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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Mon

by 오르니




남들 다 번쩍번쩍한 센터에 집을 구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가득한 맛집과 옷가게들을 두고 밤새 술을 마시고도 별 걱정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 나는 홀로 동떨어진 작은 레가네스라는 마을에 집을 구했다. 정말 노인과 어린아이가 대부분인 그 조용하고 작은 동네에 홀로 사는 동양인으로 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영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이 가득했으며, 중요한 것 거리에 그 흔한 카페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 잔 하면 막차 시간에 전전긍긍, 첫차 시간에 전전긍긍. 나는 집을 구해도 어쩜 이렇게 구했을까, 남들 다 잘만 구하던데, 나만 왜 혼자 이 모양일까, 나를 갉아먹는 자기 비하의 일부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이 머나먼 동네에 혼자 고립되어 폐인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자주 울었던 레가네스 집 거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마을에 구한 아주 작은 방은 '1월의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동아줄이었다. 여러 셰어하우스에서 연신 퇴짜를 맞고 홀로 공포에 질려있던 나는, '외국인인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나는 28살 이리아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니?'라는 이리아의 연락에 엉엉 울었던 것 같다.

휴대전화를 도둑맞고 이 나라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똘똘 뭉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만 손꼽으며 20시간을 침대 위에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울기만 했던 생일날에도,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선뜻 내어주고, 따뜻하게 볼인사를 건네주었다. 모지리처럼 열쇠를 집에 두고 나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 벤치에 혼자 기다리고 있던 내 옆에, 말 한마디 통하지 않으면서 선뜻 다가와 앉아준 그녀였다.


때론 그녀가 조금 밉고 불편했던 날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험한 생활을 무슨 힘으로 버텼을까. 서툰 영어로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를 구했다, 손짓 몸짓 발짓으로 열심히도 이야기했던 그녀에게 나는 뭘 얼마나 대단해 잘해줬을까.



혼자 벤치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온 이리아와 호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리아가 무어라 말을 하며 호세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호세는 잔뜩 귀찮은 얼굴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Beautiful lives of students."


사랑을 하고 있는,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나는 그동안 참 감사하게, 작지만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물로 씻고, 따뜻한 밥을 먹으며 지냈다고. 내가 기억할 스페인의 일부로 남아줘서 고맙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레가네스에서 마지막 밤, 왠지 오늘은 좀 울어도 될 것 같다.




마지막 떠나기 전 날 밤, 이리아가 준 선물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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