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거짓말에 대해
신대방역 도림천 근처의 다세대주택 반지하, 사진만 봐도 어느 골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나는 2005년에서 2016년까지 10년 남짓, 이 동네 반지하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이번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세 명이 참변을 당한 것을 보니, 마치 나의 일부가 잠긴 것 같았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비만 오면 잠 못 이루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신림동 반지하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
그 집은 앓고 있었다. 천장 모서리마다 멍보다 시퍼런 곰팡이가 피었고, 습기 때문에 부엌 찬장은 물론 철재 현관문까지 주저앉고 있었다. 지은 지 40년이 다 된 다세대주택에는 반지하 가구가 넷, 공용 화장실이 두 개 있었다. 화장실이 지상에 있어 정화조가 역류할 일은 없었다. 다만 열 계단이나 내려가야 하는 낮은 지대에 위치한 탓인지, 집 안이 항상 습했다.
어느 날 새벽, 물벼락을 맞았다. 자고 있던 이부자리 옆으로, 천장에서 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노후한 배수관에서 한두 방울 새어 나오던 물이 고이자, 벽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것이다. 천둥번개가 치던 날에는 얼굴 위로 바퀴벌레가 툭, 떨어졌다. 매일 쓸고 닦아도 아침이면 곳곳에 좁쌀 같은 바퀴벌레 알이 쌓였다. 두 달에 한 번씩 터트리는 연막탄도 소용없었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바퀴벌레 사체를 쓸어 담고 나면 엄마는 며칠씩 끙끙 앓았다. 해충방제 업체를 불렀지만, 직원이 와서 보더니 이건 이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철수했다. 반지하 옆집, 뒷집과 우리는 바퀴벌레로 통하는 사이였다.
장마가 길어지면 행거에 걸어둔 겨울옷부터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났다. 계절이 바뀌어도 동네 세탁소에 1년 내내 외투를 안 찾아가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여름철에도 안전한 옷장은 세탁소밖에 없다. 이사 가던 날 아침, 구석에 놓인 옷장을 들어내다가 기절할 뻔했다. 옷장이 있던 자리에는 무리를 이룬 해바라기마냥 시커먼 곰팡이 꽃이 벽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잘 차려입고 나가도, 녹색 철문을 밀고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이 모든 것이 가난을 상기시켰다.
가난은 비참한 기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곰팡이 및 바퀴벌레와 동고동락한 결과, 나는 비염을 얻었다. 어느 겨울에는 비염 약을 먹어도 한 달 내내 낫지 않아, 친구네 집으로 피신했다. 하루 만에 코가 뚫리더니 사흘 만에 비염이 나았다. 지금은 지상에서 몇 년째 살다보니 1년에 한 번 비염이 발병할까 말까 할 정도로 증세가 호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맵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반사적으로 콧물이 흘러나온다. 반지하는 내게 비염이라는 만성 질환을 남겼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집을 떠날 수 없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10만 원을 주고서 방 두 칸 딸린 집을 서울 한복판에서 찾기란 쉽지 않았다(2007년 기준). 컨디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반지하 시세는 지상의 절반 이하다. 그만큼 주거비가 적게 들어가니, 돈 모아서 이사 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반지하가 최선일 수 있다. 우리 세 식구는 활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나와 오빠는 대학 다니는 내내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고, 가장이었던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줄곧 일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비와 등록금을 제하고 나면 빚이 쌓였다. 우리의 가난은 정부에서 정하는 최저임금, 요양보호사 급여, 등록금 인상률 및 대출 금리와 직결됐다.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우리 세 식구의 일자리는 서울 시내 동서남북으로 걸쳐 있었다. 엄마가 일하는 요양원은 강남에, 오빠가 일하던 호프집은 이태원에, 내가 일하던 카페는 종로에 있었다. 2호선 신대방역은 이 모든 곳에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교통 요지다.
없는 사람일수록 이동이 용이한 곳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그 동네에는 우리처럼 경계를 넘어 기회를 찾아온 사람들-자취하는 대학생, 일자리를 찾아 지역에서 올라온 이들, 조선족과 중국동포-로 빼곡했다. 누구는 신림동 반지하에서 가난의 냄새를 맡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그곳은 생존 기지이자 내일을 위한 발판이었다.
그 절실한 삶의 공간을 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닥쳤다. 재계약을 마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주인이 집을 리모델링해야겠다며 나가달라고 했다. 반지하 세대 포함, 모든 가구가 이사에 동의한 뒤였다.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 나갈 수 없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거주 기간이 있는 데다, 오빠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시험이 몇 달 뒤로 다가와 있었다. 완강하게 버티자 집주인이 한 수 접고 들어왔다. 같은 금액대의 월세 집을 찾아 이사비를 지원하고 6개월 뒤에 떠나는 조건으로 이주에 합의했다.
무관심한 정부보다 애 닳는 집주인이 낫다?
집주인이 우리를 이주시키려 찾아낸 집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같은 반지하이긴 해도 남향이라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앞뒤로 마당이 있어, 낯선 사람으로부터 사생활도 보호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여름에도 창문과 현관문을 동시에 열어 환기하는 것이 가능했다. 두툼한 단열재를 발라 곰팡이도, 바퀴벌레도 없었다. 그 집에서 비로소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 집의 가격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5만 원. 이전 집주인은 남은 계약 기간의 월세 차액과 이사비, 부동산 중개수수료까지 지불해줬다. 이사 갈 집을 계약하는데 눈물이 났다. 집주인이 계약 기간 중에 세입자더러 나가라고 했으니 이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그걸 정당한 보상이 아니라, 맘 좋은 집주인의 '시혜'로 받아들였다. 세입자의 권리를 찾겠다며 법적 분쟁을 불사하는 것도 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에, 섣불리 '권리' 운운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다른 세입자들이 순순히 집을 비워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를 내쫓으려 했던 집주인 덕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주거 상향(?)을 이루게 되었다. 이 외에도 반지하에 살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은 집주인이었다. 다세대주택 꼭대기 층에 살았던 주인들은 폭우가 내릴 때면 새벽에도 반지하에 내려와서 침수가 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세입자의 안부를 물었다. 양수기를 가져다 놓고, 작동법을 알려준 것도 이들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여간한 침수 피해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정부보다야, 수해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소통하는 집주인이 도움이 됐다.
그 집에서 우리는 삶의 기반을 하나하나 다져나갔다. 나와 오빠는 원하던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직했다. 빚을 갚고 저축하기 시작했다. 이제 좀 희망이 보이나 싶었는데 엄마가 쓰러졌다. 노쇠해가는 몸으로, 10년간 반지하에 살며 무리하게 일한 대가였을까. 치료될 수 없는 질병을 얻어, 엄마는 임금 노동에서 은퇴했다. 몇 년 뒤 자식들이 결혼하고 나자, 엄마는 신림동 반지하에 홀로 남겨졌다.
그제야 국가가 등장했다. 엄마가 근로능력도, 근로소득도 없으며, 재산도 거의 없는 상태로, 서울에 무주택자로 10년 이상 거주한, 만 60세 이상의 단독 세대주가 되자, 비로소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의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수 없는 처지임을 서류상의 가점으로 입증해야 했던 것이다.
2017년에 반지하를 떠난 뒤로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엄마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침실 한 칸에 거실과 주방이 분리된 13평짜리 아파트의 보증금은 반지하에 살 때와 비슷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의 힘이다. 정부의 뒤늦은 개입은 어떤 집주인의 선의와도 비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 정부가 고마운 동시에 원망스럽다. 몇 년만 일찍 임대아파트에 들어갔더라면, 그토록 주거 불안에 시달리면서 건강을 해치고 살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엄마도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었을 텐데...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거짓말
이번 재난 현장에 정부는 없었다.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 서울시장은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 걸 보고도 퇴근했다. 밤새 서울이 물에 잠기는 사이, 방송사에 '노란 잠바' 입고 나와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공무원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나라를 책임지는 자들이, 집주인만큼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 걸까. 불안한 국민들은 SNS를 통해 사건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서는 이웃에게 구조 요청을 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신림동 반지하에서 일가족 세 명이 사망했다. 참담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뒤늦게 나타난 정부는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한다. 그러나 반지하에도 삶이 있다. 싸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먹고 자고 쉬며 내일을 도모하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반지하 주거의 질을 높이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물을 빼고 나면, 습기로 인해 악취와 벌레, 곰팡이가 거주자를 괴롭힐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시설 수리비 지원은 물론이고, 수해 방지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안전한 환경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에서 내놓은 대책들이 허울뿐인 말 잔치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이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빈곤층의 삶은 사회에서 보장하는 최소 수준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쪽방 등 주거 취약 계층의 삶은,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정부는 이 기준을 제시하고, 질 높은 주거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럴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