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을 부추기는 광고 및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기호학적 분석
이 글은 성형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을 조명하고자 쓴 칼럼입니다.
본문에 담긴 내용은 특정한 판단이나 편견을 전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필요에 의해 혹은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성형을 하는 모든 분들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기 원하며,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만족스러운 외모를 원한다. 첫인상이라는 말도 있듯이 외모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대인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모는 타인에게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가 되기도 하고, 그 때문에 간혹 외모가 한 사람을 규정짓기도 한다. 이렇듯 외모는 인간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과도 다르지 않다. 인간은 얼굴보다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유교적인 가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고리타분한 명제가 되었고, 이에 따라 성형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변화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사회 풍토와 맞물려 외모는 취업을 결정하는 큰 단서가 되기도 하고, 외모지상주의의 관념 속에서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역할까지 하기도 한다. 과거 여성에게만 국한되어 있던 성형 문화는 남성에게까지 확대되었고, 이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를 설계하고, 이상향의 외모로 도달하고자 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라고 모두 이렇듯 성형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성형 문화는 세계의 자본주의 물결에서도 유독 우리나라의 특수 문화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성형 문화가 우리나라를 지배한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성형 기술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기에 수요가 생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성형 의료의 개발은 수요에 의한 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성형의 수요는 나날이 증가했을까. 사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성형은 남성 중심적인 기준에 맞춰 여성의 외모를 재단하는 풍조가 여성을 외모 가꾸기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를 제한한다고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모는 취업 문제, 사회 소외 문제 등의 사회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개발의 한 방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즉 잘 관리된 외모가 자기 관리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화되었고, 외모를 가꾸는 것이 곧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사고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결국 과하지 않은 성형 소비자들은 사람들에게 나쁜 시선은커녕 좋은 평가를 받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또한 TV나 광고에서의 아름다운 여성들과 꽃미남의 남성이 자주 노출되면서 현대 사회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갖는 중요성이 커졌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욕망은 타인의 시선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되었다. 내면에만 틀어박힌 자신은 바람직한 개성이 아닌 게 되었고. 자신의 개성은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끌 수 있도록 외부로 표출되고 발현되어야 했다. 또한 극도의 경쟁 사회가 된 우리나라에서 성형은 살아남기 위한 스펙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외모 중심사회에서 사람들은 얼굴을 예쁘게 가꾸고, 피부를 매끈하게 하며, 날씬하고 잘 빠진 몸매와 세련된 스타일을 유지하라는 조언을 더 이상 부당한 압력처럼 느끼지 않는다. 즉 뭐라도 노력해야 이기는 사회가 된 것인데, 과거엔 외모를 노력으로 얻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전엔 성형을 한 사람들을 일컬어 허욕이라는 부정적 기호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성형수술의 기술이 점점 더 전문화되고, 수술 후의 이질감도 줄어들자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외모로서 충당하게 되었다. 즉 최근의 성형은 그저 더 나은 외모를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위한 행위, 그리고 나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자기계발의 의미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흐름에 발 맞춰 성형 소비자를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려는 성형외과들의 노력은 광고와 TV프로그램에서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광고 TV 프로그램은 어떤 방법으로 성형 수요자들은 증가시키고 있을까.
먼저 성형외과 광고에 등장하는 병원의 이미지는 대부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제작되어 웅장한 느낌이 든다. 마치 그곳에 들어서면 굉장한 곳으로 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광고에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상반신만 등장했으며 아름다움의 표본처럼 여겨지던 긴 머리보다 묶은 머리 스타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얼굴 윤곽선을 강조하는 것으로 소비자가 광고를 보았을 때 더욱 객관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성형외과의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광고에 등장하는 의사들의 성별은 대부분 남성이며, 복장은 흰 가운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떠올리는 의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광고에 등장하는 의사들의 자세는 대부분이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몸짓은 자신감과 당당함의 표현으로 신뢰를 의미하는 기호인 것이다. 광고에 나오는 비포&에프터 이미지는 달라진 얼굴만큼이나 조명이나 표정도 다르다. 비포 사진에는 어두운 조명을 비추고 표정도 어둡다. 하지만 에프터 사진에는 밝은 조명과 활짝 미소 짓는 모델의 모습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성형을 하면 자신의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즉 성형 광고의 여성은 행복해보이며 만족스러워 보이고, 무결점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매력 있게 표현된 인물은 질투의 대상이 되고,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의 열등감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렇듯 광고는 소비자에게 특정한 미의 표준에 순응하여 개성을 추구할 것과 그들 신체를 통제할 것을 부추긴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신체를 선택할 수 있고 신체를 새로운 형태나 크기로 변용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광고는 우리가 우려하는 성형 얼굴의 획일성을 탈피하기 위한 메시지를 카피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예쁜 얼굴을 더 예쁘게, 평범한 얼굴이라면 탁월하게”라는 성형광고의 대표적인 카피는 소비자들에게 당신을 남과 다르게 개성적으로 바꿔주겠다는 기의를 담고 있다. 사실 성형 광고는 서로 비슷한 외모로 꾸며주면서 소비자의 개성을 살려주겠다는 모순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리얼리티 성형 TV프로그램에서는 성형수술을 참가자들의 열등감을 극복해주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못생긴 얼굴의 참가자가 나와 자신의 절박한 심리적 이유, 주변 환경 속에서 극복하지 못하는 자아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받는 성형수술이 마땅한 이유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실 이유 없는 성형수술이란 없다.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얼리티 참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신의 성형수술을 정당화한다. TV는 실재 세계와 다른 새로운 사실, 즉 과현실의 세계이다.
이런 TV 속 과현실은 극사실적으로 현실을 뛰어넘어 더 현실 같은 세계를 만들어간다. TV는 그런 유혹적 세계이다. 그렇게 TV 속의 영상에는 프로그램 제작자의 자의적 조작이 깊이 개입하는데 그것이 제작 의도다. 사람들은 제작 의도에 따라 기호에 맞게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시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또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의 이데올로기가 시청자들에게 주입이 되기 쉬워진다. TV 속의 과현실이 현실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에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성형외과 의사들이 영향을 끼친다. 참가자들을 자신의 성형외과에서 진료하고 수술하며, 자신들의 고도화된 기술을 방송을 통해 피력한다. 그들에 의해 마침내 아름다워진 참가자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자신들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하지만 성형을 한다고 프로그램이 조명하는 참가자처럼 인생이 바뀐다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 참가자의 성형 후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방청객들과 눈물까지 보이는 사회자의 모습으로 성형의 신화적인 형태를 구축해 간다. 또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성형 후 달라진 참가자의 인생까지 조명하며 성형수술의 유혹을 포함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형을 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라는 의미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리얼리티 성형 프로그램은 자기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 뒤 지금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 불안해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성형을 하지 못하면 예전처럼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형이 모든 극복의 최선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보며 성형수술의 소비를 통해 좀 더 쉽게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런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성형 광고의 특성을 좀 더 시각적으로 스토리텔링적으로 풀어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광고와 TV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외모에 대한 사회문화적 태도가 변하게 된다. 특히 그 과정에서 TV프로그램이나 광고들은 마른 체형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규범화하였으며, 각 개인들로 하여금 그날그날 자신의 신체모습을 사회적 기준과 비교하게 하여 외모관리에 열중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이제 성형수술은 외모지상주의의 비판에서 벗어날 정도까지 퍼지고 말았다. 광고와 TV의 영향으로 외모지상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의 내면적 인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외모지상주의가 나쁜 게 아니라는 기호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상태가 되었고, 이제 성형수술은 당연한 사회현상이다. 이런 사회에서 성형은 소비자의 욕망을 생산해 내고 증폭시키는 시장의 영역이 되었다.
즉 성형은 욕망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허영심을 부추긴다. 광고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팽창하는 성형 시장의 약속들은 뒤처짐의 정서를 생산하고, 이를 성형에의 욕망으로 변신시키는 힘의 출처가 되었다. 이렇듯 현대인들의 욕망, 욕구, 본능을 이용한 많은 일들이 성형 문화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가 결정지어야 할 과제는 성형이라는 것이 더 나은 자아를 가져다준다고 확신시키는 TV프로그램이나 광고의 유혹을 뿌리치고, 헛된 허영에서 멀리 떨어져가는 자신 내면의 개성을 되찾는 일이 아닐까 싶다.