실패할 거야'… —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지만, 필연적으로 휘말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니까.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영원한 밤은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새벽은 찾아온다. 따라서 젊은이들이여, 다가올 밤이 두려워 숨지 말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흘려보내지 말자.
승리…… 패배…… 이런 말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생명이란 이런 말들의 이미지보다 더 깊은 곳에 있으며, 이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하고 있다.
한 번의 승리는 한 민족을 약화시키고, 한 번의 실패는 다른 민족을 각성시킨다.
리비에르가 감내한 패배는 어쩌면 진정한 승리에 가까이 다가서는 하나의 약속일 것이다.
오직 전진하는 시간만이 중요하다.
오직 전진하는 시간만이 중요하다. 사람이 해내는 모든 것을 성공한 것, 실패한 것으로만 나눈다면, 못 이뤄낸 것들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삼으라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패의 고리는 정신을 옥죄어서, 그런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거듭된 실패는 우리를 커다란 오류에 빠뜨린다. 나를 위한 태양은 영원히 뜨지 않을 것이라는.
오직 전진하는 시간만을 떠올려야 한다. 하나의 승리로 귀결되는 과정엔 성공과 실패란 없다. 내 옆의 누군가는 모험하고 나는 길을 잃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도 성공과 실패란 없다. 우리는 모두 지금 어딘가로 야간 비행하는 중이다. 언제일지 모를 승리의 순간을 위한 하나의 약속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