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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화 Nov 06. 2017

8년을 뛰어넘은 광화문 사거리의 밤

나의 21세기② -2008년과 2016년의 촛불집회 

2007년과 2008년, 이십 대 초반의 나는 거리에서 밤새는 일이 잦았다. 나이트에서, 광장에서 낯모르는 이들과 함께하며 해방감을 느꼈다. 둘 다 내게는 일종의 축제였다. 한정된 시공간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 무질서를 도모하는 축제. 즐거움도, 분노도 선명한 시절이었다.

2016년 겨울, 삼십 대가 되어 다시 광장에 섰다. 나는 쉽게 피로해졌다. 함께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기쁨, 세상이 바뀔 거라는 희망은 옅어졌다. 내 분노에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탄핵은 의외의 결과였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함께 걸었던 내 또래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일상과 뉴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나의 21세기를 복기해본다. 


2008년 – '명박산성' 앞에 스티로폼이 쌓이던 밤 

그해는 촛불집회의 기억으로 선명하다. 2008년 6월 10일 화요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최대 인원(70만)이 참석했던 날 나도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이날은 언론에 '명박산성'이 최초로 보도된 날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의 기말고사가 본격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각 대학의 깃발 아래로, 한 학기 성적을 담보로 한 이들이 모여들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이미 5월부터 중고등학생들이 나와서 판을 짜두었다. 애기 엄마들은 유모차까지 끌고나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소울드레서'니 '화장빨' 같은 곳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결국은 직장인들이다. 초여름 밤, 우리는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광장에 나왔다. 

어둑해진 거리에 촛불이 모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는 노래가 울려퍼졌다. 사람이 많아지면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도로를 점거하고 걸었다. 평소에는 횡단보도도 눈치 보며 걷던 광화문 사거리다. 8차선 도로 위를 낯모르는 사람들과 발맞춰 걷는 해방감이란! 마치 사방이 뻥 뚫린 나이트에서 다 같이 느슨하게 셔플댄스를 추는 것만 같았다. 그 원동력이 분노란 점은 달랐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을 선언한 데 분노했다.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내려진 통보였다. 이전의 참여정부에서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도록 한 조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시점이었다. 당시 일본과 타이완에서는 2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하고 있었다. 소의 월령이 높을수록 광우병 발병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내건 조건도 걱정스러운 판국에 완전 개방이라니,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졸속협상이라는 비판이 들끓기 시작했다. 2008년 4월 29일, MBC 피디수첩에서 광우병 소고기의 위험성을 다룬 다큐를 방영했다. 이를 계기로 촛불집회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그 정점이 바로 6월 10일이었다. (참조: '2008촛불,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다', 미디어오늘, 2017년 6월 11, goo.gl/7RAvcg) 

그날도 여기저기 행진하다 광화문으로 돌아왔는데 거대한 컨테이너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이른바 '명박산성'의 등장이다. 바다를 활보하다 수족관에 갇힌 느낌이었다. 황당 그 자체였다. 취임한 지 백일밖에 안 된 대통령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다니! 이런 공적인 분노와는 달리, 한편으론 안락하기도 했다. 그날 나는 원래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어찌 하다 보니 같이 나온 후배들이 막차를 놓쳤다. 이왕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새운다면 한쪽이라도 막혀 있는 편이 나았다. 전경도, 시위대도 넘어갈 수 없는 벽. 불통의 상징으로 불리우는 명박산성을 나는 거대한 여관의 벽으로 활용했다. 춥고 피곤하고 졸렸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명박산성 앞에서는 사람들이 스티로폼으로 연단을 만들어놓고 토론을 벌였다. 한쪽은 청와대로 가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머무르자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담요나 한 장 있었으면 했다. 학교 깃발 주변으로 삼삼오오 흩어진 우리는 광장 위에 박스를 깔고 쪽잠을 청했다. 

광장의 새벽은 일찍 찾아온다. 어스름한 빛에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그새 의견들이 정리된 모양이다. 사람들은 스티로폼을 차곡차곡 컨테이너 높이까지 쌓아 계단을 만들었다. 새벽 다섯 시, 서서히 해가 뜨는 동안 깃발을 든 사람들이 차례차례 컨테이너 위로 올라갔다. 각 대학의 학생회 깃발이 장관을 이뤘다. 그리고 양 끝에 선 사람이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소통의 정부, 이게 MB식 소통인가." 그 뒤로 해가 완연히 떠올랐다. 역사의 한 장면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2008년 6월 11일 새벽의 광경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한편으론 그 광경이 씁쓸하기도 했다. 학생회도 다 같은 학생회가 아니다. 서울대가 가장 먼저 올라갔다. 학생회 간부들은 정확히 수능 배치표 순대로 올라가 깃발을 흔들었다. 우리 밖에 있는 공통의 적에 대항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안의 차이를 극복하는 게 힘들겠구나. 함께 걷고 노래하고 이야기로 밤을 새워도,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곧 컨테이너 너머로 경찰 측 방송이 시작되었다. 불법으로 도로를 점유하고 있으니, 속히 해산하라는 경고였다. 그 목소리에 사람들은 노래나 하라며 받아쳤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파티는 절정일 때 떠나야 하는 법, 나이트클럽도 그렇고 파장할 때까지 남아 있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같이 온 후배들과 첫차를 타고 돌아갔다. 학교에 가보니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아침까지 남아있던 몇몇이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은 벌금형을 받고, 항소를 거듭하며 몇 년 동안 법원을 다녔다. 그게 나일수도 있었다. 

6월 10일을 기점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10만이 모였다는 6월 28일, 경찰은 작정하고 토끼몰이를 해댔다. 집회 인원을 둘러싸고 방패로 찍고, 물대포를 쏘고, 소화전을 뿌려댔다. 성난 시민들은 반격했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만 300명이 발생했다.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였다면 경찰에서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진압하진 못했을 것이다. 조중동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폭력집회라며 떠들었다. 그렇게 2008년 촛불집회는 공권력과 보수 언론의 합작 속에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했던 우리의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결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는 소고기 시장 완전 개방 선언을 번복하고, 30개월 미만의 소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가가 너무 컸다. 정부는 집회 주최 측과 참가자를 무더기로 고소했다. 언론을 통제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들은 집요하게 사람들을 추적하고 괴롭혔다. 광장에 나가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2009년 용산참사, 쌍용차 해고 사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2014년 세월호까지 겪으면서 분노는 체념으로 변해갔다. 세상은 안 바뀔 거야. 한동안 2008년 여름의 일은 패배감을 더해주는 기억일 뿐이었다. 

작년에도 별 기대는 없었다. JTBC 보도를 보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나갔을 뿐, 세상이 바뀌리라는 추호도 못 했다. 2016년 겨울, 뜻밖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광장을 지켜주었다. 두 달을 넘긴 촛불은 탄핵을 이끌었고, 조기대선으로, 문재인 당선으로 이어졌다. 나보다 더 분노한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2008년의 일도 여기까지 이르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어깨에 기대 걷다보니, 익숙한 즐거움이 떠올랐다. 잊고 있던 연대, 희망 같은 것. 그 온기를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싶다. 


출처: 연합뉴스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 검정치마의 'antifreeze'


이제 나는 겨울이 두렵지 않다. 그때도 다음 세대는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할로윈데이와 촛불 1주년 시기도 비슷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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