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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Sep 28. 2024

불안과 불면

사랑의 챕터 365장



1년을 앞두며 우리의 연애는 조금씩 장기로 접어들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깊고 진지한 관계에 대한 환상이 없었던 지난한 20대에는, 늘 연애를 6개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던 나였기에, 30대를 목전에 두고 찾아온 장기연애가 낯설고 이질적일 따름이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불안함에 고리타분한 투정을 종종 부리긴 하나, 수년간 의심해온 세상에 모든 진지한 관계가, 진실로 과장이 아닌, 정말 깊고 진득한 것이 맞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사람이었다.


다만, 이 좋은 사람에게도 불안은 쉬지 않고, 아니 오히려 요즘 더 자주 찾아온다. 믿음의 두께가 얇아지거나, 유의미한 성격차이가 드러난 것은 아니다.


시간의 실을 풀어냈을 때 동반되지 않을 수 없는 권태로움과 무뎌짐. 그런 마음이 찾아올 상황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해 갈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견딜 수 있을까. 익숙함과 예측 가능함이라는 필연성을 인정하는 머리와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의 괴리에서, 이 결핍덩어리 인간이 버텨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이런 나를 견뎌줄 수 있을까. 견뎌 주길 바라는 이 마음은 왜 이리 이기적인 걸까. 등등




 



늘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며 다독여주는 그의 앞에서, 좋은 사람의 밑천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오늘 밤은 여지없이 불면의 밤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쩌면 우리의 사랑의 챕터는, ‘불안과 불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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