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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2-3 [연작시] 부러진 트리

'크리스마스의 악몽' 프로젝트

by 오로지오롯이


'크리스마스의 악몽' - 연작시 네 번째



부러진 트리


전구는 켜지기 전에도 떨린다

나는 벽난로 옆에 세워져 있다

따뜻함이 아니라, 균열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황금 장식에 찍힌 지문,

먼지에 잠긴 오래된 손길,

구슬에 갇힌 먼지,

그 안에 오래 묵은 시간들이 갇혀 있다


가족은 웃으며 나를 찍고,

아이들은 내 아래 선물을 쌓고,

빛은 반짝임으로 무너짐을 덮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천장에 부딪히고

가지 끝은 모르게 금이 간다

뿌리는 얼어붙은 흙 속에서 썩는다

장식의 무게는 가지를 짓누르고

불빛은 조용히 상처를 태운다


나는 이 집에 중심에 섰지만,

이 집에서 가장 먼저 부서지는 존재다

빛은 나를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을 기록하는 표식이다

축복의 온도는 썩음의 속도와 비슷하다

가장 화려할 때 가장 깊이 갈라진다


전구의 깜박임은 경련처럼 찾아온다

빛이 눈꺼풀 안쪽을 할퀴고

짧은 번쩍임마다 내 속살이 뒤집힌다

누군가는 이 순간을 기념이라 부르지만

나는 균열의 중심에 묶여 있다

내 속의 나이테는

오래된 이마의 주름처럼 파여간다


이 빛은 곧 꺼져갈 것이다

이 방은 텅 비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

나만 남을 것이다


나는 잿빛 냄새로 흩어지고

공기 속엔 타다 남은 먼지들이 떠다닌다

이 집의 따뜻한 숨결은 이내

눈에 젖은 잿가루처럼 천천히 냉동된다





* 연작시 해설


트리는 모든 축제의 중심에 놓인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웃으며, 트리 아래에 선물을 쌓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트리의 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화려함은 표면에만 머물러 있고, 그 내부는 조용히 갈라지고 썩어간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중심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중심에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그 무게를 고스란히 지는 일이다. 가지에 매달린 장식과 불빛은 아름답지만, 그것들은 트리를 조용히 파괴한다. 나는 그 조용한 균열이야말로 축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가장 화려한 존재가 실상은 가장 먼저 부서지는 자리라는 사실이 내게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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