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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니 Jul 03. 2021

착한 사람

'특권'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이 뭐냐 물으면, 나는 꼭 ‘착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넣는다. 그런데 요새 나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기준이 좀 더 구체적이고 어려워졌다.

최근에 어떤 무리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그 사람들을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잘 배려하고 양보하는 ‘착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우연히 ‘차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던 중 나는 뭔가 대화의 방향이 비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착했지만,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시점에서는 무한히 냉정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을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만 ‘역차별’이 발생하면 안 되죠.”

사실 손해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이 말에는 굉장한 어폐가 있다. 내가 겪는 하루의 ‘손해’를 아무 죄도 없이 운나쁘게 1년, 365일을 매일 같이 겪는 이들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 각자의 불이익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개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만 겨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역차별’을 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날로 ‘착함’의 기준을 새로 세우게 되었다.





이미 유명하지만, 나의 사고회로를 완전히 바꿔준 책, 김지혜 작가님 '선량한 차별주의자'




나는 구조적으로 많은 영역에서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약자에 대한 배려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나는 신체적으로 결함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팔다리가 멀쩡해서 잘 걷고, 잘 뛰고, 글씨도 잘 쓴다. 눈도 잘 보이고, 냄새도 잘 맡고, 귀도 잘 들리고, 맛도 잘 느낀다. 어찌 됐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고, 형제관계,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고, 유행하는 옷을 사달라 떼쓰진 못했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내 노력이긴 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었고,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일부 나의 노력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내가 한 노력의 100배, 1000배를 쏟아부어도 결코 내가 이뤄낸 것을 이뤄낼 수 없다면, 그것은 분명 나의 특권인 것이다.

요새 약자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다. 여성, 장애인, 노인, 난민 그리고 오늘은 세월호 생존자들에 대한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도 마음이 내내 좋지 않았다. 그들이 겪은 일은 결코 그들의 죄가 아니다. 말 그대로 나는 운이 좋게 그 일을 피해 갔고, 살아남았다. 수년이 흐른 지금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순간마다 바닷속으로 끌려가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삶을 누린다는 것 자체가 특권인 것이다.


물론 나보다 더한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여전히 너무 많고, 그런 위치에서 나 또한 피해자가 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내가 당하는 차별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내가 차별의 ‘가해자’는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요새 많이 느낀다. 그렇게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참 감사할 일이 많은 사람이고, 내가 누리는 평범이라는 가치를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널리 누리길 소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가 가진 평범성의 특권에 대한 인식이라 믿고 있다. 나는 아직 착하려면 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최근에 제주도 서점에서 구매해 앉은 자리에서 엉엉 울며 다 읽었던 세월호 이야기, 김홍모 작가님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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