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김수영과 신동엽 시에 나타난 자유와 유토피아

김수영 ‘여름뜰’, 신동엽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을 통하여

by 오로지오롯이


김수영과 신동엽은 50, 60년 한국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으로 기억된다. 이 두 시인은 민족의 현실에 관점을 둔 참여적 시각의 시를 많이 발표하여서 그런지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 두 시인은 정신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 시단을 이끈 것도 사실이며, 어쩌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듯싶다. 또한 이 두 시인의 시가 자주 비교되는 자체가 큰 덩어리의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래서인지 조사하고자 하는 이 두 시인의 특성이 어딘가에 중복되거나 나의 의견이 궤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두 시인에 대한 조사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에 가까웠다. 도전이기에 용기를 냈다.


사실 이 두 시인의 시를 직접 들여다보면 너무나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김수영의 초기 시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그에 반해 신동엽의 시작 경향은 광복 후 문단에 영향을 끼친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치지 않고, 토착정서에 역사의식을 담은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김수영 시인은 소시민적인 국민들을 각성시키는데 반해 신동엽은 민중들의 의식을 고취 시키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장려해 주었다. 이처럼 김수영, 신동엽시인은 참여적 시인으로써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했다.


나는 신동엽과 김수영이 표현한 저항 의식이 어떻게 다른지, 현실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신동엽과 김수영의 현실 참여적인 시의 특성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예전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신동엽 시에는 유토피아가 있다.’ 그렇다면 김수영 시에는 유토피아가 없을까. 사실 김수영을 자유의 시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물음에서 시작하여 이 두 시인의 대표적인 시를 통해 이들이 추구한 자유와 유토피아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김수영 - ‘여름뜰’

무엇때문에 부자유(不自由)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자유(自由)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屈曲)이 있다

모오든 언어(言語)가 詩에로 通할 때

나는 바로 一(순간)瞬間 전의 대등성(大謄性)을 잊어버리고

젖먹는 아이와같이 이즈러진 얼굴로

여름뜰이여

너의 광대(廣大)한 손(手)을 본다

[조심(操心)하여라! 자중(自重)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어라!]하는

억만(億萬)의 소리가 비오듯 내리는 여름뜰을 보면서

합리(合理)와 비합리(非合理)와의 사이에 默然히 앉아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思念)일 것이다

무엇때문에 不自由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自由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뜰이여

크레인의 강철(鋼鐵)보다 더 강(强)한 익어가는 황금(黃金)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動物)이라도 있다면

여름뜰이여

나는 너에게 희생(犧牲)할 것은 준비(準備)하고 있노라

질서(秩序)와 무질서(無秩序)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生活)은

섧지가 않아 시체(屍體)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여름뜰을 밟아서도 아니될 것이다

묵연(默然)히 묵연(默然)히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신동엽 -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재미난 꿈을 꾸었지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다가

발 아래 아시아의 반도

삼면에 흰 물거품 철썩이는

아름다운 반도를 보았지.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 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고

평화로운 눈밭.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참

재미난 꿈을 꾸었어.

그 중립지대가

요술을 부리데.

너구리새끼 사람새끼 곰새끼 노루새끼들

발가벗고 뛰어노는 폭 십리의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그 평화지대 양쪽에서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도 뒤로 돌데.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

물방게처럼

한 떼는 서귀포 밖

한 떼는 두만강 밖

거기서 제각기 바깥 하늘 향해

총칼들 내던져 버리데.

꽃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이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면서 허망하게 우스운 꿈만 꾸었지.




먼저 김수영의 시 ‘여름뜰’은 자유와 부자유를 전면에 다룬 시라고 볼 수 있다. 김수영은 ‘자유의 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자유’를 자신의 작품에서 많이 거론했다고 한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처럼 자유는 김수영 시의 중요한 의미이다. 물론 김수영의 시에 드러난 자유란 시인의 사상적인, 또는 사회적 태도를 반영할 수도 하지만 이 시에 드러난 자유는 김수영 시와 삶의 방향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여름뜰’에서는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는 구절이 시의 초반과 중반에 두 번이나 드러난다. 이는 자유로운 사상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함과 동시에 부자유한 생활에 빠져 있는 자신을 질책하는 모습일 것이다. 화자가 ‘여름뜰’에게 바라는 것은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하는 하나의 바람이다. 이것은 ‘나’에게 자유에 대한 의지가 숨어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여름뜰’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름뜰은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띤 채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면서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내리는 곳이다. 이것으로 ‘여름뜰’은 화자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도출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 통하여 ‘자유’ 안에 화자 ‘나’를, ‘부자유’ 안에 ‘여름뜰’을 위치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이 시는 자유와 부자유의 대립적인 것을 계속 나타낸다. ‘나’는 얼굴을 가졌지만, ‘여름뜰’은 손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 생각하는 자유는 손이 아닌 얼굴이라는 것이다. 얼굴은 의지를 가졌지만, 손은 도구로써 기능한다. 시인이 생각하는 자유란 의지의 표정이지, 어떤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동물’과 ‘크레인’, ‘조고마한’ 과 ‘광대한’ 등의 표현으로 자유와 부자유를 나타냈다. 자유는 소박하고 생명력이 있지만, 부자유는 거대하고 생명이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진술을 통해서도 이 시에 나타난 자유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라는 표현으로 부자유가 자유로 통하는 시간을 김수영은 자신이 시를 쓸 때 경험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 신동엽의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가 쓰인 60년대의 정치적으로 암울한 상황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이 시의 상황이 유토피아적이다 못해 환상적인 광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는 당시의 우리나라 상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것을 평소 신동엽 시에 드러난 것들로 유추해볼 수는 있다.


신동엽의 시에는 아나키즘적 요소는 들어가 있다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이 시에서도 그와 연결 지을 수 있는 듯싶은데 정부가 민중을 억압하지 않을뿐더러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모습 속에 드러나 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환상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겨 온다. 술에 취해서 잠든 뒤 꾼 꿈속의 상황이 시의 내용 전면에 드러나고 있어서 현실적인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말 그대로 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렸다고 본다. 또한 그 꿈을 재미난 꿈, 허망하게 우스운 꿈이라고 하는 것에서 현실과는 모순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너구리새끼 사람새끼 곰새끼 노루새끼들 발가벗고 뛰어노는 폭 십리의 중립지대’,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도 뒤로 돌데’,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이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등의 이런 광경은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시인의 내면적 바람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 드러나는 부당한 권위와 폭력에 항거하는 그의 시 정신을 이 시에서도 볼 수 있다.



결론


김수영은 자유에 대한 이상과 강렬한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비판적 태도로 바라보았다. 또 그런 그의 목소리가 강도 높게 그의 시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의 시는 개인적 삶의 세계로부터 시작되었을 테지만 점차 사회로 확산되어 그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수영에게 자유는 그 자체가 하나의 목표였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기에 자유는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동시에 예술이 받들어야 할 최고의 가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이 아니더라도 자유는 그의 생 전체에 드러나는 의지이지 의미이기도 했다.


신동엽에게 나타나는 시적 특징은 역사를 드러낸 복고주의적 경향을 지녔다는 점과 아나키즘적인 유토피아를 지향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시에서는 그의 유토피아적인 세계가 드러나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자, 한탄에서 나오는 새로운 지향점일 것이다.


자유와 유토피아의 연계. 이 두 시인이 바라본 이상향은 어쩌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동엽에게는 유토피아가 있었고 김수영에게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유토피아와 자유. 어쩌면 같은 방향을 떠올리지만, 김수영의 시에는 유토피아의 평안함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신동엽의 시에는 김수영 시에 드러난 강인한 투쟁심을 엿보기가 어려웠다. 김수영의 사회에 대한 전면적 투쟁의 시에는 유토피아조차 끼어들만한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김수영은 자신의 시작 노트에 ‘소음의 철학’이라는 단상의 몇 대목 적어놓은 일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김수영은 도시의 일상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날의 싸움을 겪었고, 그런 모습이 그의 시작 태도에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김수영의 처절한 전투의 나날은 신동엽의 추구한 유토피아보다는 유토피아에 다다르기 위한 ‘자유의 초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치열하고, 힘든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신동엽은 조금은 여유가 있는 시 세계를 펼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신적인 평안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쩌면 낭만의 세계와 쉽게 맞닿을 수 있는 생활을 해서 그렇거나 신동엽 스스로 여유의 삶을 추구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두 시인의 양상은 결국 한 곳을 바라볼지라도 시작 태도와 시에 드러난 세계는 조금은 다른 방법을 취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변에 산재해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것들이 두 시인의 사상을 확립하는 데에도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 두 시인의 양상을 통해 김수영과 신동엽을 더욱 알아가고 싶은 동기를 이제 찾아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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