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존 롤스, 정의론에 대한 짧은 소회

by 오로지오롯이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by SAMUEL GOROVITZ


이 텍스트는 사무엘 고로비츠에 의해 작성된 존 롤스의 ‘정의론’에 관한 글이다. 해석된 텍스트와 원본을 이해하기 어려워 단편적으로 정리한다.


존 롤스는 학계 외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1971년 정의론이 발간되면서 지식인 계층을 통해 존 롤스와 정의론은 매우 널리 퍼졌고, 강렬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정의론은 수년간의 이해보다는 세대를 건너서라도 논쟁되어야 할 고전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정의론은 이제껏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정치학적 기여이자, 실질적으로 도덕과 정치적 관념에 기여하지 않는 분석적 철학자들의 비난에 대해 영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정의론의 기본 목적은 벤담이 점유해왔던 영역인 실리적인 시점에 제공 가능한 정의라는 개념의 분명한 이론의 설립을 보장해주는 것이고, 이런 정의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리주의의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


역사가 흐르면서 공리주의에 속한 법률 정치의 영향력은 심어해져 갔다. 그와 동시에 공리주의의 반대는 다양한 초점에서 다루어져 왔다. 공리주의는 일관성이라는 부분을 다른 것에게 도전 받았고, 무엇을 행복의 최대점으로 보는가에 대한 의견에서도 혼란스러웠으며, 공리주의 이론에 따라 희망과 불안이 교차되는 점에서 많은 이론 투쟁이 뒤따랐다. 이런 시점에서 롤스의 정의론은 단지 공리주의 하나에 대한 치명적 공격이 아니었다. 정의론은 도덕적 전망을 제시하였고, 단순히 도덕적 철학의 중요한 부분만을 더해놓은 것이라 변화를 시켰다. 또한 롤스에 의해서 정의는 사회구조로써 성립하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치와 입법상 결정은 정의론에 따라 구속력 있는 범위에서 분명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공리주의와 반대되는 의견의 사람들이 가진 직관적인 모습과 다르게 롤스는 경우에 따라 무엇이 정의이고, 아닌지를 말하였다. 롤스에 의하면 정의의 작용은 물질의 기여, 물질이 함유하는 부, 신분, 기회, 기술, 자유, 자신감까지 많은 영역을 포함한다. 롤스의 정의론 발달에서 그는 인간 특성의 이해를 시작했다.


공정함으로서 의 개념은 자유와 관계되어 있다. 만약 누구든지 자유가 억압되었다면 만인의 최대의 자유를 위하여 주장하는 것에 위협 당한다. 이러한 행동은 아마 다른 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한 개인에 의해 속박당할 것을 인정할 것이다.


또한 자유의 분배가 공정하고 물자가 풍부하다면 분배의 의문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서로가 바라는 만큼의 물자를 위하여 만족할 만큼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이와 같지 않은 방향이기에 협상가들은 이렇게 분배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을 안다. ‘부족’이란 단어서도, 분배를 관장하고 있는 이론에서도 정의론의 기본적인 부분은 효과 있는 이론이다.


협상가들은 아마도 불평등에 대해 허락하기를 원할 것이다. 또한 또 다른 불평등에서 유리한 세금의 허점 같은 것은 다른 사람보다 소득이 많아 매우 부유한 사람이 피하려 할 것이다. 이런 개인들의 자유가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나 롤스의 규칙은 이러한 불평등을 넘어서 전체 복지 개선조차 불공평한 자유의 축소에 대한 불충분한 정당화라고 규정한다.


롤스의 첫 번째 원칙은 사회 기관 그리고 관행들의 형성에 대한 절대적 제약이다. 또한 두 번째 원칙은 그들이 최소한의 이익을 얻는 한 불평등을 허용한다. 이러한 정의의 두 가지 원칙은 롤스가 주장하는 정의의 근본적인 개념을 구성한다.


또한 칸트와 연관시켜서 보자면,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원칙을 산출하는 것은 순수한 이유였다. 롤스에게 있어 정의의 원칙들은 인류 심리학, 사회 상호 작용, 적당한 결핍의 사실들과 경쟁적 주장들에 관한 믿음의 구성 전체로써 통합한 논쟁을 따랐다. 따라서 롤스는 기본적은 틀은 칸트파에 대하여 논쟁을 제공하며, 동시에 칸트의 순수한 합리주의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롤스는 실행 가능한 정치적 개념을 정의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헌법은 정의의 원칙들을 만족시키는 것과 공평하고 효과적인 입법으로 이끌도록 계산된 최고의 방법이라는 맥락 안에 있다. 정의의 개념에 의하여 제약된 헌법은 양심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할 자유, 사람의 자유, 그리고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여야 한다. 따라서 헌법의 단계에서 품고 있는 정의의 최고 원리는 자유의 원칙이다.

물론 롤스는 이 설명이 역사적 정확성도 가지고 있지 않고, 또한 미래의 신중함을 위하여 실증적으로 가능한 과정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롤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 헌법이 정의의 원칙들과의 조화 속에서 평가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견해이다.


롤스는 사회, 경제 정책들이 기회가 평등하고 공정한 조건 하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혜의 최대화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혜를 향하여 최고치로 누적이 되는 장점이 결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법이 특권에 유리한 것은 부정한 것이므로 제외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롤스는 평등주의에 대하여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롤스는 기득권을 지지하는 것에 대하여 꽤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혜의 역경을 개선시키기 위함이다.


롤스는 분명히 그의 가치와 각각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평등주의자이다. 더 나은 사회 복지를 위하여 개인의 자율성을 저 아래로 숨긴 고위층의 공산주의자들 또는 사회주의자의 상태 역시 이상하다고 보고, 롤스는 사회 질서의 첫 번째 의무는 정의의 성취이고, 몇몇 관점의 입법 결과는 일반적 행복함의 최대화를 위한 도구로써 정부를 바라보는 관점의 실용주의로부터 심오하게 다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만족감의 양적인 비교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한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롤스에게는 이러한 비교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단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확인과 이들에게 어떠한 이익이 돌아갈지를 예상하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여전히 롤스의 이론은 많은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계속해서 비평이 따라온다. 반대의 의견은 아마도 세 가지의 다른 단계에서 키워질 것이다. 첫 번째는 롤스의 방법에 대한 타당성에 질문을 할 수 있고, 두 번째는 롤스의 회계에 기초한 합리적인 정확함에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세 번째는 롤스의 방법에 대한, 그리고 방법으로부터 따라온 질문의 원칙과 그의 주장이 명료함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롤스는 이러한 반대들을 인식하고 있다. 물론 초기 정의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조사에 대하여 수많은 방법을 제시해 주었던 것처럼 반대들이 계속 발생할 것이고, 모든 반대들이 롤스에 의하여 고려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롤스가 사회 문제에 대해 밝힐 만한 강력하고 새로운 도구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롤스의 정의론에 대하여.

위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서적을 통해 알아본 정의론과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필자의 생각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롤스의 정의론은 공리주의 대안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듯싶다. 그럼 먼저 공리주의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공리주의는 사람들이 삶 속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덕목들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행위나 정책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 이 같은 공리주의의 특성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필요한 복지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평가하게 한다. 그러나 복지 증진이라는 명목 속에는 소수자의 권리나 인권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롤스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공리주의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것의 대안으로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다.


공리주의의 가장 큰 허점은 복지 증진이라는 명목 아래서 소수자의 희생을 묵인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이런 공리주의의 허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미흡했다. 그런 대안의 제시를 롤스는 정의론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일단 공리주의에 대한 롤스의 비판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먼저 공리주의에 입각한 사회에서는 소수자의 이익이나 약자의 욕구가 다수의 더 큰 이익이나 보다 나은 자들의 욕구에 의해 희생된다는 것이다. 이런 공리주의의 약점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적 제반 제도의 기초로서 취약성을 드러내게 된다.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명을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리의 원리는 정의의 원리와 상충된다. 정의, 권리, 자유는 어떤 것에도 침해될 수 없는 영역인데 공리주의에서는 최대한의 유용성을 위해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이다. 즉 공리주의는 행복의 총량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에서 직관은 합당한 윤리적 결정 방식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공리주의에서는 직관조차도 유용성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론은 경제적 부의 불균등한 배분과 정치적 영향력의 불평등 문제를 자신이 다루어야 할 과제로 삼는다.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 맡겨질 수도 없다고 선언하며 공리주의를 비판적으로 겨냥한다.


롤스는 기본적으로 평등 분배를 지지한다. 그러나 평등한 분배보다 사람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면, 특히 최소 수혜자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면 부분적으로 불평등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이고, 개인의 능력만을 강조하는 국가는 자유주의 국가이지만, 이 두 국가 모두 정의롭지 못한 국가이며, 정의로운 국가는 차등이나 불평등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국가를 뜻한다. 즉 정의론은 기본적으로 최소수혜자의 최대행복을 고려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정의로운 국가는 차등이나 불평등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국가를 뜻한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이나 능력 없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사회가 롤스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즉 롤스는 다수가 누릴 더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해도 좋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복지와 정의론에 대하여.

복지 정책은 기본적으로 평등의 가치를 추구한다. 따라서 그 속에 정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복지 정책이 평등을 추구한다고 해서 공산화에 연결해서는 안 된다. 자유의 가치가 상실되는 위에서의 복지화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의 키워드가 복지와 정의론의 끈을 맺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공리주의에 대해서 말하자면,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허나 복지는 이와 다른 방면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복지를 보자면 최대 다수에 포함되지 않은 소수의 희생을 바라봐야만 하는 가능성이 생긴다. 따라서 이는 복지 정책이 추구하는 기본적 가치가 오히려 혜택 받지 못한 소수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볼 때 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 점에서도 공리주의에 반대되는 정의론(최소수혜자의 최대 행복)과 같은 맥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복지와 정의론의 연결,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그 연결이 타당할지는 미지수다. 롤스의 정의론은 자유와 권리의 행사가 무의미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재화를 산출할 수 있는 사회에 적용되는데 우리나라가 그런 재화를 산출할 수 있는 사회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고 보인다.


9788987350530.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 평론] 나무 없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