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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 맞춤법을 지적하면 꼰대라니!

by 오로지오롯이


자기가 사는 문화권에서 자신이 쓴 문자로 의사를 표현한다는 것. 그것은 꽤나 아름답고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 세계를 영위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그리 많지 않다. 지구촌이 점점 정보화되면서 문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 시점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랑스럽게도 우리의 문자를 거의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다. 문맹률이 아주 낮은 나라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한글’이란 문자의 의미를 가치 있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글의 가치를 점점 깎아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여러 방면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높은 교육열에 의하여 문맹률이 매우 낮은 편이다. 문맹자라고 해 봐야 교육을 받지 못한 노인들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주변에서 정말 많은 문맹자들을 본다.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하는 문맹자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단순히 문맹자라는 사전적 의미로 자신을 보호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더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문맹자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문맹자의 의미는 다르다. ‘글을 제대로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재해석해내야 하는 ‘문맹자’들의 진정한 의미이다.


미국의 학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의 문맹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하고, 교정하고, 재학습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글을 읽을 줄 안다. 하지만 그 자만 속에서 틀린 것을 학습하고, 교정하고, 재학습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문맹자가 무엇인가. 그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맹자의 의미는 글을 바르게 사용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 한글은 그들에 의해 위협을 받고, 파괴되고 있다. 글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할망정, 망치고 있는 그들이 문맹자가 아니라면 누가 문맹자란 말인가. 그래서 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큰 부류에서 새로운 의미의 문맹자가 색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우리 모두들 위해서, 우리가 모르는 문맹자를 위해서 도와야 한다.


나는 간혹 주변에서 영어 발음에 대한 일화를 겪는다.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 툭 튀어나온 영어 발음이 이상하여 깔깔대는 모습 말이다. 아니면 어떤 아이가 학교에서 영문을 읽다가 발음이 틀려 당황하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의문을 가졌다. 한글을 읽다가 나오는 틀린 발음(자신들은 틀렸는지도 모르는)에는 왜 아무도 반응이 없는가. 우리가 흔히 혼동하는 철자는 대표적으로 ‘틀리다/다르다’, ‘가르치다/가리키다’ 등이 있다. 이런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가끔 이런 용언을 틀리게 사용하는 사람에게 정정을 요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같았다.


“뭔 잘난 체야. 편한 대로 쓰면 되지.”


난 젠체하는 것도, 어렵게 쓰길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바르게 쓰면 이 한글의 의미와 가치가 극대화되지 않겠느냐는 기대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내 기대를 짓밟곤 했다.


문화 선진국 프랑스에는 ‘국어 보호법’이란 것을 만들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모국어를 보호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도 어법을 어기게 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의 대화는 어떤가? 틀린지도 모르는 채 더러워지고 있다. 우리말의 오염도를 생각해 보면 프랑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노력까지 뻗치지 못한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난 주위에서 한글을 자랑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는 한글이란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린 변화될 수 있다. 자신의 방을 깨끗이 청소한다는 작은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한다. 우리가 모르는 문맹자들. 그들은 한글의 가치만큼이나 변화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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