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악몽' 프로젝트
'크리스마스의 악몽' - 연작시 두 번째
멈출 수 없던 밤
붉은 코는 불빛이 아니라 상처다
바람이 코끝을 찢고,
서리는 뼛속을 긁는다
피가 언 자리에 얼음이 달붙고
숨결은 몸 밖에서 부서진다
발굽이 얼음 위를 내리칠 때마다
짧은 비명이 길 위로 번진다
균열은 얼음 밑으로 퍼져나가
검은 땅의 심장을 때린다
나는 그 떨림을 듣는다
이 길은 살아 있고,
나의 무게를 알고 있다
나는 멈출 수 없다.
멈추는 건 내 죽음을 뜻한다
겨울은 언제나 달리는 자만을 남긴다
멈춘 자는 뼈까지 얼어
길의 일부가 된다
눈보라가 내 입을 메우고
달빛은 내 상처에 길을 비춘다
코끝의 불씨는 희미하게 흔들리고
피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빠르게 식는다
나는 어둠의 경계를 달린다
단 한 번도 이 길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붉은 끈이 내 목에 걸리던 날의 기억
그땐 그것이 선물이라 믿었다
방울이 달려 있었고
아이들이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웃음이 아직 내 귀에 남아 있다
지금 그 방울이 내 목을 죄고
그 끈이 내 살을 끌어당긴다
그렇게 피가 얼어붙는 속도와
살을 찢는 바람의 강도는
점점 하나의 고문으로 완성된다
어깨와 뿔에 매단 썰매의 무게는
누군가의 기쁨이다
그러나 내게는 생의 전부다
나는 내 몸으로 그들의 축제를 끌고 간다
뒤를 돌아본다
내가 밝힌 길 위에
바람에 찢겨 흘린
내 피의 비릿한 그림자만 얼어 있다
그들은 이 길을 기적이라 부르겠지
나는 이 길을 형벌이라 부른다
기적은 누군가의 피를 묻히고 온다
* 연작시 해설
루돌프는 오래도록 기적의 상징처럼 소비되어왔다. 하지만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달려야만 한다’는 점이다. 나는 루돌프를 상징이 아닌 하나의 몸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의 붉은 코는 불빛이 아니라 상처이고, 달리기란 축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조건이다.
그가 멈추는 순간, 그는 잊힌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달리고, 그 질주가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그의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를 보며 기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기적의 한가운데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루돌프는 화려한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움직임에 갇힌 존재다. 축제란 그렇게 누군가의 달리기를 전제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